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이 어디예요?

볼일은 편하게 좀 봅시다.

by JCK

아버지, 어머니라 쓰고 부모님이라 읽는다

어릴 적 질풍노도의 시기라 할 수 있는 사춘기 즉, 중•고등학교시절 우리 집은 동네에 어머니가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셨다. 아버지는 하루하루 입금해야 하는 금액이 정해져 있는 법인택시를 운영하셨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운전하여 벌어들이는 돈은 법인회사에 입금을 해주고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셨다. 몸이 고된 직업이다 보니 그날그날의 몸의 컨디션에 따라 혹은 고객들이 많은 날, 적은 날 기복이 심하여서 정해져 있는 금액을 맞추지 못할 경우도 번번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메꾸고는 하셨다. 하루 12만 원 상당의 입금액을 입금하고 5일 근무 1일 휴무 방식으로 한 달에 평균 25일을 택시 운전대를 잡으신 아버지의 월급은 140만 원 채 되지 않았다. 4인가족이 먹고 살아가기에는 쉽지 않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고군분투하시면서 장사를 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 오른다. 어머니는 아침 오전 6시부터 새벽 2시가 넘는 시간까지 한 푼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 슈퍼문의 셔터를 내리지 않으셨다.


무엇이 문제 일까?

요즘에는 잘 볼 수 없지만 15년 전까지만 해도 흔히들 볼 수 있는 구조였던 자영업을 하는 곳이면 안쪽에 방이 하나 있는 구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 집 또한 슈퍼 안에 방이 하나 있었는데 문은 여닫이 문이 아닌 옆으로 밀면 열리는 미닫이 문이 있었다. 문 하나만 열면 바로 우리 가족의 사생활이 다 노출이 되는 방에서 4인 가족이 생활했다. 옆집은 중국집이었는데 예전 중국집은 요즘의 트렌드인 청소 청결 정리 정돈 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덕에 우리 집 또한 청소를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바퀴벌레, 쥐 등 달갑지 않은 생물들의 출현이 불가피하게 많았다. 슈퍼 내에는 화장실이 없었고, 목욕조차 샤워기가 아닌 빨간 계열의 고무 대야에 목욕물을 받아서 물을 뿌려가며 샤워를 했었다. 집에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에 공중화장실을 이용했는데,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낮에는 큰 볼일을 보러 갔다가 불량청소년들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 때문에 볼일을 끝 마치고도 어렸을 적 두려움 때문에 학생들이 이야기가 끝나고 자리를 뜨기를 기다렸다가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가 없어지는 밤이 되면 공중화장실에는 형광등을 켜주지 않아 무서움을 무릅쓰고 손전등을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는 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주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흔히들 말하는 흙수저 반열에 나도 몸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이 문제였기에 나는 왜 그런 상황들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걸까? 슬픈 이야기이지만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사춘기 시절에는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과거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가며, 현실에 적응해 버린 나사 빠진 머리와 느슨해진 지금의 마인드를 다시 잡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