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이
3
집사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하루에 한 번씩 청결을 유지해야 했다. 하루라도 거르면 물때가 찌고 아가씨는 그것을 무척 싫어했다.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집사는 우선 마른걸레로 수영장 주변을 닦았다. 이어서 목조로 된 부분을 빗자루로 쓸고는 나머지 부분을 바닥까지 닦았다. 특별히 더러운 곳은 없었으나 집사는 그녀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무척 예민한 편이어서 그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청소하는 데도 배어 나와 간간히 집사 자신을 피곤하게 하였다. 어쩌면 그러한 성격때문에 그녀가 집사를 더 신뢰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모서리 하나하나에 파리가 미끄러 나가 떨어질 때즘 그는 문득 시계를 보았다. 저녁 8시간 간신히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그는 그때쯤이면 할 일이 많았다. 아가씨가 돌아올 때쯤이면 따듯하게 반신욕을 즐기실 수 있도록 물을 준비해놓고 홍차도 새로 끓이고 와인 창고에 가서 와인도 점검해야 했다.
'청소만 하는 인생이라...나쁘지만은 않아. 그 정신없던 세월에 비하면.'
잠시 과거의 망상에 잠겨있던 그는 노을의 한 구석에서 보내는 햋볕의 다끔한 시선에 망상에서 깨어났다. 그러다 다시 시계를 바라본 집사는 시계 초침에 평소와는 다른 어떠한 기류같은게 느껴지자 의아해했다. 아직 그 기류의 정체는 정확히 모르지만 보통 그녀는 학교에서 출발하기 전에 집사에게로 연락을 하곤 하였다. 물론 언제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끝나는 시간이면 집사가 그에 맞춰서 준비해놓을 것들이 많았으므로 연락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 친구들과 약속이 있거나 다른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직까진 나쁜기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지만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 몰래 심어둔 가드들한테도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그다지 별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별일이나 있으려고.'
그렇게 생각한 그는 어느 평소때처럼 집 안 청소를 하고 요리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어쩐지 고기를 너무 태운것만 같았다. 고기라면 이미 수십번은 구워봤는데 오늘따라 바싹 태워버린것만 같아 속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씨한테서는 아직 연락이 없었다. 보통 아가씨께 연락이 없더라도 가드들은 이미 중간보고를 했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것마저도 두절됐다. 서서히 불안이란 녀석이 고개를 드리밀자 집사는 결국 다시 전화기를 들어 가드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한동안 정적속에 벨이 울리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수화기 너머에는 반응이 없었다. 어느덧 불안감 이란 녀석이 전신을 다 드러내고 그의 앞에 앉아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꺼내들어 GPS추적기를 살폈다. 모든 가드와 연결돼 있는 GPS였다. GPS 추적기는 분명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고 딱히 사라지거나 흩어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가드들은 서로 같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만 이상한 점은 그들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GPS를 보며 가드들이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유심히 살폈다. 보니 그곳은 국립현대미술관 근처 어떠한 건물같았다. 처음에는 아가씨가 박물관에 들렀나보다 생각했지만, 시간은 벌써 박물관을 닫고도 남는 시간 아니던가. 그 시간에 아가씨가 박물관 근처에서 무엇을 하고있는건지 그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날이 어두워질수록 상황이 더욱 나빠진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집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차고로 달려갔다. 그는 눈에 보이는 차를 아무거나 골라 타더니 숨 가쁘게 시동을 걸었다. 그는 그렇게 페라리 458을 몰고 국립현대미술관 방향으로 차를 빠르게 몰고 나갔다.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이 순간 집사에게 단1분은 10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그도 그럴것이 이건 단순한 그녀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었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집사의 인생도 그의 가족도 여기서 끝이었다. 집사는 어느새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가며 빠르게 도시를 가로질렀다. 중간에 정지등이 몇 번 있었지만, 지금 그에게 신호 따위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다시한번 GPS를 확인했다. 혹시라도 다른 움직임이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GPS는 꼼짝도 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 그저 석상처럼 굳어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는 제 할일을 다하며 꿋꿋이 GPS 근처를 향해 뒷바퀴를 힘차게 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장소에 도착하자 그의 앞에 어느 별것없는 한적한 거리가 드러섰다. 그는 GPS를 확대해가며 가드들의 정확한 위치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은 담벼락 넘어 반대쪽으로 연결되 있었다. 역시나 그의 시야에도 쇠담벼락이 보였고 그 너머에는 철창들이 있었는데 그 높이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집사는 망설일 필요도 없이 담벼락을 넘어 철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가자 허름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빨간 점은 분명 그 안에 몰려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는 어두어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무것도 없는것 같았다. 그는 핸드폰 조명을 켜고 주변을 비춰가며 다시 건물을 확인했다. 조명 넘어로 보이는 낡은 건물은 지금은 쓰지않는듯한 느낌이었으나 옆에 보이는 다른 방에 어떠한 인기척 같은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 그들이 그곳 어딘가에 있는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그 방을 향해 나아갔다. 역시나 조명이 없는곳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핸드폰 조명을 아래로 향했을 때 그는 한번에 방 한쪽에 널부러져 있는 그들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순간 집사는 보이지도 않는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가듯 기절할듯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봐! 이봐! 정신 차려봐!"
