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처럼 움직여라

상어는 부레가 없어서 잠깐이라도 움직임을 멈추면 물속에 가라앉아 죽는다.

by JCK

중학교를 입학하고 난 이후로는 "내 밥 벌이는 내가 알아서 하자"라는 생각으로 한 달 이상 생산적인 활동을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입시학원, 영어학원 등을 다닐 수 있을 만큼 집안에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고, 슈퍼 안 단칸방에서 부모님의 언성이 높아지는 매일 밤마다 내 귀를 속삭이던 원인이자 공통적인 단어는 애석하게도 '돈' 이였다. 어머니는 돈이 없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고 아버지는 능력은 없어도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는 상태였으므로 밤마다 울고 있는 동생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당시 중학생시절에는 주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자주 했었는데, 번화가를 걷다가 무작정 가게 안을 들어가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지, 구한다면 시급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는 했었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시간제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의 장당 수량만큼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100장당 500원, 600원 가게마다 취급해 주는 금액은 상이했다. 하나의 에피소드로는 유치원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 한 아파트에 들어가서 세대마다 전단지를 붙이고 있는 중이었는데 옆에서 문이 열리더니 학교의 같은 반 친구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당황스러움도 있고, 순간적으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에 부끄러움이 몰려와서 인사만 간단하게 하고 바로 헐레벌떡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왔던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시절에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평일에는 하교 후 한정식집에 서빙하는 일을 하러 갔고, 학교를 ㅇ교하지 않는 주말에는 결혼식 웨딩 뷔페서빙, 인형탈 쓰고 홍보하기, 택배 상하차 등등 할 수 있고 여건에 맞는 아르바이트는 닥치는 대로 했었다. 주된 아르바이트는 평일에 하는 5시간 한정식 아르바이트였다. 시급이 당시 최저시급이 높게 측정되는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2500원을 받았고 3개월 후에 100원씩 올려줬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악덕사장이지만, 당시에는 충성을 다 하며 출퇴근을 했었다. 기간이 지나, 시급이 3300원이 되었을 때 어머니 생신축하를 위해 하루일당이 필요해서 금일 하루일당을 받을 수 있는지 사장님께 말씀드리니 5시간 근무 후에 만 원짜리, 오천 원짜리, 천 원짜리, 오백 원짜리 하나씩 들어있는 16500원을 받았었는데 흔히들 아는 파리바게트에서 홀 케이크인 고구마 케이크를 사는데 돈이 모자라서 그나마 저렴한 일반 생크림 케이크를 살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다.


인격적으로 철이 들고, 경제관념이 자리 잡히며,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와, 그 어린 나이에 느꼈던 경제적 약육강식.. "돈"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들이 이 시기쯤부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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