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 모두의 특별함에 대하여
"나는 특별하다"
고등학생 시절, 독서실 내 자리 한가운데에는 이 문구가 3년 내도록 자리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노곤한, 모두에게 1평 남짓하게 주어진 독서실 공간이라는 곳은, 그 어떤 불면증 환자도 비켜갈 수 없을만큼 아늑한 잠자리를 선사한다. 덕분에(?) 그곳에서 옆자리 경쟁자가 아닌 잠과의 사투를 벌이던 우리들은 부디 잠대신 꿈을 쫓을 수 있도록 자신만의 비장한 각오를 앞다퉈 적어 붙였다. (ex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etc.)
내 문구는 그 어느 자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특별"했는데, 그러한 사실조차 단짝친구가 내게 질문하기 전까지 나는 인지하지 못했었다. 우리만의 아지트 김밥천국에서 야식을 먹다가 친구가 어느날 내게 물었다. "그 문구를 왜 붙여놓은거야? 도통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서."
부모님은 나를 "특별"하게 키우셨다. 나는 친구들과 하는 이야기를 부모님과도 나눌수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나의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기질도 한몫했겠지만, 20여년 넘게 나를 빚어낸 가정 환경이 그러했다. 우리집은 작은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가족 회의(?)를 수시로 개최하는 집이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가족신문을 매월 발간하는 집이었으며,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아침 식사에 불참하면 나무라는 "특별"한 집이었다.
아이때부터 나의 의견은 늘 한사람분의 의견으로 존중받았고, 그에 따라 과자를 고르는 아주 작은 결정부터 어느 대학을 진학하겠다는 제법 큰 큰 결정까지 모두 자연히 나의 결정이자 나의 책임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결혼할 땐 해주신 것 이 없지만(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의 지붕밑에서 함께했던 20여년의 세월 동안 내가 언제 어디서든 나다움을 잃지 않고 행복을 쫓을수 있는 능력치를 길러주셨다. 배낭하나 짊어매고 세계 여기 저기를 떠돌며 우리가 나눴던 대화들, 고생했던 추억들, 좋은 것을 보며 함께 나눴던 감상들,,, 그 오래된 책같은 따뜻하고 낭만적인 공기를 쬐며 나는 자랐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 아버지는 명절이면 갓을 쓴 할아버지들이 족히 세줄로 서서 절을 올리는 종갓집의 장손이라는 점이고, 어머니는 부족한 살림에 딸자식이 대학 생각을 한다며 외할머니로부터 나무람을 받던 집안에서 자랐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이 자라온 환경을 딛고(?), 내게 기꺼이 친구같은 부모가 되어주었다.)
이런 영향일까, 사춘기 소녀가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며 비장한 신조로 특별하다는 간결한 문장을 택한 까닭은? 나는 별 생각없이 그 문장을 써붙였지만, 그 문자의 힘이 부적같이 남아 힘들었던 시기를 나답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생각한다. 자신에게 한없이 나약해지는 사춘기 수험생 시절조차, 나는 성적이나 뚱뚱한 몸매 따위가 나의 "특별"함을 갉아먹진 않는다고, 그러니 모든 것을 괜찮다 여기며 불안한 시절의 나를 다독였다. 나는 누구보다 즐겁고도 튼튼(?)하게 그 시절을 보냈다. 그 결과로 나는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에 진학했고, 그땐 내가 대단히 "특별"한 삶을 살 줄 알았으며, 이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꿈꿨다.
특별함의 환상속에서 벗어나게 된건 아마도 대학을 진학하면서 부터였던것 같다. 세상엔 나처럼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닌 정말 문자 그대로 "특별"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알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자각은 취업준비생 시절 절정에 달하였는데, 결국 장래희망란에 적었던 수많은 화려한 직업들을 뒤로하고 나는 누구보다 간절하고 뜨거운 마음을 모아 (가까스로) 공기업에 입사했다.
인생의 버스는 항상 우리를 엉뚱한 곳에 내려놓는다고 했던가. 늘 반짝이고 싶었던 나의 인생은 입사 후 얼마 안되어 남편될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동시에 회사생활을 하는 누구보다 평범한 워킹맘의 삶으로 방향을 튼다. 그런데 참으로 재밋는 사실은 엉뚱한 정류장에 내렸다 생각했는데 그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니 정확히 내가 바라왔던 정류장에 내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커리어 우먼도, 현모양처도, 이도저도 아닌 평범한 워킹맘으로 살고 있지만 삶의 그 어느 순간보다 꽉 찬 행복을 마음 깊이 느낀다. 아이를 키운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육아를 하며 정작 크는건 내 자신이다. 회사생활을 그저 버텨낸다고 말하지만, 사실 조직속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나라는 사람에 대해 가장 잘 알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가치로운 교훈들을 얻을 수 있는 매일 매일은 여전히 내게 재미나고도 "특별" 한 삶이다.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겼던 내 자신의 이야기가 비단 나만의 이야기일까.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향유하며 비슷한 일상을 살아도 그 속에서 얻는 생각이나, 감흥은 모두 제각각이며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그것이 특별할 것 없는 우리 자신의 삶을 "특별"하다 믿게되는 이유일테고, 어쩌면 자기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두려 시작한 책이지만, 글을 쓰며 문득 깨닫는다. 이 글은 어쩌면 평범한 매일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의 특별함에 대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