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k Apr 19. 2021

자가격리가 끝나면 고생이란 놈이 기다린다

자가격리 해제 6시간 전

드디어 자가격리 14일 차다. 갓난아기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조그마한 발코니에서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이 유일한 일탈. 그렇다고 자가격리가 끝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 아니다. 진정한 야생으로 나가게 된다. '어서 와, 캐나다는 처음이지?'

  



첫째도 우선순위, 둘째도 우선순위


자가격리라고 해서 하루 종일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니다. 바깥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들만 나열해도 스무 개가 넘는다. 그래서 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진행해야 한다. 이방인으로 생존하려니 놀랍게도 직장에서 머리로만 알고 잘 사용하지 않았던 매트릭스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가로축은 시급성, 세로축은 중요도, 따라서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일들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가장 어려운 일은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일들을 가려내는 것이다. 펜데믹 상황에서는 이동하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에 중요도보다는 시급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 아무리 중요해도 천천히 해도 되는 일들은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할 줄 알아야 한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 먼저 하기

오늘 밤 12시. 자가격리가 풀리는 시각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늦은 시각이지만 가족들끼리 집 밖으로 나가 조금 걸으면서 기념사진이라도 남길 생각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가격리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이곳에서의 시작을 기념하는 사진이다.


내일이 되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건 운전 면허증 발급이다. 정확히는 한국에서 만들어온 영문 운전 면허증을 이곳 운전 면허증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집 안과 집 밖으로 나눠 생각했을 때 이 곳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집 안에서는 인터넷이고, 집 밖에서는 자동차다. 인터넷이 없으면 팬데믹 기간에 아이들 학교 줌 수업과 생존에 필요한 온라인 쇼핑이 어렵다.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 곳도 갈 수가 없다. 이곳과 비교하면 서울의 대중교통은 천국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운전 면허증 발급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이유는 신분증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운전 면허증이 있어야 인터넷 신청도 가능하고 자동차 구매도 가능하다. 그래서 내일 아침 해가 밝자마자 이곳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가서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을 예정이다. 물론 임시면허증이고 운전면허증은 몇 주 후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경영이론이 실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것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경영이론들이 비단 비즈니스 현장에서만 유효하고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지 않을까? <캐나다 노마즈 생존기>에서도 삶과 일, 일과 삶 모두를 다룰 것인데 이처럼 경영이론이 실제 삶에서 활용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 같다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이왕 고생할 생각이면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흔한 말. 이런 흔한 말도 이방인의 삶에는 도움이 된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자가격리 중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는 SIN Number(우리나라의 주민번호와 비슷)도 없고, 현지 면허증도 없고, 이사 갈 집에는 당장 인터넷도 안되는데 신분증이 없어서 신청도 못한다. 새로운 집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는데, 캐나다는 코로나 3차 확산으로 Stay Home(필수 활동을 제외하고 집에 머물라는 조치)이 발표되어 먹는 것 빼고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사야 한다. 아이들도 빨리 학교를 가야 적응을 할 텐데 락다운 조치가 연장되어 5월까지는 온라인 수업이 확정됐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다 문득 이곳으로 오면서 가졌던 초심이 떠올랐다. '우리는 진짜 고생하러 가는 거야' '어떤 고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내와 얘기 나누면서 했던 언급했던 초심... 바로 이곳에서 고생할 각오를 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이 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지만, 편하게 살자고 온 것도,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온 것도, 돈 많이 벌겠다고 온 것도 아니다. 고생하고, 그 고생의 대가로 가치 있는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가지고 인생 2막을 채워갈 것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 많은데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오히려 하나씩 차근차근해나가야 한다. 그 와중에 겪는 불편함은 감수하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겪을지를 가늠할 수 없는 지금, 작은 불편함은 애교로 넘기자.


노마드는 항상 배고프다


자가격리 14일은 노마드로 처음 경력을 시작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임원 소리를 들었던 과거는 지우개로 깨끗하게 지워 버리고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도 14일 동안 갇혀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크게는 번역, 취업 컨설팅, 글쓰기 관련해서 진척이 있었다.


