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이
9
레드는 그리디와 헤어진 뒤에 그녀가 다녔던 공예학원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조사를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이자 불문율이었다. 요즘에는 핸드폰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었지만 레드는 그렇게 느낌도 없는 버튼을 눌러대는게 시간이 지나도 여간 익숙해지지 않았기에 그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종이로된 지도를 꺼내들었다.
"학원까지 가려면 공원을 거쳐 가는 게 가장 빠르겠군."
레드는 그 지도에 표시된 대로 파르코 신디치 공원을 향해 나아갔다. 파르코 신디치에는 카스텔 신디치라는 180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 건물은 원래 와인 저장을 위한 저장고로 사용되었지만, 수년이 걸쳐지자 이제는 주변의 떠돌이 예술가들의 만남의 장소로 탈바꿈돼있었다. 레드는 예술에 대해서는 딱히 거부감이 없었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딘지 모를 그들만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때문에 잠시 망설였지만, 그는 공원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의미도 없어보이는 가느다란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군데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들역시 평범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벌써부터 레드의 특이한 옷차림과 이질감에 주변의 공기는 어색하게 흘러갔다.
몇미터를 걷자 머리가 하나도 없는 한 사내가 레드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보아하니 타국에서 오신 거 같은데 이곳 아시시엔 처음이신가요?"
그러면서 그는 주머니에선 무언가를 뒤적거렸다.
'꿍꿍이가 있군.'
레드가 그가 수상했지만 그러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예 처음입니다만..."
그러자 낯선 이는 수상한 만족감을 띠며 좀 전에 뒤적거리던 무언가를 레드에게 드리밀었다.
"다른데서 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다 가짜입니다. 사기꾼들이죠. 제가 가지고 있는 이것이 정말로 순수한 아시시만의 수공예로 제작한 진짜 기념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레드는 목걸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것은 그냥 싸구려 목걸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레드의 반응이 미덥다는것을 깨달았는지 어느새 또다른 사내가 레드 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
'바람잡이가 한 명 더 왔군.'
그때였다.
"꺄악!"
뒤를 돌아보니 한 어린 소녀가 레드를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는 땅으로 꼬꾸러짐과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떨어뜨렸다. 레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앞에서 레드에게 말을 걸던 낯선이는 그를 밀치고선 소녀에게로 달려갔다.
"오펠리아! 괜찮니?!"
장면을 지켜보던 레드가 입을 열었다.
"오펠리아라...따님입니까?"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드는 그러한 사내를 타일르듯 말을 이었다.
"사정은 알겠지만, 딸을 데리고 이런 일을 벌이기엔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사내는 레드의 말을 듣자 당황해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부인했다.
"무슨말인지 모르겠군!"
"지금 그럴만한 상황이 아닐텐데요. 따님께서 아마도 제 안주머니에 있는 상자를 건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레드는 주머니에 있는 상자를 꺼내들었다. 그 상자는 바로 그리디의 선물로써 그의 발목에 묶여있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시커먼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딱봐도 끔찍한 생명체가 분명했다. 사내는 놀란 얼굴로 레드를 처다보았다.
"정식 명칭은 '타이티우스 스티그머러스' 독성으로 따지면 1등급짜리 맹독전갈이죠."
상황이 심각해짐을 깨닫자 사내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그의 잘못을 자백했다. 레드는 주머니에서 해독제를 하나 꺼내 들며 말했다.
"걱정 할건 없습니다. 제게 해독제가 있습니다. 대신 부탁하나만 하도록 하죠."
사내는 다급한마음에 소리쳤다.
"부탁이든 뭐든 들어줄 테니까 빨리 치유만 해주게!"
그러자 레드는 해독제에든 액체를 주사기로 뽑아냈다.
