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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k Apr 07. 2021

프롤로그 | 캐나다 노마드 생존기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나에게 쓰는 편지

1년 반 만에 찾은 인천공항의 모습은 낯설었다. 평소 같으면 귀국 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붐볐을 공항버스 정류장에는 정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실제 공항 터미널에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 만난 승객은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이런 말도 안 되는 팬데믹 상황에서 200kg의 짐,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6년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노마드로 생존하고자 떠나는 토론토행 비행기 안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나에게 편지를 적어 보낸다.



  

인생 2막은 준비하는 것은 아니라 시작하는 것이다 


때로는 지나친 준비가 발목을 붙잡는다. 해외에서의 인생 2막을 준비했던 내가 그랬다. 20여 년 전 대학 시절부터 해외에서의 삶을 꿈꿨다. 복잡한 이유가 아니었다. 한국도 너무 좋지만 한 번뿐인 인생, 무엇을 하더라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목표로 삼은 시기는 나이 마흔이었다. 그때까지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서 주위에 부담 주지 않고 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잘 준비해서 나가려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준비가 잘 될수록 나가려는 간절함이 줄었다. 국내 중견 기업에서 시작한 나는 해외에 나가기 위해 해외 MBA를 다녀와서 외국계 기업을 거쳐 외국계 컨설팅 회사 임원이 되었다.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성공할수록 해외에서의 삶에 대한 열정이 식어갔다. 준비한다는 대의명분이 있다 보니 한국에서의 삶에 집중하고 욕심냈고 성과를 거뒀다. 간간히 해외 포지션에 지원하기도 했지만 간절하지 않다 보니 결과도 좋지 않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흘러 목표했던 나이 마흔을 넘겼다. 계속 해외에서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 이 상황이면 10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오랜 준비 기간이 무색할 만큼, 정작 나를 지금 비행기에 태운 것은 아내의 말 한마디였다. 


"마크, 이제는 정말 가야겠어요."


특별할 것이 없는 말이었지만, 그 날따라 진심이 느껴졌던 아내의 말이 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 날로 무조건 해외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방법을 먼저 정한 게 아니라 무조건 나가기로 하고 방법을 찾은 것이다. 10년 넘게 준비해도 할 수 없던 일이, 하루 만에 결론 내리니 방법이 문제였지 나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내 인생 2막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뒤늦게라도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다. 

인천에서 토론토까지는 직항으로 12시간 거리다

계획하지 않은 타이밍에 시작된 인생 2막


토론토행 비행기 안에서 글을 쓰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기에 인생 2막을 시작하는 자신의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 목표로 했던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 따위는 전혀 없다. 회사 임원 자리도 내려놓고 가는 토론토에는 내가 일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 게다가 올해는 칼리지에 입학하는 아내와 현지 학교를 가게 되는 두 자녀를 위해 운전과 도시락 만들기를 열심히 할 예정이다. 


아내가 먼저 해외를 노크했던 것은 코로나 발생 직전의 일이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나이 마흔이 넘은 상황에서 외벌이를 하는 나를 통해 나갈 수 없다면, 현실적인 방법은 하나, 아내가 공부하러 나가는 방법뿐이었다. 그렇게 아내는 신속하게 유학을 알아봤고 칼리지를 졸업하고 취업 후 영주권의 기회가 주어지는 캐나다로 결정했다. 문제는 나였다. 새로운 회사로 옮긴 지 수개월이 채 되지 않았던 때였다. 뜻한 바가 있어서 온 것인데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내와 상의 후, 내 경력을 포기하고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대표님에게 덜 죄송하게 1년을 채우고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코로나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아내가 입학 허가를 받은 상황에서 미룰 수밖에 없었고, 8개월이 연기된 오늘에서야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아내에게 많이 썼던 단어가 ‘인생 2막’이었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력도 경력이지만 한국에서의 끈끈한 네트워크도 캐나다에서는 무용지물인지라 사람도 다시 사귀어야 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는 잃는 것이 많다. 하지만 ‘인생 2막’을 시작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가 ‘인생 1막’이었고, 새로운 인생의 ‘막’을 시작하기 위해서 이 정도는 지불할 수 있지 않을까? 2막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의 가치가 지불한 비용보다 넉넉히 크다고 생각한다.

