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 와서 자주 하는 혼잣말이 있다. '벌써 저녁 8시네? 한국은 곧 아침 9시겠구나!' 처음에는 상당히 재미있었다. 토론토는 하루 일을 마치고 밤이 되어가는데, 서울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마드로 살면서 당장 캐나다와 관련한 일보다는 한국 중심으로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있는 곳에서 해가 지더라도, 나와 일하는 곳에서 해가 뜨니 저녁이 되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심심하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저녁이 되면 한국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서 일찍 잠들지 못하고 새벽까지 깨어 있는 날들이 늘어갔다. 처음엔 좋았지만 피로가 쌓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 노마드의 나라는 해가 지지 않는다.
종일 밤인 것보다 종일 낮인 것이 좋다
새로운 계약 두 건을 앞두고 있다. 하나는 캐나다, 하나는 한국이다. 고무적인 것은 토론토 정착 두 달만에 캐나다에 있는 회사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노마드 생활을 시작하면서 올해는 투자하는 기간으로 생각했다. 말이 좋아 투자하는 기간이지 한마디로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기간이라는 의미다. 우선 당장 캐나다 현지에서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팬데믹 상황인 데다 캐나다는 현지 경력이 없으면 채용하지 않는 독특한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캐나다는 특히 '캐나다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야 취직할 수 있는 나라다. 아이러니한 표현이다. 처음 캐나다에 건너와서 일을 구하는 사람이 캐나다에서 일한 경력이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에서 경력이 있는 이들도 캐나다에 와서 2년제 칼리지를 거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IT 개발자도 바로 취직이 어려워 2년제 칼리지에서 IT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산학 프로그램을 통해 경력을 쌓은 후 캐나다 회사에 들어가는 식이다. 나로서는 현재 이 방법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올해는 한국을 중심으로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일하는 것은 좀 더 탐색을 해야 했고,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고 팬데믹으로 인한 락다운이 해제되면 네트워크를 쌓으면서 기회를 모색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한국 회사 캐나다 법인장이 직접 연락을 해왔다. 팬데믹 기간이라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링크드인의 상태를 구직 중(#OPENTOWORK)으로 해놓는 것이었는데, 그걸 통해 법인장이 1촌 신청을 했고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현재 구상 중인 사업 가운데 내 경력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일은 생각보다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며칠 뒤 온라인 미팅을 가졌고, 이후 오프라인 미팅까지 진행됐다.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세부사항 조율을 마치면 바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온 가족이 캐나다 적응 기간이기에 현실적으로 풀타임으로 일하기 힘든 상황인데, 마침 프리랜서로 유연 시간제로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이어서 신기하고 감사하다.
토론토에 저녁노을이 지면 서울에 해가 떠오른다
한편 새롭게 계약을 맺게 되는 한국 프로젝트는 시차를 감안해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토론토 시간으로는 밤에 일하기로 했다. 따라서 곧 있으면 낮에는 캐나다 회사 프로젝트를, 밤에는 한국 회사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일거리가 생겼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24시간 해가 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일거리가 없다면 24시간이 캄캄한 밤일 수도 있는데 차라리 해가 지지 않는 것이 낫다.
확실히 장단점이 있다. 아침부터 자정까지 슬기롭게 일을 분산해서 해야 한다. 한국에서 '9시 퇴근 6시 퇴근' 모드로 일할 때는 출근 전과 퇴근 후 시간은 온전히 내 것으로 가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일하는 중간에 틈을 내서 내 시간을 갖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일과 일 사이에 운동도 해야 하고 아이들 온라인 수업 챙겨야 하고 집안 일도 틈틈이 해야 한다. 마트도 갔다 와야 하고 취미 활동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한다. 무엇보다 일을 시작하는 시간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굉장히 길어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 숙면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캐나다 일로 시작해서 늦은 밤 한국 일로 마쳐야 하는 노마드의 하루는 정말로 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 가늠하기
노마드가 착각하기 쉬운 것이 있다. 바로 언제든지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마음먹으면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솔직히 가끔 한다. 하지만 노마드로 살면서 계획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실현되고 가시화되면서 감사한 동시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새롭게 계약을 앞두고 있는 프로젝트 외에도 이미 진행 중인 번역, 출간, 글쓰기 프로젝트들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토론토에 온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절대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된다. 우선은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경험을 충분히 쌓는 것이 먼저이다. 경험이 충분히 쌓였을 때 그것과 네트워크과 맞물려서 확장성의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에는 캐나다 현지 한국인들과의 네트워크를 주로 생각했는데, 이번에 캐나다 회사와 프로젝트를 같이 하게 되면서 캐나다 현지인들과도 네트워크를 충분히 쌓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고 있었을 때였다. 그게 타의였든 자의였든 간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는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노마드로 살고 있는 이 곳에서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히죽거리지 않고 차분하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냉철함이 필요한 요즘이다.
클럽하우스를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활용해보기
오디오 기반 SNS인 클럽하우스(Clubhouse) 안드로이드 버전이 최근 출시되었다. 2월까지 반짝했던 클럽하우스의 인기는 3월 이후 수그러들었지만 이번 안드로이드 버전 출시로 다시금 활발해지는 듯하다. 노마드 생존기에 있어서 클럽하우스도 하나의 플랫폼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구상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와 모더레이터로서의 경험을 살려 수익 모델이 아닌 커뮤니티 플랫폼 역할을 하는 클럽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플랫폼은 어려우면서도 쉬운 용어이다. 확실한 것은 한 번 플랫폼을 시도해서 성공해보면 그 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내 첫 시도는 다름 아닌 브런치였다. 브런치에 내 경험을 담은 많은 글을 남겼을 때 그것이 플랫폼이 되어 다양한 곳에 전해지고 더불어 다양한 기회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고맙게도 내 글은 브런치뿐 아니라 공식적으로는 4곳 이상의 플랫폼에 재발행 또는 연재되고 있다. 그중에는 해외 매거진도 있다. 그리고 출간 제의, 저자 제의, 외부 기고 제의 등 다양한 기회가 생겨났다. 물론 나는 글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생각이 없다. 만약 수익이 생긴다면 다른 브런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곳에 기부할 계획이다.
과연 클럽하우스도 나에게 브런치와 같은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요즘 들어 이런 글들이 많이 눈에 띈다. '노마드는 정규직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노마드는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가 없다.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를 감안했을 때 충분히 많이 벌어야 하는 것이 맞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실력이 우선이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경력과 실력만 가지고 노마드로 성공할 생각을 버리자. 겸손하게 늘 새로운 것을 찾아 공부하고, 겸손하게 뛰어난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