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이
5
벤자민은 결전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경찰에서는 지금쯤이면 항구에 대한 조치를 느슨하게 풀었을 것이 분명했다. 보통 거래일이 트기 한 달 전부터 그들은 준비과정을 거치는데 경찰을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의심 없는 물품을 나르고 난 뒤 대규모의 조사과정을 거친 후 본격적으로 본업을 시작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경찰들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는데 그들의 끄나풀은 경찰 안에도 존재했다. 또한 일부 소식통에 의하면 경찰이 대규모 조사과정을 어제부로 끝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기본적인 조사들은 진행하겠지만, 그 정도는 조직 내에서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특히 이번에 처리되는 물품은 무색무취로 특수가공됐기에 조금 더 안전했다.
본래 마약이 발각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그 특유의 냄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특수 처리공정에 의해 이번 물품만큼은 그 냄새가 수색견도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해졌다. 그러니 이제 개의 후각정도는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걔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의 효과는 1.5배나 강력해져서 중독성은 심각했다. 이는 분명 모든 조직이 이 물건에 눈독을 들이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눈독은 곧 전쟁으로 이어질 것임이 분명하였다. 물론 벤자민은 그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그저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적의 수뇌부만 뚫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조직에 이득이 되게 잘만 상황을 구슬린다면 일확천금까진 아니더라도 자금사정은 물론이고 자신의 지위조차 껑충 뛸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들의 치료비는 물론 경제적인 걱정과도 이별이었다. 벤자민은 그러한 생각을 하고나니 벌써부터 긴장감과 동시 설렘이 앞다투어 가슴속에서 날뛰는게 느껴졌다.
그는 재킷안에 준비해둔 나이프와 데저트 이글 권총을 꺼내들어 각각 양손에 꽉 쥐어 보았다. 묵직하니 탄력이 있었다. 이 정도면 느낌이 좋았다. 날뛰었던 가슴은 조금씩 차분해져갔다.
뭐 항상 그렇지 않았던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특히 그 직전이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막상 그 일을 시작하면 아무렇지 않은 듯 평온함이 찾아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물론 그럴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결말역시 좋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는 숨을 한번 가다듬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앙코나행 기차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래시각은 새벽 4시일것이 분명하다.'
그는 의례 그래왔듯이 이번 거래역시 새벽 4일쯤일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서둘러 약속장소로 출발해야만 하였다. 물론 사전답사정도는 어느정도 마친 상태였지만 늘 변수는 있기 마련이었다. 누구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해서 준비과정을 철저히 마쳐야만 했다. 밖은 벌써부터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새벽 세 시. 다행히 항구에 먼저 도착한 벤자민은 조선소를 둘러보면서 자신이 생각한 적정 수준의 준비를 마쳤다. 어느 지점에서 공격을 감행할지, 퇴로는 어느 방향으로 정할지, 여분의 무기는 자신만의 장소에 잘 숨겼는지등 최대한 할 수 있는 한 모든 대비책을 그는 마련해놨다.
그가 준비해온 차를 한모금 마시고 있을때 시계는 어느덧 곧 새벽 네시를 가리켰다.
'이제 곧 시작되겠지,'
그의 예상에 보답이라도 하듯 갑작스런 바람의 움직임에 물결의 방향이 달라졌다. 멀리서 야밤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발광 오징어처럼 미세한 손전등만을 켜고 다가오는 작은 배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거래하는데 있어서 마피아들에게 큰 배는 오히려 눈에 띄기 때문에 방해가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중요하고 은밀한 거래일수록 작은 배를 더 선호했다. 그리고 그러한 배들이 서서히 벤자민의 시야에 들어왔을 때 그는 그 배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작고 허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는 기껏해야 3, 4인승 정도밖에 안 되는 크기였고 안쪽에는 관처럼 생긴 나무판들이 뉘어져 있었는데 그의 생각으로는 그것들이 아마 그 물건들임에 틀림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배가 항구에 멈춰 서자마자 실제 거래를 맡기로 합의된 코사노스트라 조직이 발빠르게 물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물론 조선소의 경비원들은 모든 것을 보았지만 봤다고 말할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날아가는 새한마리라도 봤다는 것을 자백하는 날엔 그들의 자녀들은 물론 남은 가족 모두 돌이킬수 없는 위험에 처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직원들은 주변 경비들을 비웃으며 아무런 방해도 없이 작업에 착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여유가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상황이 악화될 것임을.
