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범생이탈출대작전
1단계에서 ‘너른 지대’를 충분히 그려 보았다면(이전 글 바로가기) 당장이라도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더이상 눈치 보며 살지 않을 수 있다면!’, ‘마음껏 내 꿈을 펼치며 살 수 있다면!’,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다면!’ 자유인으로 사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발이 들썩일 것이다.
에버랜드 앞에 도착한 아이들처럼 정신없이 달려들고 싶지만, 어른의 삶이란 그렇지가 못하다. 지금 선 자리에서 발을 떼는 것과 동시에 잃을 것들, 포기해야 하는 것들,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기에 들어가면 내가 가진 것들을 잃을지도 몰라
지금의 안정과 사회적 지위가 사라질지도 몰라
일자리를 잃고 베짱이처럼 가난해질지도 모르지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가족을 책임지기 힘들어질거야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될거야
그러니까 그냥 여기 있자
너른 지대에 대한 생생한 꿈 만으로는 범생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사람들에게는 늘 자신을 발목 잡는 ‘현실적인 이유’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현실적 이유’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결코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60대 중년이 보기에는 한참 젊은 3~40대 사람들이 ‘나는 이제 나이가 있어서 도전이 어렵다’고 말하고, 직장인이 보기에는 잃을 게 없는 대학생들이 ‘다른 생각 하기에는 늦었다’고 말한다. 현실적인 이유로 가장 많이 손꼽히는 ‘돈’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안정을 포기하기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알고 보면 그 안정성의 스펙트럼이란 게 연봉 몇 천만원부터 몇 십 억까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나이가 많아서,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이 많아서. 범생이를 탈출할 수 없는 사람들의 현실이란 개인에게는 가혹한 듯해도, 전체적으로 보면 흔하고 보편적인 이유이며, 얼마나 가련한지 여부도 절대적이기 보다는 보는 입장에 따라 상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누군가는 ‘현실적으로’ 이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무미건조한 연애를 계속 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은행에 삶을 저당 잡히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울며 겨자먹기 같은 자녀의 사교육을 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스스로 그런 현실을 만드는데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믿고 싶은 일’에 ‘현실적’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현실적으로 말이 되도록,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현실에 맞게 선택하다보면 범생이 탈출은 완전히 요원하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현실’인데 그것에 맞게 선택을 하다니, 결국 그 자리가 아니면 어디겠는가. 그 정도로 지금의 현실이 좋기라도 한 것인가?
현실에 구실을 대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포기하기가 겁난다’고 솔직하게 두려움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진짜 문제는 상실과 실패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이지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적인 이유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빠를까,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빠를까? 당신을 발목 잡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지 말고 이제 진짜 사슬을 끊어 내야 한다.
우리가 현실의 요소들을 두려워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범생이 탈출을 위한 어떤 선택을 하자마자 별안간 전 재산을 탕진해서 길거리에 나앉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손가락질과 비난을 퍼부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떤 선택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 가장 최악의 것을 우리가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어떤 일을 안심하고 하거나 아무 의식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문제가 없을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 한번이라도 당신이 앉은 ‘의자’를 신경쓴 적이 있는가? 혹시 부서지지는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는가? 당연히 튼튼할 거라 믿고 모든 체중을 실어 편안하게 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살면서 10번 중 2번 정도의 확률로 의자가 우지끈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면 앉을 때마다 의심을 하게 되고 불안을 느낄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신념’이라고 한다. 신념은 우리 내면의 의식 체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플랫폼이다. 당신과 내가 앉은 의자의 내구성이나 화장실 손잡이의 청결도 같은 자잘한 믿음에서부터, 오늘 저녁 안전하게 귀가할 거라는 믿음, 가족이 나를 사랑할거라는 믿음, 하는 일이 잘 될거라는 믿음과 죽는 날까지 세상이 평화로울 거라는 믿음까지 미시와 거시를 아우르는 다양한 신념들이 우리 내면에 작동하고 있다.
