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이
8
과거 어느 한 시점. 대부분 이곳까지 들어와 본 이는 없다.
깊은 협곡 그 중간지대에 가파른 절벽으로 산양무리가 얼마 있지 않은 풀을 뜯고 있다. 보통 이러한 협곡에는 풀이 얼마 남아있지 않지만, 용케도 이 산양무리는 감춰진 풀을 잘도 찾아냈다.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이 조용한 협곡에서 오늘따라 산양무리는 바람이 서늘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이 무더운 협곡에 서늘한 바람이 분다는건 더위를 피한다는 의미에서 잠시나마 기분좋은 일이지만 진짜로 서늘한 바람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산양들은 잠시 주위를 경계했다. 분명 그들눈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코가 발달한 산양은 바람에 무언가 불길한 향이 서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도 아주 불길한.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안 그들은 주변을 다시 경계했다. 역시나 아무도 없어 보였다. 속임수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잠시, 바스락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더니 예상대로 날카롭고 기다란 물체가 저만치서 바람을 타고 날아와 그들을 위협했다. 산양 한마리의 뿔에 날카로운 쇳덩이가 하나 박혔다. 다행이었지만 역시나 위험했다. 산양은 본능적으로 위협의 반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챈 바위 뒤의 사냥꾼은 이젠 더이상 모습을 감추지 않고 산양무리를 쫓았다.
여기까지 접근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였던가. 무더운 태양을 뚫고 가파른 절벽을 넘어 여기까지 몰래 접근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는데 저깟 뿔 하나 때문에 일을 망칠 순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날렸다.
그는 젊은 시절의 레드로 구릿빛 피부는 여전했지만, 머리에 문신은 없었고 현재는 검은 정장이 아닌 부족의 복장을 한 상태였다. 등에는 큰활과 화살을 차고 있었고 왼쪽 허벅지에는 작은 손도끼가 있었으며 손에는 가느다란 창을 들고 서 있었다. 방금 쏜 화살이 하필 뿔 따위에 맞아버리는 바람에 다시 한 번 추격전을 해야만 했지만 그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얼마나 더 쫓았을까. 산양무리가 가파른 절벽 사이로 빠르게 도주했다. 그 역시 이에 질세라 몸을 날려 절벽 사이를 향했다. 그리고 아까 실패했던 활시위를 다시한번 당겼다. 하지만 오랜 추적끝 당기는대 힘이 부쳤는지 그는 작은 돌조각들에 미끌려 낭떠러지로 발을 헛디뎠다. 그는 본능적으로 왼쪽 허벅지에 있는 손도끼를 빼 들어 절벽을 내리찍었지만 끝내 1m가량 미끄러지더니 결국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가 되어버렸다.
'산양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런 경험에 익숙했다. 다만 그가 살짝 불안했던건 이 절망적인 상황보다도 이 사냥에 담긴 의미때문이었다. 이 사냥은 그져그런 보통사냥이 아닌 자신의 성인식에 쓰일 일종의 재물을 사냥하는 것으로 사냥감이 온전할수록 좋았다. 포획상태가 가장 좋았는데 이러한 절벽 사이에서 사냥감을 살아있는 상태로 잡아들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곧이어 발의 탄성을 이용해 도끼를 발판삼아 몸을 휘더니 다시 그 위로 올라왔다. 산양들은 이미 근처에 없었지만 그는 몸 상태를 정비하고선 다시 추적에 나섰다. 추적은 3시간가량 더 지속됐으며 이로써 그가 추적한 시간을 총 따져보면 대략 11시간 안밖이 되었다. 그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지만 이제 곧 어떻게든 결말이 날 것으로 여겨졌다.
멀리서 산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좀전의 긴박함에서 조금 벗어나 경계를 살짝 늦추고 다시금 풀을 찾아 서서히 움직이며 거닐었다. 그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그가 다시금 활시위를 당길 준비를 하고 그것을 당기려 하는 순간 뜻밖의 어색한 헐거움에 그는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아까 절벽으로 곤두박질칠때 활이 타격을 입은것 같았다. 짐승의 힘줄을 여러 꼬아 만든 활시위의 몇 가닥이 고된 사냥끝에 끊어져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창으로 그 도구를 바꿔섰다. 하지만 그는 창을 휘두르려는 것이 아니라 창 던지기를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는 일순간 숨을 참았다. 그리고 바람이 산양 쪽으로 부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바람이 산양 쪽으로 불면 창은 더 멀리 날아가겠지만, 반면 산양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게 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회는 여전히 한 번뿐이었다.
