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디폴트 값이 다른 줄 몰랐다. ‘누구네집은 뭐 시키나’의 질문은 밥반찬은 뭐해먹나 정도의 궁금증이었다. 누구든 물어보면 하나같이 “ 안 해요. 딱히” 가 대부분의 답이었다. ‘안 해요’라는 말에 안심했고 ‘딱히’라는 말에 의심했지만, 그래도 해봤자 구몬 이나하고 영어노래나 틀어주겠지 했다. 뭐 특별하게 하겠어 할 놈은 알아서 다 한다 싶어 나의 대답도 당당히 ‘안 해요. 딱히’ 라며 지긋이 웃었다. 그것은 나 또한 딱히 안 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나도 너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동지의 눈빛이었다.
큰아이는 학원을 반년 다녔다. 지문 그대로 답을 쓰면 될 것을 꼭 자신의 생각을 몇 줄 더 써서 오답처리가 된다고 몇 번이고 상담을 했다. 아이의 독서는 소설로 편식돼 있고 상상력은 좋을 순 있지만 시험에는 별 도움이 안 되니 소설을 끊으라는 극단의 처방이 내려졌다. 그 길로 난 학원을 끊었다. 성적이 우수한 딸 보단 감정이 풍만한 딸을 원했다. 내 소원대로 큰딸은 아주 풍만 해졌다. 7점을 받아도 저리 해맑은 거 보면 이 동네에서 가장 풍만하지 않을까 싶다.
한 놈 10년 겨우 키워봤으면서 다 키워본 마냥 자신 있었다. 식성도 다르고 행동도 말씨도 모든 게 달랐지만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니 결국 같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 난 큰아이와 정 반대인 둘째 아이를 보며 나의 잘난 척이 얼마나 우스웠던가 새삼 느낀다. 달라도 달라도 이리 다를까… 가장 다른 건 둘째 아이는 욕망이 크다. 그리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가질 려고 노력도 제법 한다. 큰 아이는 타고난 성품이 유하고 품이 커서 뭐든 좋은 게 좋은 거지 한다. 적당히 괜찮다 싶으며 타협도 하고 내 차례가 아닌가 싶은 건 내려놓기도 잘한다. 타고난 센스가 좋아서 별거 아닌 걸 줘도 제 것으로 잘 만들어 내니 딱히 취향이 있다기보다 새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늘 다음이 있겠지 여기며 욕심 없고 산뜻하다. 반면 둘째 아이는 소유욕도 강하고 취향도 확고하다. 몇 개의 후보군을 정하고 제일 갖고 싶은 순서대로 욕심을 낸다. 후보군 중에서 가질 수 있는 게 없다면 과감히 아무것도 갖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타협보다는 포기를 해버린다. 쏙 마음에 드는 걸 갖지 못할 거라면 아예 없었던 일처럼 군다. 그래서인지 제 물건을 잃어버리지도 않고 새것을 탐내하기보단 한번 들인 물건은 오랫동안 굉장히 소중히 쓴다. 학원도 원하는 곳으로 자신이 정했다. 다니는 태도도 큰 아이와 달리 시험 목표점수를 설정하고 꽤나 진지하게 대한다. 목표한 점수를 얻었을 때보다, 도달하지 못해서 좌절하는 모습에 저 아이는 누굴 닮 은 걸까 조금 낯설었다. 우리 집에 저리도 목표지향적인 인간이 존재하다니… 놀라울 일이다.
테스트가 끝나면 학원에서 전화가 온다. 주로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학원이 끝나며 집에서 어떻게 지도하냐는 질문이다. 처음엔 언제나 그렇듯 ‘안 해요. 딱히’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고… 빠른 진도와 많은 학습양으로 유명한 학원이니 귀가 후엔 컨디션 조절을 위해 편하게 해줘야 한다고 아주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학원 선생님은 굉장히 단호하게 “안됩니다!”라고 경고했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바로 그날 배운 것들을 반드시 복습해야만 기억에 남으며, 부족한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부모님께서 파악하시고 반복적으로 지도를 해줘야 한다고 조금 격양된 목소리 톤의 빠른 속도로 말씀하셨다. 그 후로 걸려오는 전화에 ‘안 해요 딱히’라는 말의 ‘ㅇ’ 도 꺼내지 않았건만 반복해서 경고의 말씀하신다. 아이의 불신이 아닌 나에 대한 불신이 분명하다. 집에 돌아오면 20시가 다 되고 저녁을 먹고 나면 21시… 텔레비전이라도 좀 보면서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피곤할 텐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참는다. 나도 눈치가 있다. 그저 "네. 알겠습니다” 하고 숙연하게 전화를 끊는다.
“디폴트 값이 다른 거야. 이 정도는 기본인거지... 이것도 하는 거라고 할 수 있나?라고 생각한다고.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은 본인들이 그 이상을 했었으니깐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지. 어느 순간 무엇이 걸림돌이 되고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는데 우리처럼 정말 안 할까? 기준이 다른 거지.”
9시만 넘으면 내일 학교 가야 한다고 빨리 자라고 재촉하는! 나와 딱히 다르지 않은! 남편이 거드름을 피우며 남 얘기하듯 잘난 척을 한다. 어디서 단어를 배워오면 나에게 꼭 써먹어보는 남편은 이때다 싶은 거다.
나와 딸들의 환경이 다르듯, 큰 아이와 둘째 아이와의 환경이 달라진 듯하다. 주말을 보내는 방식이 다르고 아이 친구의 부모를 만났을 때도 그들의 관심사도 다르다. 챙겨줘 하는 하는 것도 기다려줘야 하는 것도 조언도 충고도 아이들이 놓인 자리에 따라 다르다. 태어날 때 자기 숟가락은 갖고 태어난다 하던데 갈려는 방향도 제 생긴 대로 갈려나 보다. 아이에게 날 투영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고 다짐했건만 엄마 노릇한다고 했던 것들이 아이의 기준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내가 살았던 대도 답습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돌아봤다. 나에게는 힘들었던 기억이 아이에게는 노력했던 순간으로 채워질지 모르니 설정을 다시 해서 각 가기 다르게 키워야 하는구나 다시금 다짐이 리셋된다.
그나저나 나도 아직 다 안 컸는데… 참 큰일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