신념은 대체로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한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항상 긍정적인 신념만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남는 경험도 하게 된다. (ex. 물은 무섭다, OO지역은 위험하다 등) 또는 자신의 의지하는 어른이나 또래의 신념을 그대로 따르게 되기도 한다. (ex. 실수하면 안 된다, 나대면 안 된다)
이것을 자유의 개념에 적용해보면, 우리에게 자유와 관련된 경험이 거의 없거나 꽤나 부정적인 경험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맘대로 자유로워본 적이 있는가? 누구의 통제나 지시도 받지 않고, 어떠한 의무나 규율도 없이 자신의 결정에 의해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 범생이들이 살면서 경험한 자유란 수능 끝난 고3에게 주어지는 유예의 시간, 무언가를 성취한 뒤 보상처럼 주어지는 방종의 시간 뿐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인의 삶이란 해적이나 외계인, 아마존 원주민의 그것처럼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낯선 삶인 것이다. 체험해보지 못한 낯선 것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갖기는 어렵다.
또한 자유에 대한 경험이 있다 해도, 어린 아이가 제 욕구 때문에 시도한 일들의 결과라는 것이 어른의 눈에는 늘 미숙하기 때문에 주로 꾸중이나 질책을 받아서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지 못한다. 그 때의 두려움, 죄책감, 불쾌한 느낌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잠재 의식에 남는다. 자유는 두려움이자 고통이라는 신념이 마음 속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 결과,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유’라는 의자에 마음껏 털썩 앉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세상 살이에 대해 전문가처럼 이야기한다. ‘회사는 전쟁터지만 나가면 지옥’이라고 안 나간 사람들이 회사 안에서 그런 얘기를 하고, 어느 길로 가든 헬조선에서는 기승전 치킨집이니까 다 의미 없다고 어느 길로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이니 일리가 있기도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정말로 그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과장된 신념을 퍼뜨린다는 것이다.
설치도 안했는데 우후죽순으로 깔린 악성코드처럼, 잘못된 신념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에너지를 잡아먹고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자신을 범생이로 만든 신념들을 하나 하나 제거할 수도 있겠지만, 몇 십년 동안 깔린 것을 지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모르니 아예 포맷을 하는 것이 어떨까.
새로운 OS의 이름은 ‘자기 신뢰’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신념을 버리라더니 다시 가지라는 말인가? 그렇다. 대신 이번에는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는, 자신에게 활력을 주는 신념으로 재무장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겸손과 자기 비하를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을 존중하고 돌보는 것을 이기적이라 여기고 다른 사람에 비해 자신은 언제나 부족하다고 여긴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무엇으로든 자신을 채우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든, 세상이 나에게 잘해주길 바라든, 그런 기제를 가진 채로는 범생이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기 자신으로 오롯이 설 수 있어야만 자유인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하여 당신은 남들이 가진 어떤 특성을 계발하거나 다른 누구처럼 될 필요가 없다. 지금 당신 자체로도 이미 충분하다. 당신의 삶을 충만하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은 이미 당신 안에 다 내재되어 있다. 당신은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에도 긍정적인 선한 의도를 따라 모든 것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당신은 원하는 바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고유하고 귀중한 존재이다.
세상은 좋은 곳도 나쁜 곳도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자유인으로 각성을 하고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자유인이라는 것을 존중할 수 있다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힘든 풍경을 이따금 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힘도 당신에게 있고, 나쁘게 만드는 힘도 당신에게 있다. 세상을 좋게 만들고 싶어서 당신이 움직인다면 세상도 당신의 편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안전도 없고 위험도 없다. 그냥 있을 뿐이다. 당신은 당신의 시공간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면 된다.
종교인만이 믿음을 가지는 게 아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일이 믿음에 기반해 있다. 오늘 100%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지금 그 자리에 있겠는가? 내일도 오늘과 같은 새 하루가 올거라고 믿기에 오늘을 열심히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자신에게 필요한 믿음이 부족하다면 위 박스에 적은 것처럼 직접 만들면 된다. 그 믿음에 걸맞는 경험을 여러번 하다보면 그 때는 정말 의심할 나위 없이 그것을 확실히 믿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이 자유의 의자에 마음 편히 기대 앉을 수 있길 바란다. 또한 그 자리에 멈춰서 있지 말고 당신이 꿈꾼 너른 지대로 마음껏 뛰어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에버랜드는 들어가야 에버랜드지, 그 앞은 꽉 막힌 주차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