"언젠가 제가 찾아올 일이 있을 겁니다. 그때마저 말씀드리죠. 이 주사기를 손등 주변에 살며시 놔주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는 주사기를 낚아채더니 자신 딸아이의 손등에 주사기를 꼽았다. 몇 분이 지나자 소녀의 일그러진 얼굴이 조금씩 편해지면서 생기를 되찾아갔다. 레드도 그제야 안심이 되듯 한숨을 내몰았다.
'전갈은 좀 심했나? 다음부턴 좀 더 약한 거로...'
레드는 소녀에게 미안함을 느꼈지만 지금은 해야할 일이 많았기에 이를 뒤로한 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하고도 한적한 어느 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인가?'
평소엔 여행객들로 거리가 조금 붐빈다고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유난히 한산한 게 무슨 전염병이 도는 것마냥 불길했다.
'별일이군.'
레드는 그의 또다른 조력자 아델이 그려준 그림에서처럼 갈색 간판에 조각상이 그려진 집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비교적 쉽게 그 간판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일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의외의 현대식 건물을 보고선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건물은 현대식이었고 간판에서만이 자신의 전통을 자랑하듯이 고루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건물앞에선 레드는 문앞의 초인종을 눌렀다. 딱히 작동하는것 같진 않았다. 그가 문을 살짝 밀어보자 문은 잠김없이 그대로 밀려 그를 맞이하였다.
"실례합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내부에 들어섰다. 안에는 겨우들릴만한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홈버그 모자에 머리가 긴 사내였다. 안경과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여러모로 점잖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레드는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레드 우드...리버스. 회사 이름입니까?"
레드의 이름 아래쪽에는 작은 글씨로 레인카 자문위원회라고 적혀있었지만 사내는 이게 이 낯선 사내의 이름인지 어떤 특정 기관의 이름인지 햇갈려했다. 아마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지금껏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이 한두 번은 아니었기 때문에 레드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제 이름입니다. 전 아델씨가 운영하는 회사의 자문가로써 잠시 조사차 나온것입니다."
레드의 조력자인 아델은 사설탐정기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아델은 레드를 자신들의 수사를 도와줄 자문가로써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로만 자문가지 실은 역할에 구해받지 않는 같은 수사 동료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현장을 뛰어다니는 레드가 탐정이었고 아델은 레드가 싫어하는 행정업무나 정보를 처리하는 사무업무를 주로 도맡았다.
사내는 아델에게는 미리 연락을 주고받은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그 역시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레나토 델루치'라고 적혀있었다.
"반갑습니다. 괜찮으시면 차한잔 하시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찬장쪽으로 걸어갔다. 레나토가 찬장에서 달그락 거리는 동안 레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부 아드리아나가 좋아할 법한 것들로 가득한 조각상 또는 작은 모형건축물들이 이곳저곳에 들어서 있었다. 딱히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는데 레드는 레나토와 대화함으로써 조금이라도 그녀에 대한 단서를 건질 수 있기를 바랐다. 잠시 후 레나토가 걸어나왔다.
"그래...아델씨의 자문가시라면 아마도 아드리아나 일 때문에 오셨겠지요?"
레드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사라져버렸다고 하는군요. 마지막으로 그녀를 본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레드가 묻자 레나토가 대답했다.
"글쎄요. 대략 2주가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한동안 잘 보이는가 싶었는데 무언가 바쁜 일이 생겼는지 점점 보기 힘들어지더군요. 딱히 공예가 질려서 그런 것 같진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결국엔 집에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더군요. 그 후로도요. 조사까지 나오신거 보면 역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아닌가 걱정스럽군요."
레나토가 근심어린 표정을 짓자 레드가 대답했다.
"아직은 뭐라 단정짓긴 힘듭니다. 그녀가 그냥 말없이 여행을 떠난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어떠한 일에 휘말렸는지 말이죠. 그걸 먼저 알아내기 위해 찾아온 겁니다."
레나토는 잠시 숟가락을 들어 차를 한번 휘졌더니 살짝 들이켰다.
