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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교사 일기 14화

점심리그

우리반 잘한다~

by 째비의 교사일기

우리 학교에서는 1학기, 2학기를 나누어서 점심리그를 진행합니다. 점심리그는 학년별로 남학생은 축구, 여학생은 피구 종목으로 우승반을 가리는 리그입니다. 1학기 때 등수와 2학기 때의 등수를 합산하여 최종 등수를 결정하게 되므로 1학기 때 잘했다고 방심하면 안됩니다.


점심리그의 열기는 생각보다 뜨겁습니다. 자기 반의 명예를 걸고 한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학생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참여하는 대표학생은 하교 후에도 남아서 피구와 축구를 연습합니다.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목이 닳도록 고래 고래 소리지르며 응원합니다. ( 이 열정을 공부에 쏟아부었다면? 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


모든 경기가 그렇듯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습니다. 이긴 팀은 담임 선생님이 사주신 승리만큼이나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쁨을 만끽합니다. 패배한 팀은 오후 수업 때 들어가보면 초상집이 따로 없습니다. 누가 잘했니 못했니 하는 의미없는 말들과 비난, 그리고 슬픈 곡소리는 복도를 전체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만약 우리 반한테 진 반의 수업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초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반에 들어가면, 쌤 나가요~!! 들어오지 마세요!! 오늘 수업 들을 기분이 아닙니다!


들어가자마자 따가운 눈총세례와 원성을 들으면 미안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사실 전혀 미안하지는 않지만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수업 진행이 안되기에 어쩔 수 없이 반을 대표하여 위로와 심심한 사과 말씀을 올리고 수업을 진행합니다.


반대로 우리 반을 이긴 반에 들어가면 엄청난 조롱을 견뎌내야 합니다.


들어가면, 쌤~ 너무 쉽던데요? 어떡하죠~ 우리가 이겨버렸는데~


저는 우리반을 대표하여 역으로 조롱해버립니다. 응~ 너희 어차피 0반한테 질거야~


제가 학교에서 3년간 담임을 하면서 위로를 한 경험보단 조롱을 받은 경험이 많습니다. 작년에는 축구를 우리반이 제일 잘한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첫 경기부터 졌습니다. 2학기에는 칼을 갈고 왔다고 말하더니 한 경기 이기고 바로 다음 경기에 져버렸습니다. 우리 반이 잘한거라곤 제 말을 잘듣는 것 말곤 없었습니다. 애들아 다치면 안되니 무리하지 말고 뛰어했더니 걱정을 끼치기 싫었는지 바로 져버리더군요..


올해는 기대해도 좋아보입니다. 오늘 피구 경기가 있어서 재빨리 아이들을 동원해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구경을 갔습니다. 간식에 환장하는 아이에게 00아~ 쌤이 아이스크림 사놨다~ 하니까 바로 아이 주변에 손오공처럼 아우라가 생겼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각성했는지 상대팀에서 공을 던졌다하면 모세의 기적처럼 쫙 갈라져 피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반의 한 아이가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을 정확하고 강하게 던지는 아이들은 많이 봤었는데, 이 아이는 달랐습니다. 강하고 정확한 것은 기본이며, 마치 부메랑처럼 공이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던진 공은 상대에게 맞음과 동시에 튕겨 나오며 다시 손에 안착했습니다. 이게 한 두번이면 우연이다 싶겠는데 던지는 족족 돌아와서 경이로웠습니다. 이런 장면을 본 저는 참지 못하고 기립박수와 환호를 해버렸습니다. 아이들은 저의 응원에 기운을 얻기보단 저를 부끄러워 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경기 결과는 2:1로 승리를 했고, 고생한 아이들에게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니 너무 뿌듯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올해는 제발 다른 반 들어갔을 때 사과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스크림은 몇번이고 사줄테니 어깨피며 당당하게 복도와 반을 누비고 싶습니다! 작년 반은 아이들은 착한데.. 운동도 꼴찌, 공부도 꼴찌, 축제도 예선 탈락.. 아이들만 착하면 됐지라는 말만 하고 살았습니다. 이번 반은 애들은 일단 착합니다. 그런데 추가로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으면 하는 소망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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