결국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등급이 좀 높아보이는 조직원중 한명이 주변을 가르키더니 그들에게 어떠한 제스쳐를 남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라는 표시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귀에는 벌써부터 다른악몽의 무언가가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때였다.
"쉭!"
기다렸다는 듯 어둠속에서 작지만 날카로운 무언가가 물자를 실어나르던 조직원의 심장을 관통하였다. 조직원은 고통이라고 할것도 없이 그대로 즉사하면서 그가나르던 관짝을 땅에 내동댕이쳤다. 그때 관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들은 비닐에 싸인체 미스터리한 광체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쉭쉭 소리는 경쟁하듯 그 수를 늘려갔다. 그에 따라 조직원들이 하나씩 쓰러져가면서 내동댕이 쳐지는 관짝의 수도 늘어갔다.
"조명탄! 조명탄을 쏴라!"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그게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상황적으로 적절한 지시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조명탄을 품에 안고 있었던 조직원중 일부는 그 외침에 동요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어둠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각자의 조명탄의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마침내 손을 뻗어 별빛가득한 검은 하늘을 향해 붉은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높게 올라간 조명탄들은 한동안 그 위엄을 자랑하며 밝게 빛나던 별빛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리더니 대신 주변을 향해 자신의 붉은 빛을 물들여갔다. 숨어있었던 그림자들은 가차없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그 빛에 당황해 하였다.
"당황해하지 마라!"
그리고 또다른 외침이 들려왔다. 그들은 분명 노스트라의 물품을 가로체기 위해 습격한 다른조직들임에 틀림없었다.
주변은 이미 소리를 제외하고선 전쟁터처럼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벤자민은 자신의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썼다. 주변은 연기들과 알수없는 악취, 그리고 불꽃들로 한치앞도 알 수가 없었지만 벤자민은 자신의 숨어있던 잠재력이라도 이끌어 내려는듯 자신이 속한 조직을 찾아내기위해 이리저리 동공을 굴려댔다. 그리고 그 노력이 결실이라도 맺듯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조직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자신의 조직인 엔드랑게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엔드랑게타 위치를 파악한 벤자민은 잠시 가슴을 쓰러내리더니 이제는 차분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그 틈을 이용해 그는 자신이 알아냈던 정보들을 종합해 보았다. 그 정보에 따르면 마피아들은 이러한 거래를 할때 자신의 단원들 중 또는 매수한 경찰들 중 일부를 곳곳에 심어논다고들 하였다. 이유는 거래를 진행시키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의 접근을 미리 알아채고 차단하거나 도주하기 위해서인데 배치된 감시자들의 간격은 대략 1km 간격이었다. 그리고 또하나 벤자민이 먼저 도착하려던 이유들중 하나도 바로 저 감시자들 때문이었다. 그들이 일종의 마피아단원의 카운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 카운터안에 들지 않아야 자신이 유령처럼 움직이는데 유리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싸움을 지켜보던 벤자민은 싸움이 중반이상 지나간듯 보이자 슬슬 자신이 움직일 차례가 왔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그는 싸움이 무르익는 틈을 타 준비된 경량화된 잠수복을 입고 물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아직까진 자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됐기에 기회는 충분했다.
결국 싸움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30분가량 진행되고 나서야 대부분 부상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며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싸움이 거의 종결돼가기 직전 한 조직원이 적막을 깨고 마지막 폭죽을 터뜨렸다. 그리하여 조용하던 싸움은 이내 굉음으로 이어졌는데 그 굉음의 주인공은 바로 카모라의 바주카포의 등장이었다. 그 바주카포는 큰소리를 내며 5명가량을 거의 한 번에 쓸어버렸다. 하지만 그 충격의 여파로 근처에 있던 기중기가 들썩거리더니 얼마버티지 못하고 결국 항구로 꼬꾸라지면서 큰 소리와 함께 주변 트럭들을 덮쳤다. 손상된 트럭에서 기름이 흘러나왔지만 조심성 없는 마피아단원중 일부가 여전히 총질을 해대면서 결국 항구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돼어 버렸다.