집사가 어느 한 가드의 따귀를 때렸다.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집사는 마음이 급해져서 더욱 과격하게 그의 따귀를 다시 세차게 때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제서야 가드가 깨어났다. 아마도 깊은 수면에 빠져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봐! 아가씨는! 아가씨는 어디 있나?!"
가드가 아무 말이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아가씨! 아가씨는 어디있냐니깐?!"
집사가 세차게 쏘아붙이며 다시 그에게 물어봤다.
"...그게...아가씨는..."
가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집사에게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집사는 주머니에 감춰져 있던 권총을 빼 들어 가드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빨리 찾아내...아니면 너와 나 우리 모두 다 죽은 목숨이다!"
집사는 드디어 자신의 청소만하던 평화로운 인생에 너무도 깊은 최악의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실감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던 날이 갑작스럽게 지옥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일이 커지기 전에 그녀를 찾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만약 이 사실이 주인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땐 모두가 끝장이었다.
사실 주변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의 주인은 일반적인 사업가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딸에게는 합법적인 일이라고 둘러댔겠지만, 실제 그가 하는 일은 모두가 악이라고 말하는 그러한 일들 즉, 대부업, 도박업, 마약유통, 유흥업소 관리, 때로는 인신매매등 그러한 불법적인 일들이었다. 그는 이름하여 갓파더, 마피아의 보스 '체사레 마르케시'였던 것이다.
'앞으로 몇 시간이다. 몇 시간 안에 못 찾으면 다 끝이야.'
집사는 그 사실을 깨닫자 심장이 미쳐 날뛰는 것만 같았다.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보며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가 남았던 그에게는 현재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전화를 빼들어 자신의 수하에 있는 모든 가드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메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아가씨가 사라졌다. 보스가 알아채기전에 아가씨를 찾는자에게 보상을 내리겠다."
그는 또한 그녀가 갈만한 곳을 전부 추적하라고 지시하면서 자신이 알고있는 아가씨의 정보를 다른 가드들에게 전송했다. 하지만 집사가 모르고 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부하중 일부는 체사레가 심어놓은 그의 직속 부하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사태를 파악한 직속부하는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선 당연하게도 체사레에게 전화를 걸어 이사실을 알렸다. 체사레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한동안 말이 없더니 잠시 거친 숨을 몰아넣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하는 감이 잡히질 않았지만 그것이 결코 즐거운 생각은 아닐꺼란것만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곧이어 체사레가 입을 열었다.
"가서 집사를 잡아와라."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직속부하들은 곧바로 집사에게 적대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돌발행동은 집사의 의심을 살 수 있으므로 그들은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집사에게 다가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안아 그들이 마치 루실라를 발견한 것처럼 꾸미고는 집사를 자신들의 영역안으로 유인했다. 집사는 그들의 거짓정보를 듣고 한순간 한줄기 희망을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집사는 기쁜마음에 엑셀에이터를 다시금 힘차게 밟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집사의 것으로 보이는 밝은 색의 차량이 체사레의 부하들의 눈앞에 희미하게 윤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집사의 차가 확실하다는 메세지를 받은 체사레의 부하들은 제 각이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들고선 그들 등뒤로 숨겼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서서히 집사에게로 다가갔다. 차안에서 그들이 다가오는것을 본 집사는 어딘가에서 본 낯익은 광경에 순간 이 모든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깨닭았다. 집사는 과거 군에서 활동한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발걸음이나 움직임만 봐도 대략 어떤상황인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들의 움직임은 친밀하기보단 적대적이었고 숨기는게 있었으며 그만큼 조심스러웠지만 위협적이었다. 더욱이 한손이 뒤로감춰져 있든게 몹시 수상했다. 집사는 한번더 무언가를 확인하듯 백미러로 뒤쪽을 바라봤다. 뒤쪽에서도 역시 여러명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으며 그들의 움직임 역시 앞쪽에있는 녀석들과 별다를것이 없었다. 결국 집사는 모든상황이 파악되자 갑작스럽게 헤드라이터를 밝혔다. 순간 부하들이 뒷쪽에 숨기고있던 검은 쇳덩이의 일부가 빛에 반사되며 빛을 발했다. 어설프게 뒷짐을 쥐던 부하들의 총의 일부였다.
