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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Feb 09. 2023

반려견 디디의 대 탈주극

D+186 (feb 3rd 2023)

집에 있는 학부모로서 평일 낮 일과 시간에 하는 일 중 절대 놓쳐선 안 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딸아이의 등굣길을 데려다주는 것, 다른 하나는 하굣길에 데리러 나가는 것이다. 미국에선 초등학교 때까지는 혼자 등하교를 하면 안 돼서 학교 버스를 탄다고 해도 반드시 정류장으로 데리러 가야 한다. 아이의 등교시간은 아침 여덟 시 반, 하교 시간은 세 시 반. 아이 등하교 시간에 맞추어 낮시간 스케줄을 모두 맞추어야 하는데, 뭐 특별한 건 없다. 낮엔 주로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이나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낸다. 사실 언제 해도 상관없는 일들이다. 하지만 아이 등하교와 함께 시간을 맞춰서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그건 반려견 디디를 산책시키는 일이다. 


지난 십일월에 반려견 디디가 처음 우리 집에 온 후로 꼬박꼬박 하루에 세 번 산책을 나가는데, 그중에 한 번은 딸아이가 하교를 할 때 데리러 나가는 겸 해서 디디를 데리고 나간다. 야외 배변으로 습관이 완전히 굳어버린 디디는 하루 세 번, 아침 새벽부터 저녁 밤 아홉 시까지 소변과 대변을 모두 야외에서 해결한다. 아침과 저녁 산책은 따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오후 산책은 가급적 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서 데리고 나간다. 아이가 버스에서 내릴 때 디디가 기다리고 있으면 좋아하니까 디디에게도 완전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세 시 이십 분이 넘어가자, 디디는 산책을 나가자고 꼬리를 탈래탈래 흔들어댄다. 


‘디디, 어야 갈까?’


난리가 났다. 꼬리는 프로펠러가 되어 날아갈 지경이다. 날씨가 엄청 추워서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디디 산책과 딸아이 데리러 갈 준비를 했다. 처음 입양할 때 하고 왔던 목줄과 리드줄을 지난주에 새 걸로 바꿨는데, 알록달록하니 예쁜 줄을 딸아이가 골랐다. 리드줄을 달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진짜 춥다. 영하 10도다. 오후 세 시에 영하 10도라니. 추워도 너무 춥다. 이 와중에 산책은 꼭 해야 하고, 배변도 무조건 밖에서 하는 디디가 참 대단하기도 하다.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어서 빨리 디디의 배변을 처리하고 딸아이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날씨가 정말 추워서 그런지 아이 버스가 올 때까지 불과 오분 남짓인데도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은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하니, 디디도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인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도 얇은 스웨터라도 입혀서 다행인 듯싶었다. 잠시 기다리자 딸아이의 학교 버스가 도착했다. 


금요일 오후에 학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밝고 흥분돼 있다. 버스가 서자마자 갑자기 적막만 흐르던 정류장은 금방 활기를 되찾는다. 우리 집은 정류장 길 건너편에 있어서 아이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는 천방지축 초등 4학년 생 딸과 산책에 한창 고무된 비글 믹스 반려견을 동시에 신경 쓰면서 길을 건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때였다. 


‘어? 어어~!’


갑자기 횡단보도를 함께 건너던 디디의 목줄이 쑥 빠져버렸다. 그러더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디디가 쏜살같이 튀어 나가 버렸다.


지난 3개월 동안 디디와 우리 가족은 나름 관계를 잘 형성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혹시 줄을 놓치거나 하더라도 멀리 도망가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정말 눈 깜짝할 새 튀어나간 디디는 쌩 하고 튀어 나갔다. 우리 집 방향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내 쪽으로 뛰어오는가 싶더니 휙 지나가 버린다. 목줄이 완전히 빠져버린 터라 몸에 잡을 곳도 없었다. 낭패였다. 딸아이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져버렸다. 반려견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거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디디가 온 방향으로 천방지축 뛰는 바람에 왕복 1차선 도로의 차들도 잔뜩 긴장했다. 이 시간이면 집 앞 도로는 차들이 굉장히 많은데, 디디 때문에 거북이 운행을 하기까지 했다. 만약 차들이 정상 운행을 했더라면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운전자들이 배려해 줘서 큰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던 디디는 결국 도로도 무단횡단 해버리더니 천방지축 뛰놀다가 아이와 같은 학교의 상급생 A가 막아준 덕분에 돌발행동을 멈추었다. 나는 재빨리 뛰어가 디디의 얇디얇은 스웨터를 웅켜잡고 디디를 고정한 뒤 빠져버린 목줄을 다시 채웠다. 아무래도 새로 산 목줄이 당겨도 둘레가 조여지지 않아 쑥 빠져버린 듯했다.


약 십여 분간의 아수라장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디디가 그 난동을 피우는 동안 아이와 같이 하교를 하는 친구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스쿨 가드 조이, 멈춰서 기다려준 학교 버스 운전사 아저씨와 일반 차량 운전자들 덕분에 무사히 디디를 ‘포획’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눈앞이 깜깜했다. 디디에겐 마이크로칩이 심겨 있고, 이미 시에 등록이 되어 있는 반려견이기 때문에 길을 잃어도 찾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온갖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만약 디디를 잡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다치기라도 했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에 아찔하기까지 했다. 정말 이렇게 무사히 안전하게 집에 돌아온 것이 어쩌면 천만다행이었다.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목줄은 당기면 조여지는 줄로 다시 바꾸었다. 멀리 달아났을 때 유인할 수 있도록 간식도 몇 개 챙기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정말 다행이다. 큰 일로 번지지 않아서.


이누마! 다음부턴 절대 도망치지 마라!


Photo by C Perre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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