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이탈출대작전
‘범생이 탈출 대작전’이라는, 어느 날 섬광처럼 날아온 작은 아이디어가 1년 후에 10회의 연재글이 되어서 드디어 오늘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 작은 생각이 성냥불처럼 꺼지지 않고 한 달에 두 번씩 점멸하며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혹시 잘 되면 어딘가와 출판 계약을 맺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많은 범생이들이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 이런 혼자만의 김칫국과(몰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B WITH 매거진이라는 좋은 시스템에 합류하게 된 덕분이다.
연재를 하면서 많은 범생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혹시라도 별세계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범생이들의 고민과 애환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머리를 싸맸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특히, 사회가 상당히 계층화 되어 있고 개인에게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 ‘범생이’ 밖의 삶을 독려하는 것에 적잖은 한계를 느꼈다.
그래도 여전히 이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무한 루프를 따라 도는 삶은 도무지 인간적이지도 희망적이지도 않다. 그 삶이 그 정도로 안정적이고 모범 답안에 가까운 것이라면 왜 이렇게 사람들은 아프고 무기력한 것일까. 정말 그게 다 일까? ‘대안이 없다, 어쩔 수 없다, 일단 버텨야 된다’면 왜 어떤 누군가는 대안을 만들어 내고, 어쩔 수 있는 틈새를 찾고, 정해진 루트를 박차고 나가는 것일까.
자유인의 삶이라고 해서 시련이나 고충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마냥 행복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는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들 눈에는 ‘잉여’나 ‘백수’, ‘4차원’ 또는 ‘이기주의자’로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와서 말하지만 자유인이 되어도 별로 좋은 게 없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것은 알고 보면 양날의 검을 가지고 있으니까.
다만 범생이와 자유인의 가장 큰 차이는 물리적인 시간이나 생활의 차이보다, 그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 실패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그저 좋아서 하는 것, 두려움에 드라이브 되지 않고 언제나 사랑을 선택하는 것. 그런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하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자 보상이 된다. (참고 : 범생이의 성공과 한계)
자유인으로 산다고 해서 외적 동기로 움직이는 일이 일절 없을 리는 만무하다. 나 또한 어떤 일은 돈 때문에, 어떤 일은 사람 때문에 한다. 어떤 한 가지 선택에 대해서 그게 정말 내가 원해서인지,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나 회피 때문인지 명확하게 식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의 많은 아티스트들, 기업가, 프리에이전트 등 창조자를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다만 한 사람의 전체 삶을 조망해 보았을 때 그의 삶이 외적 동기에 끌려가고 있는지, 내적 동기를 따라 가고 있는지는 판별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삶이 끝나는 날에 ‘그래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런 삶을 소망한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최근 저서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서 “백수는 인류의 미래”라고 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노동에 예속된 인간의 삶이 종말을 고하고 있고, 아무리 어렵다 어렵다 한들 물질적 풍요는 늘고 노동 시간은 줄어 드니 자의든 타의든 한 번 쯤 백수의 시기를 맞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제 백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능력자, 잉여’의 시선을 거두고 노동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으로 인간답게 한 번 살아볼 수 있는 기회로 그것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핵가족의 그늘, 화폐에 예속된 삶을 벗어나, 노동이 아닌 활동의 삶,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자’고 그는 말한다.
그가 말한 백수와 내가 말한 자유인이 같은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저자의 의견에 상당히 공감한다. 다만 백수든, 자유인이든 이름만 들어서는 ‘만고땡’인 것 같은 이 삶이 생각보다 그리 녹록치는 않으니 나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8년 전 회사 생활을 그만두며 겪은 시행 착오는 이루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 중 내가 가장 어느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경험은 3년 여의 ‘처절한 고독’의 시간이다. 요즘 대두 되는 혼술, 혼밥 같은 혼자 문화와 비슷한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는데, 어쨌든 자유인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이 고독에 익숙해져야 한다.