'한심한 놈들...총을 그따위로 숨기면...'
집사는 그런 그들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은채 결국 모든 게 체사레의 귀에 들어간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동시에 이 모든 건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이게 자신의 마지막이란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집사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도망가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에겐 다른 선택권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만은 알고있었다.
만약 저들의 손에 잡혀서 체사레에게로 끌려간다면 그는 보나 마나 심문을 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자신은 진실을 말할테지만 체사레는 믿지 않을것이 분명했고 종국에는 끔찍한 고문을 받다가 죽을것이 분명했다. 아마 자신이 그의 딸을 빼돌렸다고 생각할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럴바엔 차라리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것이 현명할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적어도 어떻게 죽을지는 집사가 선택할 수 있었다.
집사는 슬그머니 주머니에 숨겨뒀던 시그 P365 권총을 꺼내 한쪽 허벅지 아래쪽에 감췄다. 그리고 다른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고는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그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고 단번에 그 연기를 쭉 빨아드렸다. 너무 급하고 깊게 빨아들여서인지 차안이 하얗게 몽롱해지는게 기분이 그리 썩 나쁘진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어떠한 두려움과 해방감이 뒤섞인 상쾌함 비슷한 무엇이었는데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 모든게 어쩌면 가족 또는 보스에 대한 의무감과 그와는 상반된 미지의 두려움에서의 해방감이 만들어낸 멋진 화학작용일 수도 있다고 생각됐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집사를 향해 다가왔다. 집사는 흐려진 눈의 초점을 살짝 맞추고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얼마 안되 그들이 차 문 앞까지 다가와 예상대로 창을 두드리며 집사를 불러댔다.
"집사님, 잠시만 나와보십시오. 확인해 보셔야 할게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집사는 피다만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겨 꺼버렸다.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다고? 웃기고 있네!'
그들은 그러한 집사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집사의 행동에 한동안 아무 변화가 없자 그들은 그 모습이 탐탁치 않았는지 이내 차 문을 흔들어 대며 집사를 다그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사는 차 문을 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뭐라고 수군댄다 하더래도 집사는 전혀 그들의 말에 동요할 마음이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다른행동에 나섰다.
'아마도 차 문을 부실 생각이겠지.'
그러한 생각이 집사의 뇌리에 스치자 집사는 결심했다는듯 숨겨뒀던 자신의 권총을 집어들어 손에 꽉쥐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마지막으로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댄뒤 방아쇠를 당겼다.
"사망했습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체사레는 마시고 있던 와인잔을 땅에 힘없이 떨어뜨렸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직 집사에게 물어볼 것이 많이 남아있던 참이었는데 그가 자기마음대로 생을 마감해 버린통에 갑작스레 모든것이 먹통이 되버린 것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체사레는 그러한 집사의 죽음이 안타까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척이나 괘씸하게 느껴졌다. 딸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일 수도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성급하게 그는 죽음을 택해버렸다. 체사레는 그렇게 생각하자 자신에 대한 집사의 믿음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자신의 무기력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는 한동안 말이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그러한 원통함속에 고개를 떨구다 잠시 무엇인가 떠올랐는지 슬며시 옆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은 처음엔 허공을 맴돌다 이윽고 어느 탁자위의 사진한장에 고정됐는데 그 사진에는 세명의 인물이 카메라를 향애 미소를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한명은 군인으로 보였고 한명은 자신, 그리고 한명은 어린 자신의 딸이었다.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 집사와 함께했던 나날들이 희미하게 스쳐갔다. 그는 그를 그렇게 쉽게 보내버리려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에게 딸에 대한 책임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무조건적인 잘못을 전가하기보단 확실하게 원인을 밝히고 만약 잘못이 있다면 죽이기보단 멀리 유배라도 보낼 참이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집사에 대한 괘씸함과 공허함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체사레는 잠시 자신과 함께 했던 집사와 자신의 딸의 사진을 살며시 바라보았다. 미소 짓고 있는 사진 속 딸과 허무하게 죽어버린 안타까운 집사가 이 순간 몹시도 그리웠다.