'하나...둘...셋!'
그는 이판사판으로 산양을 향해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창은 일순간 산양에게 적절히 도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모자라서는 꼴사납게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젠장할!"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젖먹던 힘을 다해 처박힌 창으로 돌진하였다. 그리고 발돋움과 동시에 창을 손으로 잡고선 그 탄성을 이용하여 저 높이 뛰어올랐다. 밑으론 달아나는 산양무리가 그에게 보였다. 그는 그렇게 적당한 타이밍이 다가오자 허벅지에 차고 있던 작은 손도끼를 빼 들었다.
"퍼억!"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레드가 산양의 머리 위로 뛰어들면서 그 정수리에 손도끼를 처박은 것이었다. 산양은 즉사한듯 보였다. 비록 포획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 정도 상처면 충분히 재물로 바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그는 잠시 숨을 돌리기로 하곤 그 자리에 가만히앉아 두 무릎을 꿇었다. 멀리서 어느새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독수리 떼가 그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새들은 요동치기 시작했지만 어느덧 그의 마음은 조금씩 잦아들어가고만 있었다. 다만 그러면서 동시에 한 생명에 대한 어떤 미묘한 감정이 그를 휩싸았는데 이렇듯 언제나 사냥을 하고나면 알수없는 요상한 기운이 속삭이듯 그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그는 이제 무릎을 꿇은 상태로 그들의 신에게 감사인사를 전하였다.
'와카톤카...사냥에 성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짧게 기도를 마치고는 아직 사냥감의 머리에 남아있는 손도끼를 조심스럽게 빼들었다. 그러더니 손도끼의 날을 사용해 이미 어느정도 끊어져 덜렁거리고 있던 활시위를 마저 끊어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다리 한쪽에 묶여있던 질긴 넝쿨을 풀어 사냥감에 동여매고선 등쪽을 향해 짊어졌다. 사냥감은 마치 덩치큰 아기마냥 그의 등에 엎혔다. 어느덧 주변은 붉게 물들어 가고만 있었다.
그는 깊은 밤이 되기 전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 자신의 정착촌으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협곡은 그 지형이 불규칙하기때문에 시야가 어두워지는 밤이 되면 더욱 위험해 질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기온은 현저히 내려갔다. 그는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였다.
하늘은 여전히 그가 지닌 피냄새를 따라 날아드는 날개들로 가득했지만 그것들보단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중간중간에 자신이 표시해둔 특별한 돌무더기들을 찾아내는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가 세 번째 돌무더기를 발견했을 때 그는 그 돌무더기 쪽에서 들려오는 날카롭고도 구슬픈 울음소리에 눈에서 귀로 감각을 돌려 틀었다. 소리는 돌무더기 뒤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카악! 카악!"
그가 점점 다가갈수록 그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발버둥치는 울음소리가 커져만 갔다. 깃털이 달린 검은 물체가 땅에서 꿈틀거리는데 커다란 새인것만은 분명했다. 그 크기가 특히 거대한게 레이븐인 거 같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독수리 같지도 않았다.
'콘도르?'
그는 붉은 머리의 새를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새는 그 정체가 불분명했다. 생김새는 콘도르와 닮았지만 그 크기는 콘도르보단 작은 일반 독수리정도의 크기였다. 아무튼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엎어져서 발버둥 치고 있는게 이대로 두다간 레드를 쫓아서 날아들고 있는 저들의 먹이감이 될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그가 그것을 자신의 사냥감으로 삼기엔 어딘지모를 불길한 기운을 풍겨내고 있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이러한 검고 민들한 대머리의 새들은 썩은 동물의 사체를 먹고사는 청소동물일것이 뻔하였다.
그는 바둥대고 있는 그 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날카로운 부리가 그의 손길에 응답했다. 하지만 어쩐지 큰 힘이 들어가지 않는것이 어떠한 메세지를 그에게 보내는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메세지는 삶을 갈구하는 구원의 메세지일것임에 분명했다. 그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병의 뚜껑을 열어 재꼈다. 얼마 남지않은 물이었지만 만약 그가 약간의 탈수를 견뎌내며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마을에 도착하는 것은 문제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그 새에게 물병의 물을 흘려 보냈다.
