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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엽 Jan 18. 2018

[베이글에 꽉찬 크림치즈처럼]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안녕하세요?


지난번 편지에서 제가

뉴욕행에 들고 갔던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드리지 않았더니, 많은 분들께서

책 제목 만이라도 미리 밝혀달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이거 조금 더 멋진 책으로 말씀을 드려야하나?’는 갈등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번 해외 출장길에서는

제가 지난번 말씀드렸던

<롤리타>, <로드짐>, 혹은 <율리시즈>와는 완전히 다른 책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무게감도 없는, 그저 ‘눈만 대면 슬슬 풀리는’

그런 책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입니다.


한 때 저는, 

역사의식은 전혀 없고,

읽은 뒤 다시 생각할 여지를 주는

그런 종류와는 거리가 먼,

인간의 마음을 가벼운 깃털처럼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일본 소설을 읽는 친구들을

‘한심하다’

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시선이 바로

‘독후감’에 ‘이 책의 교훈’ 이라고 써야했던

학교 교육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문학을 통해 무언가 깨달아야 하고,

교훈을 얻어야만 하는 그런 강박이 일본 소설을 읽는 분들을 삐뚤게 바라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번 출장길에는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힘겹게 가는 출장길에

무게감을 덜 수 있는 그런 책이 어떨까?’

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약 200여명의

뉴욕 현지의 투자자들 앞에서 진행된

뉴욕 현지 IR은

‘딱 준비 한 만큼’ 진행했습니다.


누군가 툭- 치면 술술 나올 정도로

반복에, 또 반복을 한 탓입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현지의 투자자들이 제 부스로 스스로 찾아와서

진지한 미팅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서

무언가 이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려는

저의 의지가 조금이나마 통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정이 넘는 시간에

숙소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할 때 쯤,

가슴 속에서는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지에 도착 한 후 3일 동안

수면을 취하지 못해

정신이 혼미했지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희열감이

제 몸을 감싸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난 다음 날,

저는 숙소 근처 델리 가게로 가서

건포도가 듬뿍 박혀있는 베이글에

양파크림치즈와 설탕과 우유가 가득 담긴

따듯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다녔던 학교 교정까지

몇 블록을 걸어서 교정 벤치에 앉아

이 책을 읽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애인을 위해

운동을 포기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펜싱 올림픽 선수의 이야기,


생선가게의 가업을 위해

음악을 포기해야 하는지 모르는 가수 지망생,


돈을 벌기위해 시작한 호스티스를

그만 둘 생각이 없는

멋진 아가씨의 이야기며,


아빠의 부도로

야반도주를 꿈꾸는 한 가족의 이야기들이

한 겨울의 추위를 잊게 만들었습니다.


커피와 베이글을 잔뜩 입에 물고는 벤치에 앉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페이지를 넘기며

서울, 코리아에서 온 한 직장인이 바로

유니언 스퀘어에 앉아있었습니다.


쉽게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상대방이 있다는 것,

나의 말을 그저 들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위안과 힘이 된다는 것을

작가는 털어 놓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편지를 주고받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니

어느덧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 인물들이

갈팡질팡 결정을 못하다가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길에 대한 확신과 소신을 가지고 결단을 내는 장면에서는

제가 결단을 내리는 것 마냥 기뻤습니다.


서울로 오는 길에는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서

제가 좋아하는 잡지

<The New Yorker>를 집어 들고는

앞장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책 한 권 값이 조금 넘는

이 얇은 잡지를 품에 안고는,

저는 '뉴욕'이라는 환상에서 깨야할 시간임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예전보다

많은 책을 읽지 못한 출장이었지만,

제 가슴 속에는 '희망'이라는

한 줌의 씨앗을 손에 꼭 쥐어든 듯한

뿌듯함이 가슴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정재엽 드림 (j.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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