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범생이탈출대작전
순종적으로 살아온 모범생이 어느 날 문득 자기 삶에 환멸을 느끼거나 어떤 사건으로 충격을 받고,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다’며 분연히 변화를 결심하게 된다면, 그의 다음 행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영화나 드라마 속 인물은 주로 안경부터 벗어던진다. 그러고는 자기가 속한 곳을 떠나 염색이나 타투 같은 스타일 변신부터 바이크 타기, 클럽에서 파티하기, 불량하게 말하고 행동하기 등 일탈을 상징하는 온갖 시도들을 한다. 좀 더 온건한 장면이라면 낯선 곳으로 여행하기, 복싱이나 드럼, 댄스 등의 ‘열정적으로 보이는’ 취미 배우기 정도가 있겠다.
사람들의 성격이 복잡다단한 만큼 어떤 결심으로 인한 변화의 양상도 수없이 다양할 텐데, 범생이의 변화 스토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상당히 고루하고 전형적이다. 그래서 범생이 캐릭터의 변화가 ‘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하는 동경을 불러 일으키기 보다는 상당히 뻔하게 느껴지고, 저러다 어떤 위기를 맞을 것 같은 불안감 마저 들게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이따금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유순한 편이었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사포’처럼 매사 까칠하게 나오는 사람,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질풍노도의 감정을 쏟아내고 자기 감정에 솔직해진 줄 아는 사람,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전히 어색한데 GD급의 패셔니스타가 된 줄 아는 사람, ‘인생은 욜로!’라며 탕진잼을 SNS에 전시하고 잘 사는 척하는 사람들이 그 예다.
이런 장면을 근거리에서 지켜보면 ‘저 사람 요즘 참 좋아보이는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 사람 나름대로 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 한 선택일텐데 왜 그런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일까.
이유는 그 사람 자신도 진정 자신의 선택이 맞는지, 이 변화의 결과를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지 스스로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하게 감정을 내지르고, 자신에게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인 척 행세를 한다.
범생이 같이 살기 싫어서 외형적인 것들, 외모나, 태도, 소속이나 취미를 바꾸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헤어샵이나 성형외과에 가면 되고, 쎈 척 하면 되고, 돈 내고 학원 등록하고, 여행도 그냥 비행기 타고 떠나버리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사표 역시 그냥 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까지 바꾸는 것은 어렵다. 자유인 흉내를 내는 것과 자유인의 마음으로 사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자유인에 이르는 길은 어떤 하나의 선택, 심지어 퇴사나 출가 같은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라 하더라도, 단 하나의 행동으로 ‘당신은 이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이 되었다’고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다.
자유인으로 가는 길은 끝없는 훈련과 자기 성찰, 도전과 시행착오의 여정이다. ‘내가 100억을 벌면 자유로울 거야’, ‘이 회사만 안 다니면 행복할거야’ 라는 식으로 이 여정에 끝이 있다는 희망을 걸지도, 자유에 조건을 걸지도 않는 자세로 사는 것이다. 대신, 세상이 투사한 욕망을 최대한 걸러낸 자신만의 순도 높은 꿈을 가지고 자기 방식대로 자기 인생을 책임져 가는 사람이 자유인이다.
다시 말하지만 탈출 시도를 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을 계속 유지하고 이전보다 더 낫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세상은 쉽게 조종이나 동원이 가능한 ‘말 잘 듣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들려 하고, 우리 주변에도 한 사람의 변화를 지지하고 격려하기 보다는 ‘그냥 같이 지옥밭에서 뒹굴자’고 끌어내리는 사람 투성이며, 그런 환경 속에서 나약한 한 인간은 쉽게 의심과 두려움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범생이 탈출의 경험은 커녕, 그에 대한 좋은 청사진 조차 없기에 우리는 좀 더 전략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자유인 코스프레’만 하다 망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자, 조심스럽게 발을 떼보자. 아직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지금까지 살아온 익숙한 지대에 단단하게 매여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얼기설기 매고 있는 사슬이 눈에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은 그것을 풀어낼 재간도 용기도 없다.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코끼리는 다 자라서 말뚝을 부시고 나갈 힘이 충분한데도, 어린 시절부터 발에 묶여 있던 사슬 때문에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어버린다. 어느 시점이 되면 사슬을 풀어줘도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코끼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사슬이 풀렸다’고 백번 알려주는 것보다, 자신의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야생의 꿈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 제 어미의 어미의 어미가 태어나 자란 곳, 태초의 생명이 시작된 자유롭고 경계 없는 초원의 풍경을 눈으로 보듯 생생히 그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너는 원래 가장 크고 힘센 동물’이라고 억지로 깨닫게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그릴 수 있는 가장 충만하고 멋진 그림을 코끼리가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육중한 동물을 관통하는 피의 흐름과 근육의 움직임은 이미 예전의 것이 아니다.
사슬 조차 풀리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 삶
누군가에게 말하면 ‘그건 현실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한,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삶
그 정도라면 내게 수십억은 있어야 될 것 같다고 느껴지는 스케일
지금은 그것을 이룰 재능이나 용기가 없으니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야 할 것으로 보이는 일
가족이며 생계, 빚 등 나를 얽매는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시도해볼 용기가 생길만한 것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이고 내가 주인공이라면 모든 시련을 넘어 도달하게 되는 절정의 장
이런 것들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어렴풋하게 어떤 장면이 마음 속에서 그려지고 펼쳐진다면 그 장면이 내게 주는 느낌이 어떠한지 공기를 호흡하듯 들이마셔서 온몸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그 느낌이 짜릿하고 설레는 긍정적인 느낌인지, 부담되고 막막한 부정적인 느낌인지 살펴보길 바란다.
긍정적인 느낌이라면 그 안에서 나는 어떤 표정과 태도로, 어떤 사람들 속에서 어떤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지 상상을 이어가보는 것도 좋다.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면 자신에게 좀 더 수용가능한 이미지로 바꿔보고, 왜 그런 느낌이 오는지도 살펴보면 좋겠다.
그것이 얼마나 실현가능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자유의 에너지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 안에 불편함 없이 머무를 수 있을 때 자유인의 포스를 낼 수 있다. 아직 범생이를 탈출하지 못한 당신에게는 ‘그래서 이 답답한 곳을 어떻게 벗어나라는 말인가?’ ‘How to’ 전략을 손에 쉬는 것에 조급증이 나겠지만, 처음부터 말했듯이 그게 우선이 아니다.
깊은 구덩이에 빠졌다고 해서 자기 눈 앞에 내려진 아무 밧줄이나, 아무 발판이나 잡고 무작정 올라가면 탈출을 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떨어지고서는 탈출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고 말 것이다.
당신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 밖의 세상을 명징하게 꿈꾸고 도저히 나가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의기가 충만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결국 탈출하게 되는 방법이 축지법일지, 사자후일지, 순간 이동일지, 아득바득 기어올라가는 것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당신의 범생이 탈출 이미지가 당신 안에서 최대한 멋지고 근사하게 그려지길 바란다. 딱딱하게 굳어진 심장의 박동을 거세게 일으킬 정도의 청사진이 당신에게는 필요하다. 그것이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당신은 끝내 이 원형 감옥을 탈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