새는 그저 홀짝홀짝 물을 마셨댔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떨어진 새의 몸상태를 점검하였다. 보아하니 한쪽 날개에 문제가 있어보였다. 피가 말라붙어있는 부분도 있었고 조금씩 흘러나오는 부분도 있었다. 상처의 크기는 대략 10cm 안밖으로 보였는데 이러한 상처는 날아다니는 새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엔 새가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마 자신에게 건내준 선의의 의도를 깨닫고선 조금은 안심이 된 모양이었다. 문제는 새의 상처가 심해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레드에게 남아있는건 찢어진 활시위와 자신이 입고있는 옷가지, 그리고 사냥감과 사냥도구들이 전부였다. 자신의 물품들을 한번 살표본 레드는 먼저 활시위 일부를 가늘게 풀어내어 실로 사용해 새의 상처를 꿰매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분명 다른 짐승이 와서 잡아먹거나 말라죽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잡은 사냥감을 이용하기로 하고선 그의 손도끼를 사용하여 사냥감의 겉가죽을 벗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창대와 활을 부러뜨리더니 그것을 이용해 콘도르 주변에 나무기둥을 연이어 세웠다. 이어서 가죽 끝마다 각 기둥의 끝에 활시위를 사용해서 묶었다. 그러자 작은 움막이 생겨났다.
'이로써 재물은 물거품이 됐군.'
어차피 이 정도 손상이면 재물로는 더 이상 쓸 수가 없겠다 생각한 레드는 가죽을 벗기고 남은 부분을 손도끼를 이용해 잘게 썰었다. 그러고는 콘도르가 들어가 있는 작은 움막에 넣어주었다. 그리고선 마지막으로 자신의 윗옷을 벗더니 그것을 땔감으로하여 불을 피워댔다. 고기 냄새를 없애고 다른 짐승들을 내쫓기 위한 방편이었다. 결국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에 빈털터리가 되버린 레드였지만 어쩐지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 하늘은 더욱더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움막과 그 주변을 살펴본뒤에 콘도르에게 작별인사를 건내고선 서둘러 나머지 지표를 찾아 다시 길을 나섰다.
한편 마을에서는 레드가 늦어지자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짐승에게 잡혀갔다는 등 절벽에서 떨어진 게 분명하다는 등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며 주변 분위기를 긴장감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서히 레드를 구하러 가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일부는 그를 찾아나서기 위해 이미 장비를 꾸리고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어떠한 그림자를 하나 바라보더니 꾸리던 장비를 내려놓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은 돌아온 레드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일부 그의 경쟁자들은 빈손으로 돌아온 레드를 보고서는 안심하는 눈빛을 보였으며 몇몇은 그를 정말 걱정하는 듯 쳐다보았다. 레드는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는 말없이 부족장이 머무는 곳을 향해 걸어나갔다.
부족장이 머무는 곳은 지대에서 꽤 높은 곳으로 마을 전체가 보이는 협곡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움막과는 다르게 움막 중간에서부터 위쪽으로 붉은 염료가 물들여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움막에 비해 크고 화려하거나 과도한 장식이 되어있진 않았다. 그들은 평등한 공동체를 중요시했기에 아무리 부족장이다 하더라도 자신이 과도한 대우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그들의 정신이 그의 공동체를 지금껏 굳건히 지키는 버팀목일지도 몰랐다.
"다녀왔습니다."
레드가 말했다. 잠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곧이어 천막이 젖혀지면서 로브를 걸친 한 사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덩치가 큰,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내는 바로 이 부족의 부족장이었다. 부족장은 짙은 피부색에 장이라는 표시로 붉은색 염료를 사용해 이마 가운데 그들의 상징이 새겨져 있었고 커다란 막대같은 것을 하나 지니고 있었다.
"그래 다녀왔는가?"
부족장은 그리 말하더니 잠시 레드의 손을 보고선 다시금 되물었다.
"성인식에 쓸 재물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레드가 힘없이 대답했다.
"사냥은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잠시 생각을 고르던 부족장은 이내 알겠다는듯 그의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침은 언제나 지켰겠지?"
"물론입니다."
부족장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족장의 움막 옆 커다란 고목 위에 작은 동화에서나 나올듯한 파랑새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이 계곡에 서식하는 파란색 어치였다.
"피곤할테니 들어가서 쉬도록 하여라."
