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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교사 일기 15화

교칙

라떼는 말이야~

by 째비의 교사일기

교사가 되어보니 자연스럽게 제 학창 시절 때와 지금의 학창 시절을 비교하게 됩니다. 저는 15년 전쯤 중학생이었으니 강산이 한번 반이나 바뀌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동안 어떻게 교칙이 바뀌었는지 제 경험을 통해 들여다 보시죠!


저의 학창 시절 때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저는 땀내 진동하는 남중 남고를 나왔습니다. 학생 때는 잘 보이고 싶은 사람도, 잘 보이고 싶은 욕구도 없었기에 두발 규정에 크게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때의 규정은 엄마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머리였습니다.


미용실에 가서 내가 봤을 때도 재밌게 생겼으면, 엄마는 항상 흡족해하셨습니다. 남자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엄마가 머리가 길다고 하면 잘 된 머리고, 시원하게 잘 잘랐네라고 한다면 망한 머리입니다. 전 엄마가 흡족해하는 소리를 들어도 크게 감흥은 없었습니다. 싹이 없는 맨들 맨들 감자냐, 싹이 길게 난 감자냐의 차이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엄격한 학교 규정은 제게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아침에 대충 키위같이 생긴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이슬만큼 맺힌 물기를 털면 끝이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감자, 키위 같은 친환경적인 머리만 구사하던 저는, 고등학교와서는 머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여자친구가 있다 하면 놀림거리가 됐었는데, 고등학교 올라와보니 여자친구가 있다 하면 추앙받는 존재가 됐기 때문입니다. 도 여자친구를 사귀어서 추앙받고 싶었습니다.


(담이지만) 친환경으로 다니던 중학교 3학년 때 초등학교 동창 여학생에게 영화를 보자 한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저는 평균보다 작은 키였는데, 동창생을 불러내기 위해 170이라고 속였습니다.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있는 힘, 없는 힘 끌어다 쓰는 공작새처럼, 냄새 가득한 아빠 깔창을 운동화에 욱여넣어 5cm나 키웠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백화점 가서 고른 가을 야상을 걸치고 cgv로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결과는 대차게 까였습니다. 껏 꾸며봐야 머리가 키위이니.. 눈에 차겠습니까?


고등학생 때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조금이라도 머리를 지켜보려 애썼습니다. 고등학교 때의 두발 규정은 앞머리가 눈썹에 닿으면 안되고, 뒷머리는 옷깃에 닿으면 안 됐습니다. 구레나룻은 귓볼높이보다 짧았어야 됐습니다. 전 멋을 위해 규정보다 조금 길게 다녔습니다.


그러다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두.발.검.사


선도부가 각 반을 돌며 두발 검사를 할 때가 되면, 그 직전 쉬는 시간 화장실 인산인해였습니다. 풀과 테이프 자국이 선명한 가위를 눈앞에 들이밀고 싹둑 싹둑하는 가위소리만 요란합니다..


야매 미용사가 한 두 명씩 있었는데 그 친구 앞에는 길게 늘어선 줄도 보입니다. 저도 구원받기 위해 기다란 줄 뒤에 얌전히 서봅니다. 쉬는 시간은 짧기에 손님의 니즈에 맞는 커트는 없습니다. 단지 규정에 딱 걸치게 자를 뿐입니다. 야매 미용사는 손님의 커트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을 외치고 기계적으로 머리를 잘라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종이 치면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교실로 들어갑니다.


맨들 맨들 친환경 키위 대가리 빼고는 모두 안심할 수 없습니다. 선도부와 학생부 쌤의 매서운 심사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로그램 이름은 흑백미용사입니다.

20년 경력의 까꾸뽀꾸 미용실 혹은 블루클럽 원장님의 손길이 아닌 친구들은 다 심사 위원에게 걸렸습니다.

야매 미용사의 손길을 거친 대부분의 아이들은 복도 밖으로 불려 나갑니다. 물론 저도 포함입니다. 야매 미용사가 일에 치여서 받지 못했던 비용은 손으로 지불하면 됩니다. 복도에는 매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 외마디 비명소리, 자신의 학번을 말하는 소리, 바삐 움직이는 볼펜소리 만이 가득합니다. 그렇게 저는 또 못생긴 감자가 되었습니다.




요즘의 규정은 규정이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이며, 이 마저도 자율에 가깝습니다. 일단 우리 학교는 눈칫밥 때문에 염색을 못할 뿐이지 염색과 관련한 규정도 없습니다. 장혁마냥 장발로 기른 남학생도 있고, 라푼젤처럼 머리가 길어 바닥을 청소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교복과 관련한 규정도 허울에 불과합니다. 아이들 대부분은 사복을 입고 등교하며 교복을 입는 학생은 3분의 1 정도입니다.


제가 학생회 관리 업무를 한 적이 있는데, 학생회 애들이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며 제게 찾아왔습니다.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뭐냐고 물어보니 정말 귀가 막혔습니다. 교복데이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하도 사복을 입고 다니니 교복을 잘 입고 온 학생에게 간식을 주는 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런 날을 만들면 분명 교복 데이를 제외한 날은 안 입어도 되는 날이라는 의식이 심어질게 뻔했기에 의견을 보류하고 돌려보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외적인 부분과 관련한 교칙은 유명무실한 상황입니다. 사실상 머리도 자율~, 복장도 자율~ 제가 학창시절을 보낼 때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 라떼는 말이야~..)


제가 학생일 때 있었던 엄격한 교칙들이 돌이켜보면 긍정적인 면도 많았던 것 같은데 독자님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옛날처럼 학생들에게 엄격한 교칙이 필요할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자유분방한게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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