"어떤 멍청한 놈이 이런 곳에서 바주카포를!"
종결돼가던 싸움은 이제 누구의 승리라고도 할 것 없이 모두들 눈앞에 높여있는 물건을 들고 달아나니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큰 굉음이 일어난 이상 곧 기동대들이 몰려올 것은 뻔했다. 하지만 기회를 날려버릴수 없었던 벤자민은 달아나지 않고 여전히 숨을 죽이며 물속에서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 달아나고 있는 코사노스트라의 수장이 그의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 의 실루엣이나 언뜻 보였던 얼굴, 그리고 주변 그를 경호하고 있는 단원들의 숫자를 봐도 언더보스임이 분명했다. 먹이를 발견한 벤자민은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이를 느낄 순간도 없이 물에서 기어나와 잠수복을 벗어던지고 그의 뒤를 밟았다. 벤자민의 어두운 복장이 밤과 불꽃의 강한 대비덕분에 언더보스에게 접근하는 길을 비교적 쉽게 만들어 주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수장은 분명 차에 타 달아날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벤자민은 문을 열려고 수장이 멈춰서는 바로 그 순간이 방아쇠를 당기기에 가장 적합한 순간이라 생각했다.
얼마동안 언더보스의 뒤를 밟던 벤자민은 서서히 그의 걸음이 느려지는것을 감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그는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춰섰는데 이는 경호원들이 열어주는 차 문 앞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벤자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총구를 겨눴다. 이글거리는 불꽃속 너머에서 그를 총구안에 겨누려고 집중했다. 그리고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생각했을때 벤자민은 힘차게 방아쇠를 당겼다. 쉭 하고 날아가는 총알이 간발의 차로 그의 머리가 아닌 어깨에 박혔다.
'제길!'
수장은 순간적인 몸부림으로 뒤를 돌아 손에 쥐고있던 머신건을 허공을 향해 갈겨댔다. 대부분은 빗나갔지만, 어느 순간 반갑지 않은 소리가 나더니 벤자민은 허벅지 한쪽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한발의 총알이 허벅지를 뚫어 안으로 박힌 것이었다. 벤자민은 고통은 고사하고 균형을 잃어 뒤로 꼬꾸라져 버렸다. 하지만 그는 땅바닥에 처박힌체로도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뒤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멀지않은 곳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코사노스트라의 수하들이 보였다.
'잡히면 끝장이다.'
벤자민은 필사적으로 자신이 생각해논 퇴로로 도주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지금으로썬 도주가 최선인것 같았다. 다만 문제가 되는건 방금 한발맞아버린 다리였다. 다리의 근육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걔다가 어딜 맞았는지 출혈양이 상당했다. 뒤를 돌아보니 그는 거의 잡히기 직전이었다. 그는 어쩔수 없이 정해둔 퇴로를 포기하고 가가운 해안가를 향해 절름거리는다리를 이끌로 달려갔다. 그리고 망설일 시간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뛰어든 검푸른 바다는 생각보다 차갑기 그지없었다. 총상을 입은 다리로 물결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벤자민은 절실히 깨달았다. 작전은 실패했다는 것을. 언더보스의 어깨에 맞은 총상 따위는 금방 치유될 것이고 이제 문제는 자신이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총알이 다리에 박히다니. 그는 차도 몰고 오지 않은 상태였고 누구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스스로 고립된 것이었다. 그는 남은 힘을 짜내서 바다를 돌아서 갈 생각을 해 보았지만, 발밑으로 출혈이 계속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사이렌 소리는 벌써 육지를 가득 채웠고 이대로 물 밖으로 나간다면 자신은 바로 철창신세를 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반대편으로 헤엄쳐 갔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진 몰랐지만 지금으로써는 그에게 남은 선택지가 달리 없었다.
'꼭 살아서 아들을...'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얼마 지나지 않아 벤자민의 시야는 점점 흐려졌고 졸음이 몰려왔으며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의식을 대부분 잃어가던 그때 그는 어딘가에서 구원인지 절망인지 모를 하나의 소리가 들을 수 있었다. 작은 배 한 척이 모터 소리를 울려대며 벤자민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