가장 먼저 전자책 번역 출판 계약을 맺었다! 한국에서 이미 출판된 책을 영문 번역해서 전자책으로 출판 후 아마존 킨들 스토어에서 판매하는 프로젝트다. 영문 번역, 전자책 출판과 판매까지 내가 직접 맡아서 하기 때문에 역시나 고생하겠지만 상당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1달러도 돈이 들어오지 않고 책이 판매되어야 돈이 되는 프로젝트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수익이 되길 기대한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국내 여러 좋은 책들을 해외에 수출할 생각도 갖고 있기 때문에 첫걸음이 중요하다. 더불어 글로벌 기업 프로젝트의 플레이북을 번역하는 프로젝트도 계약 직전 단계이다. 

자가격리의 유일한 낙은 이처럼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이다

취업 컨설팅은 이곳에 와서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 중 하나인데 어려운 취업 시장만큼이나 다들 간절함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이곳 취업 컨설팅 시장까지도 노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영어부터 공부해야 한다. 이곳에서 여러 활동을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기승전, 영어 공부로 결론이 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이 아니라 풍부한 단어를 가지고 정확한 표현을 하는 것인데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준비하려고 한다.


글쓰기는 이곳에 와서도 두 곳에서 외부 기고 제안이 왔다. 한 곳은 일회적으로, 다른 한 곳은 지속적으로 기고하는 제안이다. 일회적으로 제안받은 곳은 이름이 알려진 곳인데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게 되었다. 확실히 나는 글쓰기로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다. 글쓰기의 목적은 내 경험의 기록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어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조금씩 돈을 받는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더불어 자가격리가 끝나고 집에 인터넷이 설치되고 나면 온라인으로 여러 공부를 시작할 계획이다. 일단 메타버스 관련한 분야부터 시작할 것이다. 내가 항상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부하면 내 것이 되고, 공부하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엔 메타버스를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다. 


노마드는 늘 배고프다. 1년짜리 큰 계약을 하더라도 1년 동안은 배가 고프지 않겠지만 바로 다시 배고플 것이다. 난 이 배고픔을 레버리지 할 생각이다. 레버리지 할 때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하겠지만,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올해는 그 바람을 성취하기 위해 투자하는 기간이다.


창살 없는 격리의 연속


자가격리가 끝나지만 홀가분함은 없다. 우선 코로나 3차 확산으로 가급적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이방인으로 네 식구가 정착하기까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오늘까지는 물리적으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라면, 내일부터는 보이지 않는 창살이 있는 생활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네 식구여서 감사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이곳에 보냈더라면, 아이들이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면 더 외롭고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온라인 주문을 하니 저기 보이는 차로 배달해주고 갔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한국에서 1년 넘게 재택근무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노마드로 집에서 일하는 것이 익숙하다. 아내는 내가 일하는 모습이 한국에서의 모습과 비슷하다며 익숙하다 했다. 그리고 보면 한국에서의 지난 1년이 이곳에서의 삶을 위한 연습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창살 없는 격리 기간 중에도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건강이다. 아직 이곳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엑스레이 찍는데도, 수술을 하는데도 몇 달이 걸린다. 엠뷸런스를 부르지 않는 한 바로 치료받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병원에 가면 언제든지 바로 엑스레이 찍을 수 있는 우리나라 상황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항상 건강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보험 적용이 전혀 안 되는, 스케일링하는데만 수십만 원이 들어가는 이곳 치과 치료로 인해 양치질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


아무리 팬데믹 상황이어도, 물리적, 시간적 제약이 있더라도, 불가능한 것은 없다. 이것이 캐나다 노마드의 가장 큰 이점이다. 이런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계획하고 바로 실행해야 한다. 계획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실행해야 시장의 반응과 결과를 볼 수 있다. 그 반응과 결과를 <캐나다 노마드 생존기>를 통해서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복일 것이다. 


노마드가 항상 배고프다고 했지만 다른 의미의 배고픔도 있다. 바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목마름이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월드컵 때 '나는 여전히 배고프다(I'm still hungry)'라고 말했던 것처럼, 노마드의 삶은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의 욕구를 채워야 만족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와서는 아이들에게도 아빠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줬다. 한국에서는 1년에 얼마를 벌었는데 여기서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현재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공유했다. 그랬더니 아이들도 조금 걱정이 되는 눈치이긴 했다. 기도할 때마다 아빠가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노마드에게 가장 큰 힘은 아내와 자녀들의 응원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시작이다. 준비, 땅! 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마음이 마구 셀레이는가! 몸이 근질근질한가! 그렇다면 겸손함만 추가로 장착하고 앞으로 돌격해보자.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가치가 숨어 있는 그곳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 캐나다 노마드 생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