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년수험생 jcobwhy Nov 26. 2022

자격지심 극복 대작전

D+108 (nov 17th 2022)

*오늘 쓰는 글은 아직 내가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하지만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한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머리로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 굳건하게 믿으며 노력하고 있지만, 무의식과 감정의 습관은 그 반대 방향을 늘 향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의 글은 대단한 이상향을 향하고 있음에도, 그 반대를 향하는 무의식 때문에 전혀 반대인 모습을 근거로 한 어휘나 태도가 드러날 수 있다. 난 지금 나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서 허용되어야 하는 다른 가정의 모습의 하나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 물든 나의 무의식과 감정은 여전히 틀에 박힌 ‘옳은’ 가정의 모습에 매몰되어 불쑥불쑥 솟아오르곤 한다. 어쩌면 평생의 여정일지도 모르는 나의 삶의 방향에서 또 엇나간 오늘의 모습이다.


*이 글 안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단어에는 작은따옴표를 표시했다. 사회적인 관념을 표현하고자 쓴 단어일 뿐, 둘을 집단으로 대결 구도 안에 넣고 싶지 않다. 시대는 변했고, 우린 모두 인간이지,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역할이 따로 있다 절대 믿지 않는다. 다만, 나 스스로 구시대적 사회교육의 피해자로서, 내 안의 무의식은 여전히 그 사고를 바탕으로 단정하고 행동한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싸우고 교정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남자와 여자라는 단어에 따옴표 표시했음을 밝힌다.

 



‘그렇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좀 쉬엄쉬엄 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알았어, 때려치울게.’


‘응?’


아내가 저녁식사 후 샤워를 마치고 나와 식탁에서 유튜브 편집에 골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말을 건네고, 내가 그에 반응하면서 우리의 싸움을 시작됐다. 난 아내가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을 같잖게 여기는 것 같아 화가 났고, 아내는 너무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 안쓰러워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차원에서 건넨 말이었는데 내가 버럭 하자 이에 화가 났다. 우리는 이 상황을 두고 수 시간의 말다툼이 이어졌다. 나는 분명 아내가 내심 나의 개인 작업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아내는 자격지심 때문에 사소한 오해에 격분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못했고, 그 때문에 다툼은 그 저녁을 잡아먹고 말았다.


아내가 박사 유학을 오고 온 가족이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한 이후, 난 나대로 어떤 일상을 보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다.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는 남편 가정주부로서의 삶, 사회적으로도 미디어로도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어떤 생활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 가지 다짐했던 것은 육아와 집안일을 잘해서 아내가 학업에 집중할 수 있게 뒷바라지하면서도, 나의 지난 커리어를 바탕으로 나만의 할 일들을 꾸준히 찾으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곳에 이주한 지 한 달 정도 되고 난 후부터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계획하고 조금씩 하던 것이었는데, 부모들에게 어린이 콘텐츠를 추천하는 콘텐츠다. 미국에 와서 주부 생활을 하는 남편이라는 타이틀도 신선하니, 브이로그도 간간히 만들어 올렸다. 구독자나 조회수가 브런치 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아직 미미하지만, 꾸준히 하겠다는 생각으로 꽤나 집중해서 작업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성과가 많지 않다 보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영상을 올려도 만 하루 동안 조회수가 0에 머무르는 영상들도 있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 출신으로 콘텐츠를 추천해주면 부모들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수요 분석이 틀린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 주부로서의 일상을 담은 영상도 마찬가지다. 40대 초반의 잘 나가는 사업가나 성공한 프로페셔널이 아닌, 주부로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할까? 영상의 퀄리티나 재미도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능, 드라마,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온 프로페셔널인데, 이런 성과는 뼈아프다. 


더 뼈아픈 것은 내가 이 작업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서 눈치를 보고 자격지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성과가 있는 일이 아닌데, 그걸 계속 붙잡고 있는 모습 때문에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가족 안에서 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작업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해지는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였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에게 그 말을 들었다. 나에게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그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그렇게 골몰하면서 집안일에 신경도 안 쓰고 스트레스만 받고 있어? 아무 성과도 없는 그런 일 그냥 집어치워!’


서운했다. 나의 가치가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넌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힐난하는 것만 같았다. 불과 몇 개월 전 한 시간여 운전해서 출퇴근하며 수백 만원을 월급으로 벌어오던 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아내가 그땐 그런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 말을 저렇게 듣지 않았다. 나 스스로 정당성이 있었으니까. ‘남자’로서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온다는 ‘가치’를 지닌 자로서의 당당함.


나를 둘러싼 외부에서 오는 가짜 ‘가치’에 집착하는 천박한 무의식이 작용한 다툼이었다. 여전히 내 안 무의식은 ‘직업’과 ‘연봉’으로 가족 안에서의 ‘가장’이라는 ‘우월적 존재’를 꿈꾸고 추구한다. 그렇기에 별것도 아닌 유튜브 채널의 성과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27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아내의 말을 쉽게 곡해하고 자격지심이 폭발하여 다툼이 된 것이다.


‘직업’과 ‘연봉’이라는 당당함이 사라져도 이 가족 안에서의 나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아빠’와 ‘남편’이라는 그 가치다. 과거 수십 년, 혹은 그 이전부터 우리 사회가 ‘여자’들에게 강요하고, 유일하게 허용한 사회 안에서의 ‘가치’ 일 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인 모습은, 인류 역사 전반에서 ‘우월’적 지위를 영유하던 ‘남자’가 ‘여자’와 같은 가치만 허용하는 환경에 들어가자, 반항하고 발광하는 모습에 다름없다.


두어 시간의 다툼이 이어지고 나서야, 이 모든 다툼이 나의 자격지심에서 시작되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두어 시간을 인생에서 없애기 위해, 난 성역할 고정관념, 무의식, 자격지심과 지난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일 테다. 그래도 머릿속으로는 굳게 믿고 있다. 남녀의 성역할의 장벽이 무너지고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일 거라고. 그래서 지금 나의 삶의 모습이 열등하게도, 특별하게도 여겨지지 않을 거라고.


Photo by Kipras Štreimikis on Unsplash

이전 02화 미국에서 첫눈 오던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