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중년수험생 jcobwhy Dec 05. 2022

월드컵 16강인데… 같이 환호할 사람이 없어요

D+123 (dec 2nd 2022)

‘에이~C!!’


아침 10시 5분, 아내도 연구실에 가고, 아이도 학교에 간 시각. 원래 같으면 아침 운동 끝내고 집 청소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이른 아침에 욕부터 나온다.


희박한 경우의 수를 획득하기 위한 태극 전사들의 마지막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골. 경기가 시작한 지 차마 5분밖에 안 된 시간이었다. 단순히 승부만이 아닌, 많은 것이 걸려 있었던 경기였기에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그 기대가 5분 만에 꺾이는 듯했다. 평소 같으면 지고 있는 상태에서의 조마조마함을 90분 가까이 이어가야 하는 상황을 나는 피하곤 했다. ‘에잇’하면서 티브이를 꺼 버린다. 지난달 프로야구 플레이오프가 그랬다. 실패의 과정을 지켜보기란 그 마음이 편하지 않다.


지난 글에서 내가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부분은, 신체적, 기술적으로 우월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부딪치고 이겨내는 모습이었다. 사실 이곳에서의 나의 생활이 누구와 치열하게 경쟁하지도 않고, 이겨내야 하는 대상이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그런다. 지금 지고 있고 이대로 진다고 해도 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처절하게 승부를 이어갈 텐데, 그 처절한 패배를 내 눈으로 지켜볼 용기가 나에게는 많지 않다.


하지만 티브이를 바로 끌 수는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포르투갈은 나에게 프랑스나 브라질(!)과 같은 압도적인 존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른 시간 첫 골을 허용하면 순식간에 무너져 4대 0 5대 0이 될 거란 우려가 쌓이는 압도적인 팀들이 있다. 98년의 네덜란드가 그랬고, 6월의 브라질(!)이 그랬다. 그래서 약간의 조마조마함을 안고 계속 시청했다. 다행히 내 안의 조마조마함은 약 20여분 후 김영권 선수의 골과 함께 조금 잦아들었고, 끝까지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손흥민 선수는 다시 4년 전처럼 70여 미터를 내달렸고, 이는 황희찬 선수의 골로 연결되었다. 정규 시간을 1분 넘긴 시간이었다. ‘우와으이우어ㅏ왕의오앙’ 내 입에서 알 수 없는 환호와 흥분이 넘쳐난다! 됐다! 이제 됐다!


또, 모두 알다시피, 진정한 환호를 지르기 위해서 20분 여가 더 필요했다. 5~6분간의 조마조마한 순간을 지나 경기가 끝나고 승리를 확정 지은 후에도, 가나와 우루과이의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경기도 끝났고, 가나가 우루과이에게 2대 0으로 져준(!) 덕분에 대한민국의 16강이 확정됐다!


‘이어아ㅗ아이어이ㅏㅓ이ㅏ어ㅣㅇ’


부둥켜안고 환호하며 즐거워하며 이 격정적인 역사적 순간을 즐겨야 마땅하지만, 정말 그래야 마땅하지만, 나 혼자 이 놀라운 순간을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월드컵 16강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2002년 월드컵의 환희는 나의 20대를 대변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성과는 막 30대 들어선 내가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존재라는 확증이었다! 이번의 16강? 크게 다르지 않다! 나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이 포르투갈전은 어떤가? 수많은 스토리가 압축된 경기였다. 벤투 감독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에서 우리를 상대로 뛰었던 선수였지만,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감독으로 자신의 조국을 상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지난 가나전의 항의로 레드카드를 받고 그 중요한 결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루이스 피구 이후로 포르투갈 축구선수의 대명사가 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지난 4년 전 ‘유벤투스 노쇼 사건’으로 ‘날강두’가 된 채 우리 대표팀과 경기를 가진다. 한국 대표팀에게도 포르투갈 대표팀에게도 복수전의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처한 상황이 조금 달라, 복수전의 의미가 더 강한 쪽은 우리나라 대표팀이었다.


이런 경기를 이겼으니,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겠는가? 경기 후 정말 수많은 썰들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다. 손흥민의 눈물은 감격스러웠고, 누구는 누구에게 주민증을 선사하고, MOM을 선사하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난리가 나지 않은 곳은 내가 있는 이곳 한 곳뿐이었다.


지난 글에서처럼, 이곳은 월드컵의 열기를 느낄 수 없는 곳이다. 정말 느낄 수 없다. 티브이 광고에서도, 인터넷 티브이 시작 화면에서도 월드컵 관련 문구조차 찾아볼 수 없다. 난 하루에 단 두 명의 한국 사람을 만난다. 아내와 딸아이. 아내는 라이브가 아닌 이상 수많은 스포츠 관련 스토리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하지만 경기 라이브는 또 진심으로 본다) 딸아이는 그야말로 축구 따위 아웃 오브 관심이다. 16강에는 진출했고, 라이브로 시청했고, 잔뜩 흥분은 했는데, 누구 하나 같이 공유할 대상이 없다.


다행히 이번 월드컵은 유튜브에서 같이 봐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있다. 2002년 월드컵 전설들이 운영하는 채널이나, 몇몇 공중파 운영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후토크들이 제법 빠르게 올라와준 덕분에, 속에 응어리진(?) 흥분과 환희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월요일에 16강 브라질전은 기분 좋게 시청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내년 초엔 WBC도 있는데, 그건 좀 나으려나? 


Photo by Wonder KIM on Unsplash

이전 06화 미국에서 월드컵 응원을 한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