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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교사 일기 18화

엄마가 미워요

마음이 아픈 아이들

by 째비의 교사일기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아직도 초등학생 때와 중학생 때가 떠오르면 종종 웃곤 합니다. 너무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피시방에 갔다가 잘 가라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엄마가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놨기 때문입니다. 현관문을 다 열기도 전에 풍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갓 지은 밥냄새는 엄마가 후각으로 보내는 첫인사입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오면 엄마의 두 번째 인사가 들려옵니다. 아들 왔니~ 밥 먹게 손부터 씻고 와! 저는 저를 놓치기 싫어하는 물귀신 같은 신발을 저 멀리 벗어던지고, 재빨리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물로 손을 대충 헹군 뒤 식탁 앞에 자리했습니다.


저녁 메뉴는 수제 돈가스입니다. 엄마가 직접 만들고 튀기신 수제 돈가스는 참 별미입니다. 속은 촉촉하고, 겉은 바삭한 돈가스와 직접 끓인 달콤한 데미그라스 소스는 없던 입맛도 돋웠습니다. 이 소스는 아마 신발에 부어도 꽤나 괜찮은 요리가 될 것입니다. 후식으로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밥통 카스테라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 고소한 향이 온 방을 가득 채우면, 빨리 먹고 싶어서 취사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완성이 되면 재빨리 큰 접시를 식탁 위에 올리고 우유를 준비합니다. 큰 접시 위에 밥통을 뒤집으면 윤기 가득한 맛있는 밥통 카스테라가 쏙 하고 떨어집니다. 만들기가 쉽다고 해도, 맛은 가볍지 않습니다. 트럭에서 파는 옥수수빵과 비슷한 식감인데 우유와 함께 먹으면 입에서 사르르 녹아버리는 마법의 빵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배시시 웃음 짓게 하는 추억들은 엄마가 간호조무사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라졌습니다. 일의 고된 난이도와 밤낮이 바뀌는 살인적인 스케줄은 엄마의 몸 건강을 급속도로 나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몸도 안 좋았던 우리 엄마가 겪었던 태움 문화는 마음의 병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이후 행복했던 우리 가족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엄마는 화가 나면 누나한테 소리 지르고, 뺨을 때렸습니다. 그리고는 벽이나 거울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를 하셨고, 우리를 낳은 게 죄라며 혼자 살고 싶다고 혼잣말을 계속하셨습니다. 아빠가 늦게 오는 날이면 전화를 수십 통 수백 통을 했고, 부부싸움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무조건 했었습니다. 학교를 갔다 오면 엄마의 스피커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항상 직장 동료를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가며 흉보셨고, 잠자기 전 시간에는 우리 가족을 불러 모아 직장 동료 험담을 2시간 넘게 듣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지쳐도 들어야만 했습니다. 중간에 맞장구를 치지 않거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자기편이 없다며 자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지옥 같은 시간은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 됐습니다. 결국 저는 감정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매일매일을 남 험담을 듣고, 욕설을 듣고, 폭력적인 모습들을 보니까 저도 미쳐버릴 것 같아서 차라리 내 감정을 지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면 힘들지 않아도 되니까요.


대학교 때는 연기를 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주변 동기들의 반응을 보며 따라서 기쁘거나 슬픈 척 연기를 했습니다. 제게 감정은 없어진 지 오래니까요. 그때쯤에 정말 나쁜 버릇이 하나 생겼었는데 누군가와 대화할 때 계속 딴생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몰입한다면 감정이 생겨버리니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만든 방어기제인듯합니다. (다행히 현재는 잘 집중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행복했던 이전 기억들은 다 사라지고, 우리 가족에게 남은 것은 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입니다. 예전이 그립다고 썼지만 사실 평온하고 좋았던 우리 가족의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엄마의 모습은 좋았던 추억을 난도질해 버렸으니까요. 현재는 다행히 증상이 많이 호전되긴 하셨지만 아직도 우리 가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엄마의 우울증과 싸워야 합니다.


학교에 오니까 저만큼이나 혹은 저보다 더한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부모님한테 맞거나 한 겨울에 집 밖으로 쫓아내 지거나, 심한 욕설을 들으며 살아왔더군요.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부모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대개 이러한 증오는 학교 부적응으로 나타납니다. 무단결석, 무단 조퇴, 수업 거부, 폭력적인 행동 등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난 반항으로 보입니다. 부모님들은 학생들의 이런 외적인 부분에만 집중하여 더 옥죄이기 시작합니다. 용돈 삭감, 더 심한 체벌이나 욕설 등으로 말이죠.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받았던 엄마에 대한 상처는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받고 싶었던 위로를 그대로 해주면 되더라고요. 부모에 의한 학대로 마음이 다친 아이를 3명 정도 만났었는데 제가 위로했던 방식은 간단합니다. 들어주고, 토닥여주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들어주고 :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했던 과거의 일들을 다 들어줍니다.


토닥여주고 : 아이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공감하고 위로해 줍니다.


약속하고 : 부모님은 모르고 계신 아이의 아픔을 들려드립니다. 그리고 아이의 부적응 행동의 이면에는 아픈 마음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킵니다. 많이 힘드시더라도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아이를 포용하고 이해해 달라고 약속합니다. 또한 아이도 부모가 손을 내민다면 힘들겠지만 그 손을 붙잡아 달라고 약속합니다.


이유 없는 행동은 없습니다. 모든 미움, 증오, 부적응의 바탕에는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지하기에 겉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결단 내리는 과오를 범해선 안됩니다. 아이들의 다친 마음에 다가가 토닥여주고 위로해 준다면 강압적인 교정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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