레드에게 작별을 건넨 부족장은 다시금 움막 안쪽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레드는 다시 무리들 속으로 돌아갔다. 반가워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레드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레드는 마을에서 사냥 수준이 괭장히 뛰어난 축에 들었을 뿐더러 그의 후각을 사용한 추적능력은 거의 마을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가 자신도 모르게 어떠한 부정을 저질러 능력을 잃었다는 등,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등 각자의 부정적인 결론을 내려대고 있었다. 물론 그의 경쟁자들은 그의 성인식이 망가진 게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게 대부분이었다. 그가 경쟁에서 뒤처질수록 자신이 부족장의 자리에 더욱 가까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들의 수군거림이 들렸지만 그들을 뒤로하고선 자신의 움막으로 들어가 그의 어머니께 감사인사를 올렸다. 그의 어머니는 말없이 미소만을 띠며 그를 맞이하였다.
이 시각 부족장의 움막에서는 늦은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어쩐일인지 아직 화로에 불이 꺼지지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족장이 보낸 감시관이 이제 막 부족장의 움막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 감시관은 천으로 둘러싼 무언가를 들고선 서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감시관이 천으로 감싼 물체의 정체를 족장에게 보여주자 족장은 그것이 다름아닌 상처 난 콘도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감시관은 레드의 사냥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족장에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거의 모든 설명을 끝날때쯤 어둠속에 조용이 그 이야기를 듣고있던 한 여인이 그 모습을 불빛에 드러내었다. 바로 부족장의 아내였다.
"역시 그 아이를 잘못 본건 아니었어요."
족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레드의 성인식은 날아가 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부족원의 구성원으로써 사냥에 참여해 그의 부족을 도왔다. 오래전부터 봐오던 사냥감들이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예측하기 힘든 상대들이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사냥감들은 늘 그렇듯 레드를 인식하고서는 자신들이 유리한 고지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레드는 이번엔 사냥감들을 뒤쫓기 보단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멀리있는 무언가를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지나지 않자 언제 어디서부터 등장했는지 모를 거대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저 능선너머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냥감들은 그 붉은 머리에 검은 그림자를 보자 당황해하며 그들의 진로를 잃어버리고 제각기 흩어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다시 레드 쪽으로 다가오는 무리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확인한 레드는 사냥감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고 이번엔 뿔에 맞히는 실수를 하지 않고선 그대로 심장에 그의 화살이 박히면서 사냥감은 땅으로 곤두박질쳐 바둥거렸다. 하늘에는 여전히 그의 검은 짐승이 쓰러진 사냥감의 마지막 숨통을 확인하듯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한때 레드에게 목숨을 빚진 그 짐승은 이제 날개의 상처 대신 부족의 특별한 태양문향을 그곳에 새기고선 레드의 새로운 동료로써 그의 곁은 지키며 배회하고 있었다.
현재의 레드는 눈을 들어 나무에 앉아있는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과거의 늠름한 검은 빛을 잃지 않은 그는 언제나 자신보다 한발 앞서있다는듯 레드를 내려다보며 앉아있었다.
"그리디씨 이번에도 와주셨군요."
레드는 그의 이름을 특별히 부족장의 허락을 받아 직접 지어줄 수 있었는데 그렇게 지어진 이름이 바로 '그리디 윈드(욕심 많은 바람)'였다. 이름을 그렇게 지은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콘도르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었다. 다만 레드가 구해준 이 콘도르는 그 정체가 정확히 콘도르인지는 확실하지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독수리인지 콘도르인지 명확하지 않았지만 녀석의 습성이나 취향으로 볼땐 콘도르에 가까웠다. 바로 사체를 탐닉하는 습관이었다. 사체에 대한 탐닉이 자신의 날개만큼이나 큰 녀석이었으니깐.
오랜만에 본 그리디와는 좀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 레드였지만 그는 그러한 것들을 뒤로하고 자신이 수거해온 물품들을 꺼냈다. 이어서 그는 담뱃대에 어떠한 약초를 끄집어내어 먹돌로 잘게 빻아 넣은 다음 불을 붙이고선 그 방향을 수거품 쪽으로 향하게 하였다. 향은 약초때문인지 그 향기가 점점 짙어져 갔고 그리디는 그러한 그의 의도를 알아챘는지 날개를 접고선 땅으로 내려와 연기가 나는쪽을 향해 삐그덕 거리며 다가왔다. 그렇게 1분 정도 지나자 그리디는 살짝 날개의 도움닫기로 뛰어서는 레드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번에도 절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리디씨."
레드가 말하자 그리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번 부탁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군요.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선 레드는 그리디의 한쪽 발에 묶여있는 어떠한 상자를 집어 들었다.
"선물은 고맙게 잘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