'딸의 미소를 지켜주기로 약속했는데...'
순식간에 딸과 집사를 잃어버린 체사레의 눈빛은 깊은 슬픔과 허망함으로 동요되어갔다. 그리고 이내 그 슬픔은 점점 변해가더니 그에게 뜨거운 무언가를 안겨줬다. 체사레의 눈빛은 어느덧 붉은 빛을 발했다.
'그래 이 모든 일은 곧 있을 그 거래 때문이다!'
앞으로 나흘 뒤에 있을 앙코나에서의 거래. 그는 그 거래를 떠올렸다. 다소 평범해보이는 항구에서의 그 거래는 모든 조직들에 있어서 특별한 기회이자 조직을 키울수 있는 힘이었다. 모든 조직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 거래에 사활을 걸고 매달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거래되는 물건은 특별했으며 그것을 독점하는 날엔 조직들간의 서열이 뒤바뀔정도로 그 효력이 막강했다.
거래되는 물건은 마약이었으나 그것은 일반적인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에 들어오는 건 어느 한 제약회사에서 비밀리에 개발해낸 신상품으로 특별히 알바니아에서 2차 가공을 거쳐 마약으로 탈바꿈하는 신종마약이었다. 아직 시제품이긴 했지만, 그 잠재력은 무궁무진했음으로 그 거래를 노리는 조직이 많다못해 거의 전부였다.
체사레는 아마 이 거래싸움에 자신들의 발을 묶어놓기 위해 일부 조직에서 미리 그의 딸의 정보를 입수하고 그녀를 납치해간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의 속셈은 단순하고 뻔할것임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체사레라는 인물에 대해서 지극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다른 조직의 수장보다 특별이 우수하고도 냉혹한 한가지 덕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이루고야마는 집착이 있었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딸과 관련된 어떠한 일이다 할지라도 그는 자신의 목표를 저버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딸을 되찾고 그에 대한 복수를 하여 자신의 조직이 모든 조직에 비해 한수 위라는 사실을 절실히 일깨워주고 거래도 성사시켜 모든면에서 더는 넘볼 수 없는 벽을 만들려하였다.
체사레는 즉각적으로 자신의 부하에게 지시하여 공문을 띄웠다. 가장 먼저 그 공문을 확인한 직속 부하는 공문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선 손이 떨려왔다. 공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앙코나의 거래에서 공을 세우면 바로 카포로 승격시켜주겠다. 내 딸을 찾아와도 마찬가지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카포란 마피아들의 계급을 가리키는 문구였다. 카포(Capo)는 마피아의 6계급중 3번째로 마지막 서열인 비기너(Beginner)에게 있어서는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나 다름없었다.
직속 부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이 공문을 수하들에게 전달하였다. 공문을 받은 수하들은 일제히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 역시 떨리기는 마찬가지였으며 그 무리 속에는 비기너 벤자민 모나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공문을 내용을 천천히 살펴본 벤자민은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요동치기시작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비기너같은 자신에게도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벤자민은 벌써 6년이 넘게 조직에 비기너로 남아있었기에 이것은 그 초라했던 6년을 보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동안의 눈물이 결실을 맺을때군.'
