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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Mar 13. 2024

중고차 오너의 비애

2024년 3월 8일(이주 588일 차)

탈 많았던 이사도 마치고, 짐정리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집의 위치나 구조 등 적응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둘씩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마침 아내가 이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봄방학을 맞이해, 짐을 정리하거나 필요한 것을 구매하러 가는데 시간을 함께 사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척척 새 집 정리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


새롭게 집을 이사하면서 불편해진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내가 학교 가는 교통이 불편해졌다는 사실이다. 아내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내가 차로 데려다주는 방식으로 통학을 하고 있었는데, 높은 빈도로 광역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전에 살던 집은 광역버스 정류장이 집에서 가까워서 그나마 버스로 통학하기가 불편하지 않았는데, 새로 이사 온 집은 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처음엔 버스 정류장이 있길래 광역버스가 다니는 줄 알았는데, 매우 특이하게도 오전엔 도심에서 집으로 오는 노선만, 오후엔 도심으로 나가는 노선만 운행했다. (반대여야 하는 거 아닌가?) 즉, 버스로 통학은 거의 불가능해진 상활이다. 하지만 전의 아파트 단지엔 타운홈이 없었고, 아이가 지금 집에 워낙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하기로 했다.


사실 버스가 아닌 방법으로 아내가 통학하는 방법은 내가 차로 데려다주는 방법인데, 약간의 제약이 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아내를 데려다주거나 데리고 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이가 함께 차로 아내를 데리러 학교에 가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했다. 한 시간 정도 차에 갇혀 있어야 하니,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새 집으로 이사 올 때 아이와 약속을 했다. 혹시 엄마가 버스 타고 집에 올 상황이 되면 정류장까지는 같이 차로 데리러 나가기로. 아이가 집에 있는 상태로 데리러 가는 것은 옵션에 없다. 12세 미만의 아이를 집에 혼자 두는 것은 아동학대로 의심될 수 있고, 아파트가 아니기에 위험하기도 하다. 즉 새로 이사하면서 자동차가 제법 더 중요해진 것이 이 애기의 포인트다.


수요일에 오랜만에 다운타운에 나가게 되었다. 수요일은 아내가 담당교수와 미팅이 있는 날이다. 봄방학이기는 하지만, 박사생에게 방학이나 브레이크가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이번주도 어김없이 교수와의 미팅이 있고,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 모든 일정이 끝난다면, 대부분 내가 아내를 학교에 데려다준다. 오늘도 어김없이 학교로 향했다.


한창 운전해서 시내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차량 계기판에 경고등이 떴다. 엔진 체크 경고등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엔진 체크 경고등은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경고등이 뜰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중고차에 엔진 체크 경고등이 뜨는 경우는 큰 금액의 수리비가 청구되는 정비를 요하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이 됐다.


아내가 교수와 미팅을 가지는 동안 차를 주차하고 인터넷으로 내 차 기종이 엔진 경고등이 들어왔을 때 문제가 있을만한 이유를 찾아봤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나온다. 주유캡을 잘 안 닫아서 그럴 수 있다는 간단한 이유에서부터 엔진의 주요 부품을 통으로 갈아야 한다는 등의 최악의 경우의 수까지 나타났다. 어쩌면 좋을까? 


난 차에 문제가 있을 때 서러움을 느꼈던 경험이 많다. 15년 전 미국에 처음 유학을 왔을 때 차가 필요해서 1,700불짜리 91년식 도요타를 몬 적이 있었는데, 워낙 오래된 차다 보니 문제가 많이 생겼다. 중간에 차가 서서 차를 끌고 정비소를 간 것만 두세 번이 있을 정도였다. 외부 활동이 많은 전공의 특성상 차가 꼭 필요해서 직접 번 돈으로 구매하다 보니 이렇게 저렴한 자동차밖에 살 수 없었는데, 수리비로 수백 불에 달하는 비용이 들게 되고,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일이 자주 생기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유학을 오면 워낙 집이 잘 사는 친구들이 많아서, 수만 불에 달하는 외제차를 턱 턱 잘 사는 친구들도 많았기 때문에, 더 비교되고 서럽고 그런 거겠지.


이젠 나이가 사십이 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야 하는 시기에 다시 유학생 가족이 되어 살다 보니, 아직도 그런 삶이 계속되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져 눈물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차량의 문제는 가족의 안전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바로 정비소로 향했다. 원래 자주 방문하던 엔진오일 교환하는 곳에 방문해서 OBD II 코드를 검색했다. 직원은 내게 서모스탯(온도조절기) 문제라고 알려주었다. 자기네는 차량 수리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면서 정비소를 찾아가라고 알려줬다. 그래서 정비소를 찾았다.


정비소에서는 다른 곳에서 코드 체크한 것만으로 수리를 할 수는 있지만, 자기네들도 검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수리 코드 리포트를 받아서 왔다면 별도로 검사를 할 필요가 없는데, 수리를 하더라도 엔진 체크 경고들이 그대로 켜져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차를 맡겨서 검사와 수리를 진행하기로 하고, 다음날 차량을 정비소에 맡겼다.


차를 맡기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지만, 인도 없는 시골길을 걷는 게 위험하고 난감했다. 점심 전에 전화가 왔는데, 온도조절기 문제도 있지만, 다른 문제도 있단다. 흡기 매니폴드라는 장치에 문제가 있는 코드라는데, 해당 부분도 수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다. 가뜩이나 이사 때문에 이래저래 돈도 많이 들었는데, 차량 수리비까지 옴팡 깨지게 생겼다. 원래 그런 거다. 십 년 넘은 중고차 오너의 비애다.


일단 최초 문제였던 온도조절기부터 교체하기로 했다. 수시간만에 온도조절기는 교체가 됐지만, 역시나 여전히 엔진체크 경고등이 들어와 있다. 계속 엔진 경고등이 들어와 있는 상태로 운행을 할 수는 없다. 다음 주 수리 일정을 알려주기로 하고 차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럽다. 경제적으로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조금 더 연식이 적게 된 차를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생각했다가 바로 생각을 접었다. 의미 없다. 돈이 여유가 있었다면 이제야 공부하겠다며 미국으로 향하지 않았겠지. 한국에서 편하게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었겠지. 중고차 연식을 따지고 있지도 않았겠지. 다 의미 없는 후회와 서러움이다.


그냥. 빨리 수리하자. 어쩔 수 없다. 써야 되는 돈, 고민하지 말고 안전하게 수리해서 마음 놓고 또 운행하면 된다. 그래야 더 큰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너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중에 오는 여러 사람들을 도우라고 여러 경험을 하게 하는 건가? 꼭 직접 다 경험해야 하는 건 아닐 텐데. 그렇지 않나?


사진: UnsplashErik Mcl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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