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딸, 시호

by 전찬민





벽에 걸린 한 달 일정표를 기입하는 담당은 작은딸이다. 네 식구의 일정을 꼼꼼히 기재한 후, 중요한 날의 전날에 당사자에게 알려주는 것을 일종의 게임같이 즐기는 아이인데 어쩐지 12월은 한 날 밖에 적혀있지 않다.


“しほの バースーデー”


하얀 여백에 파란색 팬으로 적힌 12월 9일, 나에게 두 번째 딸이 태어난 날이다. 난 형제가 없어 늘 2명 이상은 낳고 싶었다. 첫째 임신기간을 너무 건강하게 보냈고 키우는 것도 불안과 힘듬은 별도로 가장 커다란 행복을 느낀 날 들이었다. 그래서 둘째를 욕심냈다. 한 명만 낳아서 편하게 살라고 다들 만류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 아이에게는 평생 친구 같은 가족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싸이월드 도토리도 달라 할 수 있고 친구와 싸우고 들어와 하소연도 하고 옷도 뺏어 입고 아무에게도 말 못 할 집안일도 같이 공유하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줄 형제. 난 어쩌면 내가 그토록 갖고싶었던걸 내 아이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빠, 형제, 그런 거, 어떻게 내가 가져볼 재간이 없는 것들..




작은딸은 큰딸과 달리 입덧이 유난했다. 먹고 싶은 건 맥도널드 햄버거 밖에 없고 기운이 너무 없어서 거의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했다. 웃었던 기억도 태교를 한 기억도 없다. 외출은 짐을 잔뜩 실은 남편의 회사차를 얻어 타고 현장에 쫓아가는 거뿐이었다. 폐기물과 뒤 썩여 먼지가 가득했지만 집에 혼자 누워있을 나를 걱정해 남편은 조수석의 먼지를 최대한 털어내고 현장 동네의 맛집과 공원을 미리 찾아두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열심히 데리고 다녔다. 오늘은 나오라 할까 남편의 호출만 기다렸다. 오후 4시쯤 큰딸을 데릴러가는데어린이 집은 어른걸음으로 왕복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아직 2살밖에 안된 큰딸과 걸으면 1시간은 걸렸다. 어느 날은 강아지풀을 한참 구경 하느냐 2시간도넘게 걸리곤 했는데 나 힘든 것만 생각했다. 한국에서 놀러 온 혜민이는 이 먼 거리를 아이를 걷게 했다며 크게 놀랐다. 난 큰딸을 너무 큰 아이 다루듯 했었던 거다.하루는 샤워를 하고 나와 로션을 바르다 말고 엄마 힘들다며 울면서 말 좀 들으라고 혼을 냈다. 왜 혼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아이가 얼굴이 벌게지도록 울었고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는 젖어있었으며 잔뜩 겁이난 얼굴이 선명하다. 그때 난, 좁은 욕실에서 배가 불룩 나와 주저앉은 채 아이보다 더 크게 울었다. 어느 날, 친구 카메라에 찍힌 큰아이는 손톱을 뜯고 있었다. 내 욕심이 어딘가를 금 가게 하고 있구나 처음으로 자고 있는 큰딸의 손톱을 드려다 보았다.



큰딸 때도 젖이 안 돌더니 작은딸도 안 나왔다. 애쓰지 않았다. 갓난아이를 집에 데려온 첫날, 작은딸을 재우려고 등을 돌리 자, 큰딸이 처음으로 크게 울었다. 출산으로 1주일을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아쉬운 얼굴 한번 비취지 않았던 아이가,

"엄마가 아기만 쳐다보고 나는 모르 척 해 “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바로 분유로 바꾸고 젖병을 입에 물렸다. 품에 쏙 한번 안지 않았다. 큰딸 눈치를 보며 천장을 바라보고 양쪽에 아이 둘을 두고 재웠다.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작은 딸은 내 위로 올라와서 잤다. 엄마품을 찾아서 왔구나 싶어 그때부터 한참을 위에 올려놓고 잤다. 손가락은 꽤 오래 빨았고, 아직도 너덜너덜한 타월을 얼굴에 대고 잔다. 모든 것에 원인은 나인 거 같다.

나의 제일 큰 우주는 큰딸이었고 이 아이가 조금이라도 외로울까 슬플까 늘 조바심이 나던 나는 모든 일정을 큰아이 중심으로 했다. 작은딸이 생후 3개월만에 원에 들어 간 이유도 내가 보육을 하면 큰딸이 원을 나와야 한다하길래 어차피 해야 하는 일 조금 빨리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일찍 복직했다.

아직 뒤집기도 못할 때였다.


재워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자고 정말 잘 적응한다며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칭찬했다. 뭐든 알아서 잘하지만낯을 심하게 가려서 담임선생님 외에는 쳐다도 못 보게 한다며 그것 또한 똑똑해서 그런 거 아니겠냐고 웃으며 말씀하시지만 눈이 퉁퉁 부운 작은 아이를 건너 받으며 애기띠를 할 때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을 삼켰다. 어떤 말을 들어도 모든 게 죄인이 된 거 같아 미안했다. 모든 ‘첫’ 순간은 어린이집 수첩으로 알았고 알레르기가 처음 올라와 병원에 실려갔을 때도 난 일이 끝난 후에나 병원에 갔다. 나를 대신해서 아이를 안고 있던 선생님은 “괜찮아요 어머니” 나를 도닥였다.




늘 두 번째로 밀려났던 아이, 새 거보단 물려받는 게 익숙한 아이, 지옥 같은 풍파가 몇 번이고 지나가는 동안 묵묵히 자신의 몫을 잘 해내고 있는 아이, 빨리빨리 세월이 가버려서 노인이나 돼버렸으면 했던 나에게 세월이 가는 게 아쉽다는 걸 알려준 아이, 어느새 눈매도 손도 발도, 소녀가 된 작은딸은 오늘 만 10세가 되었다.

어젯밤, “난 행복한 건 같아” 저녁을 먹는 도중 갑자기 뱉은 그 말에, 늘 무겁게 누르고 있던 나의 죄책감이 아주 조금 부서져 나간 거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시린 바람이 마음의 구멍에 불어 들어오는 엄마를, 아무 때고 다가와 와락 힘껏 안아주는

나의 천사 생일 축하해.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