벤자민은 이번만은 자신이 승리할 때라고 생각했다. 실은 2년전만해도 두단계 정도는 승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중간에 일이 틀어지면서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 그 외에도 여러일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시한일의 뒤치닥거리정도였기에 딱히 어떠한 면모를 보여줄 기회조차 없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 기회는 그가 별볼일 없는 촌구석에서 엔드랑게타 같은 거대조직에 들어갈 기회를 얻은 것이었고 두 번째 기회는 그 와중에 괜찮은 아내를 만나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낳은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드디어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으니 그는 그것을 놓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벤자민은 조직에 나름 오래 몸담고 있었기에 마피아들에 관해 어느정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박한 지식을 도와 줄 여러 보조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료를 분석한 결과 그는 자신들의 조직에 가장 위협이 될만한 상대조직은 노스트라 조직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다른 위험한 조직도 여러 있을 수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조직인 코사 노스트라는 과거에서부터 엔드랑게타와 여러 이해관계에 얽히면서 많은 원한관계가 생겨난 이력이 여러 있었다. 분명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벤자민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의 장점.'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지만 그에게 다행히인 점은 아직 벤자민이 조직에 오래담고 있는것에 비해 그리 유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 마피아에서 생활했지만, 딱히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고 그렇다고 마구 자신을 드러내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어느 누구도 그에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벤자민은 그러한 자신의 입장이 조금은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지만 그런건 지금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다. 벤자민은 그러한 자신의 약점을 이번에 강점으로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난 그리 유명하진 않지만 난 놈들의 얼굴을 알지.'
보통 조직의 높은 수장들은 깊게 관여한 사람이 아닌이상 그 정체를 잘 모르고 있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정체가 드러나봤자 딱히 좋을 것이 없었고 일단 정체가 탄로나면 어느 조직이든 먼저 그 수장을 주 타겟으로 지목하여 제거하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두가 신경을 곤두서고 그곳을 직시했다. 하지만 벤자민은 이러이러한 그만의 독특한 정보력으로 어느정도 다른 조직의 수장의 얼굴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 반해 벤자민 같은 이름없는 비기너는 그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가 않았고 별다른 경계대상도 아니었다. 따라서 감시도 적을 것이었고 더 나아가 일반인인척 행동 한다면 더욱 경계를 늦출 것이 분명했다.
벤자민은 그렇게 적합한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상대의 우두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버릴 생각이었다. 운만따라주면 상대조직의 최고수장까지는 나오지 않겠지만 적어도 그 밑의 '언더보스'까지는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사실은 어느정도는 분명해 보였다. 정보에 의하면 마피아들은 최근 들어 사정이 매우 힘겨워졌다고들 하였다. 정부에서 이탈리아 기동대와 인터폴간의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그 정보력이 한층 막강해졌고 이를 활용해 마피아들의 근간 자체를 추적해 그 뿌리를 뽑아버리겠다고 발표문까지 내건상황이었기에 아무리 뚝심강한 마피아라 하더라도 지금은 몸을 사려야할 상황이 될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거래처가 조금 더 비밀스러워지고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이번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 조직의 막대한 손해를 줄이는 가장 큰 지름길이자 작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벤자민은 자신의 서랍에서 권총 하나와 한 자루의 칼집을 꺼내들었다. 둘 다 몸집이 작은 게 품에 숨기기엔 더없이 좋았다. 벤자민은 두 개의 살해도구를 책상에 놓고서는 잠시 손을 모으더니 그가 알고있는 신께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통해 어느 병원을 향해 전화를 걸었다. 그는 그의 아들에게 안부인사를 건넬 참이었다.
벤자민에게 아들은 그의 두번째 기회이자 행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은 태어날때부터 거의 병원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아들은 희귀병인 WAS(Wiskott–Aldrich Syndrome)를 앓고 있었기 때문인데 치료는 조혈모세포를 이식시키는게 거의 유일했다. 다만 그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을뿐더러 설령 성공했다 하더라도 생명연장만 시켜줄 뿐 지속적인 치료는 언제나 필요했으며 무엇보다 경제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벤자민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 경제적으로 아들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어떠한 강박을 안고 있었다.
전화기가 울리자 얼마 안 돼 수화기 넘어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그래...별일 없지? 요새 증상은 좀 어떠냐?"
"많이 좋아졌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다행이구나. 자주못가 미안하다. 그래도 아들의 씩씩한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힘이 나는군."
"그럼요. 아버지. 저도 빨리 나아서 우리가족이 더 이상 저때문에 힘들지 않게 할꺼에요. 돈도 많이 벌고요."
그 말을 듣자 벤자민은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그래야지. 누구 아들인데? 조만간 다시 전화할테니 그때까지 말썽부리지 말고 잘있어. 의사선생님 말 잘 듣고."
짧게 통화를 끝낸 벤자민은 아들의 목소리에 기뻤지만 표정은 다시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한 중압감이 벌써부터 벤자민을 옥죄어오려 하였다.
그는 냉장고를 살며시 열었다. 오래된 위스키 한병이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봤다. 그는 찬장을 열어 남은 위스키를 전부 딸아버리더니 단번에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