인간은 본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관계 속에서 존재를 규명해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나 어쩌다 ‘동물’로서 가진 야생의 본능은 다 죽고 ‘사회적’만 남아서 이렇게 인간 대다수가 범생이가 되고 마는 걸까. (참고: 무엇이 범생이를 만드는가)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뭘 하면 안되는 지를 끊임 없이 외부 지령을 통해 학습하고 그에 따라 상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생이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인정과 사랑에 달려 있다. 그게 잘 되면 다행인데 보통은 자기 맘대로 되지 않기에 실망과 좌절, 고통을 겪는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 쓰다듬어 주고 격하게 칭찬해주는 사람보다, ‘더 잘 해오라고’ 기대만 걸거나 무거진 짐 지우고 의지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던가. 어른 범생이의 삶은 무겁고 지칠 수 밖에 없다.
철저하게 고독해지면, 자기 자신 말고는 나를 책임질 사람도, 무너뜨릴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연히 인정 욕구의 통로가 좁아지고, 그 구멍에서는 삶에서 별로 건질 게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타인의 인정과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가’ 다른 통로를 찾게 된다.
‘나는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데’, ‘나는 가족을 부양해야 되는 사람인데’ 어떻게 고독해질 수 있는가 물을 수 있겠다. 괜찮다. 당신은 지금 당장도 고독해질 수 있다. 외롭다 싶으면 사람 불러내고, 심심하다 싶으면 TV나 게임, SNS를 켜고, 허무하다 싶으면 뭔가를 마구 먹거나 마구 사고, 무엇으로든 정신과 영혼을 채우려고 하는 모든 시도를 그만 두면 된다.
정말 혼자 잘 있어보는 것, 나와 친해져 보는 것, 나와 잘 대화해 보는 것. 자유인에게는 이런 게 필요하다. 누구의 승인이나 인정이 없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꾸미고 포장하지 않아도, 내가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이 생겨야 그 힘으로 자유인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다행히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이다. 부디 자신에게 더 많은 고독을 허용해주시기를.
두 번째는 어쩌면 고독과의 반대다. 자유인으로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단, 고만고만한 범생이들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어야 한다. 범생이들에게 탈출이 무지 어려워보이는 이유는, 범생이들끼리만 맨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회사 사정 어려워지는 얘기’, ‘먹고 살기 힘든 얘기’, ‘자식 교육 감당하기 힘든 얘기’, ‘어디 투자해서 돈 벌었거나 망한 얘기’ 등 무슨 대화를 나누어도 세상 살아갈 힘나는 얘기는 없다.
드물지만 이따금은 자유인으로 살거나, 아직 범생이지만 자유인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우연히 만나게 될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의 모임이 있을 수도 있고, 당신이 자유인이 되면 주변에서 알아서 모여들 수도 있다.
자유인이니까 독고다이로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방금 무리에서 벗어난 초심자일수록 외롭고 두렵다. 그래서 자신에게 적절한 동기부여와 자극이 되는 사람들과 계속 연결되면 이 과정을 잘 헤쳐나갈 수 있다.
꼭 직접 만나고, 어디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당신의 워너비가 될 만한 사람을 정하고 그의 글과 소식을 계속 접하는 것, 카페나 밴드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고 교류하는 것, 새롭게 배우고 싶은 활동을 통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친목을 쌓아 나가는 것, 모든 길이 가능하다.
자유인으로 잘 살기 위해 ‘혼자 잘 서있기’도 해야 하지만, ‘다른 자유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당신이 선 땅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 두 가지 시도를 통해서 당신의 자유인 라이프는 강화되고 확장될 것이다.
당신이 정말 범생이를 탈출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면, 언젠가 이 세 가지 질문으로 점검을 해보길 바란다. 당신에게 탈출의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1. 어디에 있습니까?
2. 누구와 있습니까?
3.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범생이로 살아온 당신. 반듯하고 보기 좋게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아왔다. 그 ‘열심’의 에너지를 이제는 당신 자신을 위해 쓰자. 다른 누구보다 잘 해온 만큼, 자유인의 삶 역시 당신은 잘 해낼 것이다.
그래서 생을 마치는 먼훗날 이렇게 웃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았어.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지만 그건 정말 나의 인생이었어. 나는 내가 누구인줄 알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봤어. 더는 여한이 없다’. 나 또한 그렇게 미소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연재를 시작했고 이제 마친다. 한 사람이라도 탈출하고 싶어진 범생이가 찾아온다면, 기꺼이 함께 하자고 손을 맞잡을 것이다. 범생이 탈출은 인류의 미래다!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