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년수험생 jcobwhy Nov 27. 2022

추수감사절 스터핑 레시피를 받다

D+113 (nov 22nd 2022)

전 세계에서 미국에서만 명절로 지내는 추수감사절의 주간이 시작되었다. 추수감사절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무사히 신대륙에 잘 정착하고 살아남아 첫 수확을 거둔 것을 감사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미국으로부터 기독교를 전파받았던 한국은 아직도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절기로 지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가 지키는 절기가 아니고 미국인들만 지키는 명절이라서,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와는 그 기원이 완전히 다르다. 유럽이나 호주 등 다른 서양권에는 추수감사절이 없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추수감사절은 그 명절 만의 특별한 음식이 유명하다. 오븐에 구운 통 터키 구이와 그 안을 채운 스터핑, 그리고 매시드 포테이토와 크랜베리 소스, 그레이비소스, 이렇게 음식을 준비한다. 각 가정 별로 그 레시피가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위 다섯 가지 요리는 다르지 않은 듯하다.


10년 전 내가 미국 유학을 할 때는 추수감사절 때 터키를 먹는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이런 정찬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아무래도 그때는 미혼이었고, 주변의 미국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젊고 미혼이었기 때문에 추수감사절 날 명절을 대단히 챙기고 이런 분위기는 없었다. 대부분은 그 친구들도 다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이 해 주시는 정찬을 먹지 않았을까 싶다. 


10년이 지나 가정을 이루고 미국 서부보다는 전통을 많이 지키는 동부에 정착을 하다 보니, 각 명절의 전통을 지키는 분위기와 정취를 많이 느낄 수 있는 편이다. 한인 교회에서도 직접 터키를 굽고, 스터핑을 요리하고, 매시드 포테이토에 크랜베리, 그레이비소스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가정주부로서, 다른 요리들은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은 편이었다. 터키 오븐구이나 매시드 포테이토는 굉장히 직관적인 요리이기 때문이다. 터키 구이에 크랜베리 소스를 찍어 먹는 것도 처음엔 많이 이상했지만, 이젠 국내에도 여러 문화가 유입되면서 그렇게 낯설지 않은 조합이 되었다. 그레이비는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몰라도 무슨 느낌인지 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스터핑은 정말 오리무중이었다.


스터핑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삼계탕 안에 넣는 찹쌀, 대추, 각종 약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오븐에 터키를 구울 때, 뱃속에 각종 재료를 넣어서 같이 구워내고, 별도로 덜어내 접시에 내어 놓는다. 이번에 미국에 와서 스터핑을 처음 맛보게 되었는데, 그 맛 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재료로 만든 음식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주변에 친구는 조금 생겼지만 현지인은 많지 않아서 물어볼 기회가 없다가, 어제 아이 학교 버스 정류장에서 스쿨 가드인 조이에게 스터핑에 대해서 물어보게 되었다.


‘조이, 혹시 스터핑 만들 줄 알아?’


‘당연하지, 우리 집 만의 특별한 레시피가 있다고.’


‘그렇구나. 도대체 그 안에 뭐가 들어가는 거지?’


‘내 레시피를 적어줄 수 있어. 만들어 먹으려고?’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무슨 음식인지 잘 모르겠더라고.’


‘그럼 내일 내가 적어줄게.’


응? 적어준다고? 난 그냥 그 안에 뭐가 들어가는 음식인지 알고 싶었을 뿐인데. 워낙 조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조이의 페이스에 넘어가게 되어버려, 난 졸지에 가족을 위해 추수감사절 정찬을 준비하는 사려 깊은 남편과 아빠가 되어버렸다. 사실 만들어볼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콘텐츠로도 괜찮아 보였다) 통 칠면조가 워낙 크고 가격도 있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빼박 요리를 하게 생겼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만난 조이가 노트 한 페이지에 자신의 스터핑 레시피를 정리해 내 손에 쥐어줬다. 자신은 이번에 결혼 후 39년 만에 추수감사절 정찬에서 해방되었다며, 궁금하면 자신에게 전화하란다. 너무 친절했다. 또 부담됐다. 나 진짜 이거 만들어야 하는 건가? 추수감사절 정찬을 당일에 만드는 것은 포기했지만, 조이의 정성을 봐서 주말에라도 스터핑을 만들어 먹어보려고 한다. 재료를 보아하니 아이는 먹지 않을 것 같다. 통 칠면조는 보통 일주일 전에 사서 2~3일은 냉장 해동해야 한다고 한다. 조이는 냉동 칠면조를 녹이는 게 얼마나 힘든지만 5분여를 이야기하더라. 스터핑은 조이의 시어머니(mother-in-law)의 레시피라고 한다. 39년 만의 해방, 시어머니… 미국의 추수감사절에서 한국의 추석 냄새가 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참고로 스터핑은 주재료가 빵인데, 맛본 사람은 알겠지만 빵이 주재료라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빵과 양파, 셀러리가 들어가고, 각종 양념과 버터, 우유, 계란이 들어간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보통 칠면조 내장이 빠진 곳에 채워 넣고 같이 굽지만, 따로 요리를 해도 무관하다고 한다. 짭조름한 맛이 나는 으깨져 있는 음식 덩어리인데, 설명이 매우 어렵다. 미국 가정식은 통상 탄수화물, 야채, 고기, 이렇게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추수감사절 정찬에서 스터핑은 탄수화물을 담당하는 듯하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그다음은 크리스마스와 새해이다. 9월 이후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미국 명절의 쳇바퀴가 거의 끝나간다.


Photo by Pro Church Media on Unsplash

이전 03화 자격지심 극복 대작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