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년수험생 jcobwhy Dec 01. 2022

미국에서 월드컵 응원을 한다는 것

D+119 (nov 28th 2022)

추수감사절 연휴가 지나고 첫 월요일 아침 8시, 한국 시각으로는 28일 저녁 10시,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과 가나의 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이 벌어졌다. 1차전 우루과이전은 휴일이어서 편하게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평일 오전이라 아이가 학교 버스를 타러 가는 시간이기 때문에 전반전 경기의 대부분을 놓쳐야 했다. 하지만, 재빨리 집으로 돌아와 나머지 경기를 시청했다.


나는 대한민국의 흔하디 흔한 축구팬이다. 열광적이진 않지만 손흥민의 토트넘 경기 결과에 관심을 가지고, 이강인이 뛴다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경기 결과를 확인하기도 한다. 은근 케이리그에도 관심이 많아, 관심이 가는 경기는 하이라이트도 챙겨보는 편이다. 사실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도, 농구도, 흔한 프로 스포츠나 국가 대항전은 다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월드컵 본선 경기 중계 시청은 이 모든 스포츠 관람의 기본 중 기본이라고 보면 된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도 중요하고, WBC도 중요하고, 올림픽도 놓칠 수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월드컵만큼은 아니다. 대부분의 월드컵 경기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게는 단 3경기 이상 잘 허락하지 않고, 그 이상 한두 경기를 늘리기 위해 선수들은 사력을 다하고, 국민들은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다.


난 지난여름 미국으로 이주했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미국에서 시청하게 되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 축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라다. 대한민국에서는 공중파 3사가 모두 중계권을 가지고, 본 채널과 스포츠 서브 채널 등을 통해 전 경기를 중계하지만, 미국에선 단 한 개의 네트워크 채널이 월드컵을 중계한다. 올해는 폭스에서 중계하는 듯한데, 우리 집엔 네트워크 TV나 케이블이 들어오지 않아 TV로는 월드컵을 시청할 수 없다. 물론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정규 방송에서 한국 경기를 중계 할리는 없다. 정규 방송사보다는 스페인어 방송 채널에서 월드컵 중계에 열을 쏟는다. 아무래도 유럽의 스페인도 그렇지만,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의 대부분 국가들이 월드컵 응원에 진심이기 때문일 테다. 미국은 아무래도 남미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속한 조에 우루과이가 있어서, 그래도 몇 경기는 스페인어 방송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이미 월드컵이 시작한 지 일주일 가까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월드컵의 열기를 1도 느낄 수가 없다. 축구의 인기가 워낙 바닥이기도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전국이 하나가 되어 자신의 나라를 응원하는 국제 경기에 관심이 많이 없다. 팀 USA의 경기보다는 우리 도시 야구팀, 미식축구팀, 하키팀의 경기 결과가 더 중요하다. 우리 아이의 스쿨 가드인 조이는 미국의 월드컵 첫 경기를 치른 다음날에도 월드컵 경기 따윈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역 아이스하키팀이 이겼다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생각해 보면 십 년 전 미국 유학 때도 그랬다. 나는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WBC, 2010 밴쿠버 올림픽, 2010 남아공 월드컵, 2012 런던 올림픽을 미국에서 관람했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한국이 야구에서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는데, 당시엔 어학연수 시절이어서 아시아 출신 학생들끼리만 열을 올렸던 기억이 있다. 미국인 영어 선생님은 한국이 야구 금메달을 땄다고 하자, 그건 메이저리거가 없어서 그렇다며 평가절하했다. 응원은 하지 않지만, 야구 금메달이 아닌 것에 기분만 나빠하는 느낌 정도? 2009 WBC는 한국이 결승에서 일본에게 아쉽게 패해 준우승했었는데, 당시에 미국 사람들은 정말 아무도 안 봤던 기억이 있다. 미국 대표팀이 거의 메이저리그 올스타급이었음에도 말이다. 미국 사람들은 WBC 보다는 대학농구 토너먼트, ‘3월의 광란’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미국에선 심지어 올림픽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국에서조차 생중계를 해주지 않는다. 올림픽은 대부분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곳에서 열려 경기 시각의 시차가 큰 편인데, 이를 생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보기 좋은 프라임 타임을 따로 정해 그 시간에 녹화방송을 해 준다. 이미 결과를 알 수도 있고, 긴장감도 떨어지는데, 왜 그렇게 중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중요한 건 어떻게 방송을 해도 잘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국제경기에 대해 무관심한 나라에서, 또 축구에 대해 관심이 정말 없는 나라에서, 월드컵을 응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주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으니 대화의 상대가 거의 없다. 한국이었다면 타인들의 수다만 들어도 모두 월드컵 이야기일 것이다. 다음날 출근하면 남자들은 축구 얘기만 주야장천 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축구 따윈 정말 관심 밖이다. 월드컵 이야기는 몇몇 한국 분들 빼고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다. 한국에서 대형 마트에 가면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수많은 프로모션 행사가 있을 테다. 대형 티브이나 맥주 등이 그렇다. 여기선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맥주회사 버드와이저는 공식으로 월드컵을 후원하는 회사임에도, 흔한 마케팅 이미지 한 장 본 적이 없다.


미국의 공식 채널을 통해 월드컵 경기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VPN을 활용해 한국 OTT 서비스로 중계를 시청했다. 1차전 때는 한국 포털 서비스로 시청을 시도했는데, 접속량이 워낙 많아 제대로 시청하기가 어려웠다. 90년대 영상 품질로 2022년의 월드컵 경기를 본다는 게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중계 시청 품질과는 별개로 한국 선수들은 굉장한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무승부를 이루었다. 오늘 2차전은 수준 높은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속상할 만한 3 실점, 그리고 마지막 석연찮은 경기 종료로 2:3 석패로 경기가 끝났다. 아마도 한국에서라면 시청하는 내내 맥주도 여러 잔 들이켰을 거고 치킨도 많이 먹은 상태였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모닝커피와 함께 경기를 지켜봤고, 패배를 뒤로 하고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나 홀로 응원 같은 이 고립감이 나의 월드컵 응원을 더 초라하게 한다.


해외에서 사는 한국인에게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제 경기에서의 선전은 큰 용기와 위로를 선사한다. 해외에서 사는 나의 삶 자체가 덩치가 산 만한 외국인들과 경쟁하는 스포츠 경기 같기 때문이다. 똑같이 산 만한 덩치의 외국인들과 경쟁하고 앞서 나가는 모습은 나에게도 부딪혀 볼 용기를 준다. 전에는 국제경기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저 저들이 부딪혀 이겨낸 것처럼, 나도 부딪히겠다는 동기를 얻는 좋은 소스가 된다.


부디 돌아오는 3차전 포르투갈 전에서는 경기력뿐 아니라, 결과에서도 최선의 결과가 있길 응원한다. 나도 신나게 열정적으로 응원해야지. 아침 10시에.


Photo by Fauzan Saari on Unsplash

이전 05화 아내의 생일과 10년 만에 미국에서 영화 관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