 

내 솔직한 심정은 40대에 해외 나가도 늦지 않다는 것을 현재의 40대,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증명해보고 싶다. 나간다고 했을 때 주위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용기 있는 결정이에요’라는 말이었다. 돌이켜보니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아내와 나는 도전에 대해서 무모할 정도로 서로 잘 맞는다. 팬데믹 기간에도 어떻게든 나가려고 아등바등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현실적인 부부라면 대개 한 사람이 무모하다면, 다른 한 사람은 조심스러워서 절충이 되는데, 우리는 둘 다 서로의 무모함을 말리지 않으니 결국 지금의 시기에 텅 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지 않았나 싶다. 주위의 같은 40대 지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늦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면 다들 ‘가서 뭐하고 살아요?’라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그걸 증명해보려고 한다. 어떤 경력을 갖고 있더라도 나가서 살 수 있는 길은 충분히 있다고 말이다.  


팬데믹으로 인해서 더욱더 무모해 보일 수 있는 결정이지만, 사실은 팬데믹이 가져다준 선물이 있다. 바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것이 보편화된 것이다. 나 역시 몸은 토론토에 있어도 시차가 정반대인 한국과도 계속 일할 수 있고, 시간대가 비슷한 나라들과는 더욱더 편하게 일할 수 있다. 팬데믹 시대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지를 앞으로 보여주고 싶다.


이런 무모한 도전을 그것도 팬데믹 시기에 시도해서 성공한다면 누구한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도전하세요!’라고 말이다. 웃긴 얘기지만 비행기 이륙 직전 아내가 나에게 수고했다면서, 또 고맙다면서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서로 악수한 것은 처음이지 않나 싶다. 팬데믹 시기에 나가는 것은 정말 어렵다. 우리 가족 역시 도착하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입국 수속을 통과해야 하고, 이민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평소 같으면 그냥 통과지만 이제는 수많은 서류와 인터뷰를 거쳐야 가족이 함께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자가 격리 후 새로운 집에서 다시 한번 아내와 악수할 날을 고대해본다.  

캐나다에서 첫날은 정부 지정 자가격리 호텔에서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노마드로 생존하기


노마드(Nomade).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생 2막에서 내가 살고자 하는 방식이 바로 '노마드'이다. 누군가는 걱정한다. 남의 나라에서 액수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고정 수입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나는 정반대로 액수 보장도, 안정성 보장도 없는 노마드의 삶을 택하기로 했다. 노마드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다. 쉽게 말해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마드의 삶을 살고자 결단한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16년의 직장 생활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동안 직장에서 했던 모든 일들이 의미가 있었고, 이를 200% 활용해 노마드로 생존하려 한다. 


아직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았지만 내가 계획하고 있는 것들은 10가지가 넘는다. 그중에 굵직한 것 6가지만 소개한다.


1. 번역

외국계 기업 두 곳을 다니며 기른 영어 실력으로 글로벌 프로젝트 번역 일을 시작할 거다. 번역만 놓고 봤을 때 나는 전문 번역가의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몸을 담았던 데이터 분석 시장의 전문 번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때문에 이것이 나의  무기라는 것을 발견했고 이미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 한발 더 나아가서 내가 전문성을 갖춘 분야의 국문 책을 영문으로 번역해 아마존에 전자책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고 감사하게도 첫 컨퍼런스 콜이 잡힐 예정이다.


2. 온라인 세션 진행

한국에서 내가 속한 커뮤니티 두 곳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했다. 그리고 팬데믹으로 인해 여러 번 온라인으로 전환해 진행하면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백신과 치료제가 보급되더라도 온라인 모임에 대한 니즈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되었고 한국 커뮤니티와 협력해 온라인 전용 세션을 기획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 가능해졌다.


