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의 키워드는 복직이었다. 육아휴직을 완전히, 그리고 온전히 사용한 나는 다시 워킹맘으로, 그러니까 일-육아의 무한 저글링에 재입성했다. 회사에서는 과장으로의 책임이, 집에서는 엄마로 또 아내로의 책임이 묵직했던 한 해였다. 저글링의 핵심은 어느 한 곳에 힘을 집중시키지 않는 것이다.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욕심이 도리어 모든 역할 간의 균형을 깨트린다는 아이러니.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내게 주어진, 혹은 내가 선택한 모든 역할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한 해였다.
1. 회사원의로의 한해 : 승진이라는 목표를 갖다.
복직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복직할 부서를 찾는 일이었다. 어느새 회사생활 10년 차, 차장 승진을 바라보게 된 나는 수많은 대상자들이 있는 부서와 처를 피하여 복직부서를 정해야 했다. 가고 싶은 부서가 아니라 갈 수 있는 부서들 중에 적합한 곳을 찾던 내게 예전에 내가 근무했던 부서의 옆팀 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먼저 왔다. 같이 일해보고 싶다고. 인연이란 참 알 수 없지. 파티션 너머로 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함께 일하면 좋을 것 같았다는 부장님의 따뜻한 오퍼로 나는 별 무리 없이 현 부서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간 수많은 친한 선배들이 차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고, 또 옆에서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간접경험이 꽤 많이 누적되어 나름 승진체계에 대한 이해도 높고, 그리고 내가 그리 불리하지만은 않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딪혀보니 완전한 오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매 단계마다 생각지도 못한 리스크와 변수들을 마주하며, 우리 회사에서 승진이란 것은 온전히 개인의 능력 혹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또 운에만 기댈 수 있는 것도 아닌, 그리하여 정답으로 향하는 공식이 존재치 않은 매우 복잡하고도 기이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차라리 과장 진급 때처럼 시험점수가 그 기준이 된다면 깔끔했을걸.
그러나, 직접 한해를 뛰어보며 느낀 것은 차장 진급을 다면 평가로 하는 이 제도는 꽤나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이 조직을 홀로 굴릴 수는 없다. 일을 할 때 성과지향적 목표가 우선이 되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그 목표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협업하여 다름의 에너지를 갈등이 아닌 시너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이 그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이 전략이 적합한지, 예상 가능한 장애요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지, 모든 업무과정 그 중심엔 카운터 파티를, 결재선의 수많은 상사를, 설득하는 힘이 필요하다. 논술시험 같은 이론에서는 설득이라는 것이 다만 반박 불가능한 논리만 갖추면 되는 것이겠지만, 지면이 아닌 수많은 유기체들의 결합인 현실 조직 안에서의 설득은 다만 논리로써 얻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이다.
한해 짜리 승진 과정을 체험하며 조직 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회계, 계약, 재무, 전략, 사업 각 분야의 명성 높은 선배들을 만나며 일에 대한 열정도 다시 깨워보고, 그간 나와 인연이 닿았던, 혹은 내가 인지하지 못했지만 스쳤던 선배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함께 뛰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조직생활 헛하지 않았다는 자부심도 다졌다. 진급의 기준이 5지선다 시험이었다면 알지 못했을 가치들이었다. 중간관리자 이상의 리더로서의 자질을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다면평가는 어쩌면 가장 적합한 제도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만큼 똑똑하고 유능한가를 입증해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만큼 차장으로서 필요한 (복합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조직구성원에게 설득해 낼 수 있는가, 그것이 이 제도의 취지이자 목적임을 인지했다.
결론적으로 올해 나는 대상자로써 본선까지는 올랐으나, 승진을 하진 못했다. 훌륭한 선배들도 재수, 삼수, 사수까지도 거뜬히 거치는데 내가 뭐라고 복직한 해에 단번에 될 리 없는 도전이었다. 그것을 마음깊이 알았기 때문인지(자기 객관화 잘되는 편), 결과에 조금도 낙담하지는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뭐든 가까스로 문 닫으며 하고 싶진 않다. 통제불가능한 변수에 지지 않고, 한해를 잘 준비해서 문 열고 들어가며 될 수 있길. 지금까지도 잘해왔기에 새로운 다짐이 바탕이 되는 동력은 필요치는 않을 것 같다.
2. 엄마로서의 한해 : 학부모가 되다.
원체 인생을 계획대로 살아본 적도 없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 계획의 무의미함을 더욱 체감한다. 내 인생도 예기치 못했던 수많은 우연과, 기회와, 사람들로 점철되어 지금 이 순간까지 흘러왔듯 아이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서부터 우연이 시작된 걸까. BBC가 제작한 띵작 넘버블럭스를 우연찮게 유튜브로 접했던 그날일까, 가장 친한 친구가 소개해주어 시작한 파닉스 수업부터일까, 짧은 영어를 내뱉으며 자신감을 쌓았던 방콕여행부터인 걸까, 같이 모임을 갖는 엄마들을 통해 국제학교 정보를 우연히 접하게 된 그날인 걸까. 우연의 연속이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아이가 가벼운 마음으로 입학시험이나 한번 쳐보지 라며 지원한 국제학교로부터 덜컥 합격통지서를 받아왔다. 집 근처 초등학교를 생각했던 우리 부부에겐 불과 몇 개월 만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였으나, 변화의 깊이를 체감하지 못한 채 상반기를 보냈다.