"그럼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흠...그녀의 특징 혹은 습관을 알고 있습니까?"
레나토는 벽에 걸린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진부한 얘기긴하지만 아드리아나는 그저 성실해보이는 아이였습니다. 공예도 당연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도 예술을 사랑하는듯 보였습니다. 좀 우울해보일때가 있긴했지만 딱히 큰 문제는 없어 보였고...뭐 가끔 아버지가 그립다고 하긴했지만 그건 딸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일테고."
"아버지요?"
"모르셨습니까? 그녀의 아버지는 그가 벌인 사업과 관련된 일로 현재 도주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현재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죠."
레나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벽에 걸린 어떠한 사진으로 다가갔다. 사진에는 알수없는 오래된 물건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만약 무슨 일이라도 있다면, 혹 그녀가 실종됐다면 전 박물관부터 찾아볼 것 같습니다. 분명 그런것들과 관련된 일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박물관과 실종이라니...레드는 레나토의 뜻을 아직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은 모든가능성을 열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이런...제가그만 주제넘게 참견을 한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레드의 알수없는 표정을 읽었는지 레나토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자 레드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지금으로썬 모든 의견이 중요할 뿐이지요."
레드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남아있는 차를 한번에 비워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장과는 가볍게 작별인사를 나누고선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피곤함이 몰려들어 곧장 쇼파에 누워 잠들고 싶었지만 그는 한쪽에 놓인 테이블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고선 자신이 준비해온 약초병들을 테이블 위에 길게 늘어놓았다. 그리자 그중 검게 그을린듯한 약초 하나가 담긴 병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약초들의 생김새와 향은 이미 레드가 확실히 익히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병에 딱히 이름표등은 붙어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선택한 이 약초가 '죽은 소들의 구름'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자신들의 조상이 인디언전쟁때 썼던 약초로써 그 향이 썩은 사체에서 나는 그것과 비슷했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조상들은 이 특수한 향으로 특별한 그들만의 전략을 감행하곤 했다고 전해졌다. 이를테면 위장술 같은 건데 이 약초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이유는 이 약초의향을 맡은 적들은 그 향을 맡음과 동시에 공격을 당해 모두 죽임을 맞이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었다. 하지만 레드가 지금 이 향을 꺼내든 이유는 딱히 그 자신을 위장하려 함이 아니었다. 그는 이 특징있는 향을 기폭제로 활용하여 어떠한 특정 동물들을 끌어 모으려 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쥐, 바퀴벌레, 노래기 따위의 썩은 음식을 좋아하는 짐승들이었다.
레드는 약초를 챙겨 근처 숲으로 향하였다. 숲에 다다르자 익숙한 풀내음이 그를 자극했다. 그는 잠시 풀내음을 음미하고선 주머니에서 작은 먹돌을 꺼내들었다. 그러곤 약초를 이내 먹돌로 갈더니 그만의 특수한 담뱃대에 넣고선 지포 라이터에 불을 켰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담뱃대에 불이 붙는 순간 타는 냄새와 함께 이어 불쾌한 썩은듯한 냄새가 조금씩 퍼져나갔다. 그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은듯 뻐끔뻐끔 피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향은 소리없이 나무 사이를 지나 풀숲 곳곳에 이르러 그 안에 짐승들을 깨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일 먼저 그의 눈에 띈건 노란목쥐들이였다. 뒤를 이어 그린위프를 포함한 여러 풀뱀들이 도착했고 시간이 지나자 피그미 뒤쥐떼가 도착했다. 그는 그러한 짐승들중에서 가장먼저 도착했던 노란목쥐를 선택하였다. 쥐는 기동성도 좋을뿐더러 후각도 뛰어나 무언가를 추적하는데 있어서 탁월한 성능을 보여왔다. 그는 쥐들에게 아드리아나의 향기나는 물품들을 꺼내어 그 향을 각인시키고는 그들을 다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