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마 제발
중간고사는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도 심장이 콩딱콩딱거리는 시간입니다.
담임은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신경이 곤두섭니다. 책상에 낙서는 없는지, 서랍은 비웠는지, 이어폰, 패드, 폰, 워치 같은 전자기기는 제출했는지 짧은 조례동안 래퍼처럼 빠르게 점검사항을 안내합니다.
빠르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면 아이들의 긴장을 줄여주기 위해서 준비한 말을 꺼냅니다. 밤새 유튜브를 뒤적거려 멋있는 조언을 찾았고, 연습도 서너 번 했기에 자신 있게 첫마디를 내뱉었습니다.
여러분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겪.. (전분 데요 쌤!?)
망했습니다. 말을 이어갈라는 찰나 시험이 인생의 전부라는 학생 덕분에 저의 인생은 망가졌습니다.
대충 얼버무리고 파이팅 하라 전달한 뒤 재빨리 도망 나옵니다.
중간고사는 기말고사보다 과목 수가 적습니다. 여유가 있기에 시험 치기 전에 한 시간 자습시간이 주어집니다.
운 좋게 오늘은 자습 감독 한 시간, 과학 감독 한 시간씩 배정받았습니다. 자습 감독을 들어가니 다음 시간이 과학이라 그런지 반포기 상태더군요.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어제 밤을 새웠다는 학생이 와서는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묻습니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여 무슨 일이냐 물어보니 토할 것 같다길래 급히 보내주었습니다.
아무리 공부가 급하더라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한 상태로 시험을 치는 게 더 좋을 텐데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는 괜찮냐 물어보니 훨씬 낫다 하여 걱정을 덜어냈습니다.
마치기 10분 정도 남았을까 학생들은 대다수는 전멸입니다. 그 와중에 세명은 서로 얼굴만 봐도 재밌는지 키득키득 거리며 몸짓으로 대화를 합니다. 다음 시간이 바로 시험인데도 책도 없고, 큰 책상에는 컴싸 하나만 초라하게 놓여있습니다.
찌릿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자신 있나 봐? 책도 없고 말이야.
웃으며 머리를 가리킵니다.
쌤 이 안에 다 있어요 하하하!
대화를 빠르게 포기하고 조용히 있으라 손짓했습니다.
자습시간이 끝나고 다음 시험 감독을 위해 시험지를 받으러 갔습니다. 시험지를 수령하고, 사인을 합니다. 이후 제일 중요한 일이 남아있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다과를 3-4개 가져가는 것입니다.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저를 위한 게 아니라 학생을 위한 일입니다. (믿어주세요.)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시험시간은 볼펜소리와 째깍째깍 벽시계 소리만이 들립니다. 그런 상황에서 벽시계보다 우렁찬 배꼽시계가 들린다면 모두 당황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다과를 먹는 것은 학생을 위한 일입니다.
빠르고 안전하게 다과와 시험지를 들고 학년실로 들어갑니다. 한 손으로는 다과를 먹고, 한 손으로는 감독 확인란에 서명을 합니다. 뒤에서는 무교인데도 기도하고 계시는 신규 선생님이 계십니다. 왜 그러고 계시는지 물어보니 처음 문제를 출제하는 거라 너무 떨린다고 하십니다. 여러 긴장과 부담이 담겨있는 시험지를 안고 반으로 출발했습니다.
아이들을 정숙시키고 책상 위에는 필기구만 두게 합니다. 답안지를 나눠주고 종 치기 전에 빠르게 시험지 첫 장을 6장씩 구분해 놓습니다. 종 친 뒤 구분해 둔 시험지를 모든 줄에 재빨리 배분하고, 남은 뒷장을 차례로 나눠줍니다.
이제 시간과 정신의 방입니다. 아무 소리도 내서도 안되고, 다리를 떨어서도 안되고, 너무 부담스럽게 쳐다봐서도 안됩니다. 거슬림이 없는 표정과 자세로 20분 정도 있다 보면 이제 만보기 시간입니다.
여기저기서 두더지처럼 손을 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를 뿅망치로 잡으면 2개가 더 튀어나오고, 2개를 잡으니 4개가 튀어나옵니다. 빠르게 고쳐주다 보면 꼭 한두 명은 5번 이상 손을 듭니다. 고쳐주고 뒤돌아 교탁에 도착하기도 전에 또 손을 들고, 2분 있다가 또 손을 듭니다. 별 수 있나요~ 고양이처럼 발소리 없이 사뿐히 그리고 신속히 학생에게 다가가 고쳐주고, 다른 손든 학생은 없는지 재빨리 주변을 스캔합니다.
종 치기 1분 전에는 학생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안내합니다. 종이 치면 수정이 어렵습니다.
종이 치기 10초 전에 추가로 빠르게 안내합니다. 맨 뒤 사람은 자기 번호가 맨 아래로 가도록 걷습니다. 종이 치는 즉시 손 머리 위로 하고, 잡담해서는 안됩니다. 학생들이 답안지를 걷어왔다면 빠르게 답안지가 다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상이 없다면 답안지를 시험본부에 인계합니다.
이제 또 제일 중요한 일을 할 때입니다. 맞습니다. 다과를 3-4개 챙깁니다. 이번에는 저를 위한 다과입니다.
시험이 모두 종료된 이후에는 못했던 업무를 하는 편입니다. 업무를 하고 있는데 다른 반 담임선생님께서 표정이 일그러지시더니 큰일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상황을 들어보니 과학고등학교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 과학 과목에서 실수를 한 것을 알고는 자해를 했다고 합니다. 서럽게 울며 머리를 벽에 여러 번 박은 뒤, 샤프심으로 손목을 긁으려는 순간 아이들이 막아서 다행히 큰 일은 나지 않았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생에게 남은 시험을 칠 수 있겠냐 묻고, 진정시킨 뒤 돌려보냈습니다. 마음은 이해한다만, 제발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험은 여러 사람의 긴장과 부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했을 아이들
문제에 오류는 없을지, 시험 감독 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자기 반 학생들이 실수는 하지 않을지 긴장하고 있는 선생님들
아이들이 제발 실수하지 않고 준비한 것보다 더 잘 나오길 기도하는 부모님들
모두가 긴장하지 않고 부담이 없는 그런 시험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결과가 어떻든 노력한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시험 기간 동안 고생한 아이들이 너무 낙담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님들은 결과가 아쉽더라도 고생한 아이를 위해서 맛있는 밥 한 끼 사주며 잘 다독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학생들이 겪을 많은 일들 중 일부에 불과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