한국식 학제와 다르게 미국식 학제에 따라 국제학교는 가을학기에 시작하였고, 아들은 또래 친구들보다 6개월 빨리 초등학생이 되었다. 나 역시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는 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가 되어버렸다. 가방을 고르고 교복을 맞추고 입학 전 준비를 할 때만 해도 실감이 안 났는데, 아이가 준비물로 가득 찬, 자기 키의 반정도 오는 책가방을 어색하게 메고 교문에서 헤어지며 바이~하고 인사하던 첫날, 학부모가 되었음을 비로소 실감했다. 내 품 안에서, 내가 세계의 전부이던 콩알만 하던 시절이 아직도 회상하면 눈앞에 너무도 선명한데, 이제는 홀로 교정을 걸어 교실로 가고, 친구를 사귀고, 쉬는 시간에 매점에 가서 배를 채우고, 방과 후 활동까지 많은 교실들을 전전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학생이 되었다는 것이 아직도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같은 반 친구들과는 달리 한 번도 학습식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본 적이 없는 아들이 영어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생활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뒤쳐지지는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으나, 모두 기우였다. 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에 집중할 수 있는 나의 단순함을 빼다 박았고, 남편의 무슨 일이든 성실하고 꼼꼼하게 끝까지 해내려는 지구력 DNA를(나에겐 없음) 물려받았다. 정답을 모르면서도 적극적이고 뻔뻔하게 나서는 점, 그리고 다정함으로 이성친구들의 호감을 얻는 점 등은 우리 부부 중 누구도 닮지 않은 본인의 고유 영역인 듯했는데, 이 모든 것들의 조합으로 그는 자신만의 학교 생활을 즐거이 해나가며 불과 반학기만에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쩌면, 인생을 다시 살아보는 일이다.
내가 겪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기억에서 사라진 수많은 나의 날들을 나는 아이를 통해 다시 복기한다. 처음 등교하던 날의 떨림도, 좋아하는 친구가 편지를 써줬을 때의 설렘도, 새로운 도전 앞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마음도, 하나씩 주어진 퀘스트를 성취할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도 모두 아이의 것이자 내 것이기도 하다.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 내게도 존재했을 수많은 순간들을 아이의 입으로, 눈으로, 미소로 나는 다시 하나씩 더듬어 본다. 다시 복기해 보는 경험들 덕분에 기억너머의 흑백이었던 조각들이 다시 그 색을 찾고, 나의 어제를 현재화시켜, 바로 오늘의 순간처럼 반짝이게 한다.
아이가 선택인 오늘날, 아이를 통해 얻는 기쁨이나 효용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꼰대로 비칠까 싶어 조심스럽다. 그러나 젊은 후배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단순히 희생과 책임뿐이라고 생각하며 기피하려 하는 단편적인 사고를 공유할 때면, 경험하지도 않은 세계에 대해 어쩜 그리 확언할 수 있는지 나는 그저 궁금하기만 하다. 아들을 기르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였지만 그것을 한 번도 희생이라 이름 붙이지 않는다. 나는 내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언제나 가장 내 행복을 최대치로 만들 수 있는 선택을 했을 뿐, 그것이 결과론적으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지라도 그것이 아이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결혼을 하며 타협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겸손을 배운다.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오늘’ ‘나의’ ‘기쁨’ 만을 누리는 것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를 통해 나는 과거의 내가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보는 진귀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매일 성장하고 있는 그로 인해 어느 하루도 똑같지 않은 현재의 다채로움을 누리며, 내가 죽고 난 이후의 나의 아들이, 나의 손자가 누리게 될 무한한 미래에 대해 앞서 걱정하기도, 동시에 그보다 더 크게 기대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기쁨을 흔히 우주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우주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우주의 아름다움 보단 우주에 갔을 때의 위험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고, 그저 타인의 경험에 비추어 드는 우려나 짐작만으로 우주의 아름다움을 폄하하진 않았으면 한다. 아이 없는 삶을 존중하는 시대적 분위기만큼, 아이 있는 삶의 가치도 지금보다 좀 더 인정받을 수 있길 바라본다.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다짐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에 더는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하며 영속되는 시간의 흐름에 물리적인 경계를 지어 마음을 새로이 고쳐먹는 일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미 거시적인 삶의 방향과 목표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년도, 내 후년도 그리고 당분간 내 인생의 포커스는 일-육아-가정간 역할을 조율하며 행복을 최대치로 만드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견된 미래를 안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면 또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선 뜻 모르게 마음이 불쑥 인다. 인생이라는 집의 벽, 기둥, 지붕 등 굵직한 파트가 이미 다 완성이 되었다고 해도, 창문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낼지, 마당에 어떤 종류와 색깔의 꽃을 심을지, 어떤 재질의 벽지를 붙일지 등 여전히 미완성된 부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그리고 완성된 부분이 내게 주는 안정감만큼이나 그 미완성된 부분이 내게 주는 기대감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실체 없는 기대감이 올해의 매일매일을 충실히 살게 해 주는 동력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Into the unkn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