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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Nov 28. 2022

아내의 생일과 10년 만에 미국에서 영화 관람

D+114 (nov 23rd 2022)

우리 가족의 생일이 모두 하반기에 몰려 있어서, 올해의 생일은 모두 미국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9월, 아이와 내 생일을 보냈고, 오늘 아내의 생일이다. 미국은 내일부터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낸다. 추수감사절은 매해 11월 넷째 주 목요일인데, 아내의 생일은 늘 이 언저리에 있다. 올해는 다행히(?) 아내의 생일이 추수감사절 전날이어서, 아내와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추수감사절 전날이면 평일인데 왜 다행인지 묻는다면, 추수감사절 당일은 정말 어떤 가게도 문을 열지 않아서 집콕 외에는 옵션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와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마침 개봉했지만 보지 못하고 있던 마블의 한 영화를 관람하러 극장을 찾기로 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모두가 공감을 하겠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부부끼리 둘만의 영화 관람이나 데이트는 언감생심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마침 아내의 생일날에 아내는 학교를 쉬고, 아이는 학교에 갔다. 이런 기회가 또 없겠다 싶어 10년 만에 미국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우리가 고른 영화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였다. 둘 다 워낙 디즈니, 마블 광팬인 데다, 채드윅 보스만의 팬이기도 해서 엄청나게 기대하기도 하고, 그의 부재가 아쉽기도 한 작품이었다. 꼭 아내와 함께 극장에서 봤으면 했는데, 마침내 갈 기회가 생겼다. 다행히도 극장은 집 앞 바로 앞에 있는 쇼핑몰에 있었다. 미국의 쇼핑몰은 한국과는 많이 다른데, 한국에서의 쇼핑몰은 10층 미만의 중대형 건물 한 채 안에 극장과 레스토랑, 각종 상품 판매점이 여러 층에 걸쳐 있는 모습이라면, 미국의 쇼핑몰은 드넓은 주차장 주변에 여러 1층 건물들에 극장과 레스토랑, 상품점들이 퍼져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에 극장이 있는 쇼핑몰이 있어서 그 극장의 영화 티켓을 예매했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앱을 통해 영화를 예매했는데, 일반 디지털 상영 티켓은 9불로, 그 가격은 꽤 저렴한 편이었다. 3D나 XD와 같은 프리미엄 상영은 12.5불이다. 전체적으로 비싸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그렇다고 한국에 비해 매우 저렴하단 느낌은 없었다. 또 모바일 티켓은 바로 휴대폰 월렛으로 들어가서 사용하기 편리했다. 원래 옛날(10년 전?) 미국 극장(심지어 멀티플렉스도)은 자리가 따로 없이 선착순으로 자리를 잡는 극장들이 많았는데, 팬데믹 이후로는 지정석으로 모두 바뀌었나 보다. 앱으로 예매를 할 때 한국과 똑같이 자리 지정까지 같은 방법으로 했다.


시간에 맞춰 극장에 도착해서 아내와 나 모두 극장 외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커다란 트레일러가 다가왔다. 사진 찍기를 멈추고 트레일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려 하는데, 기사가 창문을 내리더니,


‘나 여기 극장 앞에 차 세울 거야. 사진 찍을 거 빨리 찍으면 그다음에 세울게.’


‘어, 우리 둘 다 찍었어. 고마워.’


뭔가 시골 느낌의 정감 있는 태도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팝콘과 음료를 파는 곳도 엄청 정감 있었다. 물론 가격은 그렇지 않았다. 팝콘 하나에 음료 작은 사이즈 하나 시켰는데, 가격이 12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싶다.


팝콘과 음료를 들고 들뜬 마음으로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휴대폰 월렛을 이용해 티켓 체크를 하고 상영관으로 향했다. 극장은 뭐, 한국과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냥 모든 상영관이 다 한층에 있다는 것 정도다. 극장 건물 자체가 1층 건물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지하층도 없고 2층도 없는 건물, 한국에선 무척 낯설지만, 여긴 거의 모든 건물이 그렇다. 상영관으로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다. 자리가 너무 넓다. 모든 자리가 리클라이너 자리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거 한국도 이런데 나만 모르나 싶었다. 특별한 상영관이 아닌 모든 상영관에 리클라이너 자리로 되어 있었다. 개인 테이블도 모두 있고. 너무 편안했다.


영화 상영 전 광고나, 예고 편들 모두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영상들이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광고 없이 콘텐츠를 시청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극장의 광고가 정감 있다. 예고편도 마찬가지. 콘텐츠 리뷰어로서 일부러 예고편을 찾아보기는 하지만, 큰 화면으로 MPAA의 녹색 화면과 함께 예고편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영화도 좋았다. 한 편의 긴 채드윅 보스만, 혹은 블랙 팬서의 미국식 장례식을 보는 듯한 슬픔에 젖은 영화였다. 경쾌한 액션과 화려한 비주얼 이펙트가 돋보였지만, 짙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단 둘이서 시간의 제약 없이 영화를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미국에서 영화를 본 것은 10년만, 한국에서도 마지막으로 영화를 언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워낙 기회가 흔하지 않아서 마블 영화만 봤는데, 아마도 엔드게임이 마지막이 아녔나 싶다.


아이 학교도 늦게까지 하고 이젠 아내도 직장이 아닌 학교에 가니, 훨씬 더 자주 극장에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이를 키우는 10년 동안 어서 아이가 커서 단둘이 극장에 갈 수 있는 시절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사이 문화가 많이 바뀌어서 옛날만큼 사람들이 극장을 많이 찾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기도 하다. 공간은 더 좋아졌고, 사람이 많지 않아 더 쾌적하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자주 가게 되지 않을까? 다음 작품은 우리 둘의 최애 작품의 후속작인 아바타 물의 길이 아닐까 싶다.


Photo by Jonatan Moerm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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