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삶
제 여자친구도 교직에서 근무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고충에 많이 공감하고 터놓는 편입니다. 어느 반 수업이 힘들었다, 업무 하느라 밥도 잘 못 먹었다는 등.. 퇴근 후 오늘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하고 위로하며, 다가오는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얻습니다. 교사 생활을 하다 보면 앞에 말했던 고충 외에도 여러 고충이 있습니다. 가장 큰 고충은 편하게 생활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엥? 교사가 편하게 생활하기 뭐가 힘들다는 거야?! 싶으시겠지만 잠깐만 저희 얘기를 들어봐 주시겠습니까?
우선 제 근무지는 놀 곳이 많지 않습니다. 집 주변은 주택이나 원룸이 많아 음식점밖에 없습니다. 놀 곳이라 해봤자 소파가 해지다 못해 노란 스펀지가 드러난 둘리노래연습장. 방향키 중 오른쪽과 아래가 빠져있고 엔터와 스페이스가 움푹 들어간 키보드, 사연 많아 보이는 치지직 거리는 스피커, 쾌쾌 묵은 담배냄새와 연기로 뿌연 `오이소pc방`밖에 없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놀고 싶다면 시내로 나가야 합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하지요? 시내에서 놀기 위해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옵저버(학생)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집이 시내인 학생들
우리처럼 놀 곳이 마땅치 않아 온 학생들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
저희는 최대한 학생들을 피해 놀아야 합니다. 만약 학생을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다음날 저의 모든 사생활은 공개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야~~ 째비쌤 여자친구랑 손잡고 행복하게 걸어 다니더라?
와 째비쌤 여자친구한테 밥 먹여주던데 너무 스윗하시더라~
정보통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수업 들어가는 반마다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여기다 살까지 붙여 헛소문을 퍼 나릅니다.
째비쌤 왼손에는 부인분 손잡고, 오른손에는 아이를 안고 가더라~ (전 결혼도 안 했습니다..)
여자친구도 몇 번 이런 당혹스러운 경험들을 하고는 학생들이 많은 곳을 피하고 싶다 얘기하더군요. 그리고 어딜 가던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있을까 봐 불안하다고 합니다.
여자친구는 이런 우리의 처지를 인기 없는 연예인이라 하더군요. 연예인이라 사람들이 알아보고 관심도 가지는데 인기가 없기에 돈은 못 버는..
목욕탕이나 찜질방 같은 많은 사람이 있는 곳 한번 맘 편히 갈 수 없는 그런 삶..
전 찜질방 가서 온몸이 젖을 정도록 땀 빼고, 그 후에 뻑뻑한 맥반석 계란을 먹고 목이 맥혀 죽을랑 말랑할 때 얼음 동동 띄워져 머리가 깨질 정도로 시원한 식혜를 마시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혼자 노래방에 가서 올라가지도 않는 발라드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인기 없는 연예인이 된 이후..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더군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냥 생긴 피해망상 같은 건 아닙니다.
어느 때와 같이 전 혼자 둘리노래방에 갔습니다. 바지 안에 구깃 구깃 접힌 이천 원이 노래방 기계로 빨려 들어갈 때만큼은, 학교 생활로 구깃 구깃 접힌 일상에서 벗어나 음악에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삑사리를 내며 열창하고 있는데, 느껴져선 안될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졌습니다. 뭐지 하고 옆을 돌아보니, 투명한 유리창에 얼굴을 뭉개며 안을 들여다보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서 난생처음으로 3옥타브를 뚫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을 하다 보니 노래방 가는 일, 시내로 나가는 일, 찜질방을 가는 일 등..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었던 일들에 소극적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시선들을 무시하고 뻔뻔히 지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성향상 의식을 많이 해서 쉽진 않더군요. 나중에 여자친구가 아닌 부인이 되고, 그리고 좀 더 연차가 쌓이면 그런 시선들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죠?
중학교 시절 마트에서 부인과 손을 잡으시고 장을 보시던 선생님께 인사했을 때, 머쓱해하시던 그 모습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 지금 와서 보면 모르는 척할걸 그랬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