3. 취업 컨설팅

직장 생활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취업 관련한 조언을 해주는 멘토 역할을 자처했다. 다양한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를, 다양한 포지션에서 하다 보니 경력 개발부터 자소서, 면접 컨설팅까지 도움을 줄 수 있었고 만족도가 높았다. 이에 실제로 취업 컨설턴트 시장에 노크를 했는데 감사하게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회사에 합격한 사례가 나오면서 보람을 느꼈다. 취업 컨설팅의 경우 100% 온라인으로 활동할 수 있어서 부캐로 생각하고 있다.


4. 뉴스레터

뉴스레터 홍수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뉴스레터가 여전히 주목받는 이유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쉽게 전달하기에는 뉴스레터만한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도 이미 외교안보, 경영, 스타트업 관련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분들이 있다. 내 경우, 아직 특정하진 않았지만 취업 또는 캐나다 시장 관련한 뉴스레터를 염두에 두고 있다. 단, 뉴스레터의 경우 카테고리가 중요하다. 분야가 너무 좁으면 독자층에 한계가 있고, 너무 넓으면 품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되 그것보다 조금 범위를 넓혀 공부하면서 뉴스레터를 발행하고자 한다.

5. 새로운 사업 구상

내년부터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보려 한다. 대상 국가는 한국이 될 수도 캐나다가 될 수도 있다. 정확히는 국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프라인의 제약을 극복해줄 파트너가 있다면 이곳 토론토에서도 전 세계 어떤 비즈니스도 가능하다.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곳에서는 아무래도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적인 부분이나 계약서 검토 등 문서 관련 부분이 주 업무가 될 것이다. 굳이 풀타임이 아니고 하루에 특정 시간 또는 일주일에 특정 요일만 일하는 형태도 충분히 가능하다. 고맙게도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파트너가 있고, 나 역시 같이 일하고 싶은 파트너가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충분히 준비된 파트너가 되느냐일 것이다. 8개월 남은 올해 나의 목표가 바로 매력적인 사업 파트너가 되기 위한 성장이다.


6. 글쓰기 프로젝트

캐나다로 넘어오면서 가장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직장 생활은 끝났지만 더 풍부한 글감을 이곳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브런치에 <슬기로운 직장 생활> 매거진을 발행하면서 감사하게도 여러 웹진과 플랫폼에 내 글이 연재되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교민을 대상으로 하는 웹진에도 연재를 시작했다. 물론 여러 곳에 연재된다고 해서 돈을 받는 곳은 한 곳도 없다. 괜찮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목적은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글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곳에 연재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글이 널리 읽히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다. 또한 아직 출간 작가는 아니지만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리딩하고 자문해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글을 쓰는 것이 10원이라도, 1 캐나다 달러라도 선물을 줄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글쓰기가 노마드의 삶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6가지 계획을 비롯한 다양한 구상 이외에도 장기적으로는 이 곳 캐나다에서 세금을 많이 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또한 목표이다.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많은 세금을 내면서 사회 구성원으로도 책임을 다하는 것 역시 내가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이다. 


고생하더라도 다음 도전자에게 희망을 주고자


새롭게 발행하는 <캐나다 노마드 생존기>는 이러한 나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낼 것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본인이 오래전부터 꿈꿨던 도전을 멈춘 분들에게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주고자 한다. 특히 해외에서의 도전을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작은 가능성을 선물로 주고 싶다. 


내가 피하지 않으려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고생'이다. 아내에게도 몇 번을 강조했다. '우리는 고생하러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40대의 늦은 나이의 도전, 가족들의 적응, 노마드 인생, 이방인의 삶, 그리고 보이지 않는 벽까지. 고생하겠지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글로 표현할 것이다. 




<캐나다 노마드 생존기>는 말 그대로 생존기를 담게 된다. 따라서 때로는 좋지 않은 결과를 담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감 없이 글로 남기고자 한다. 그것 역시 생존기의 일부이며, 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의 남편이자, 두 자녀의 아빠로서 고생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길 바라고 더 끈끈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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