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3일(이주 593일 차)
누구나 쇼핑을 할 때면 갈등에 빠진다.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지상 최대의 난제다. 몇 번을 진열대에서 집었다 놨다 하면서 고민을 한다. 그리고는 결국 내려놓는다. 다음에 더 필요할 때 사야지. 하지만 그다음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꼭 필요한 물건도 몇 번을 고민하고, 매번 그렇게 내려놓는다.
외식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먹고 싶은 메뉴가 있지만, 가격에 눈이 머문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왜 그렇게 늘 비싼지. 기름이 좔좔 흐르는 큼지막한 새우나, 쫄깃쫄깃 식감이 훌륭한 소고기가 들어간 메뉴에 군침이 돌지마는, 결국 고르는 것은 닭고기나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메뉴를 고르고 만다.
난 원래도 돈을 쓰는 것에 인색하기는 했지만, 미국생활을 시작하면서 더 심해졌다. 이유는 많다. 한국에서 맞벌이를 하면서 벌던 수입보다 미국에서 수입이 줄었고,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미국생활에선 공공 서비스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간다. 한국에서처럼 신용카드로 지출을 조절하거나, 대출 등의 금융 서비스로 긴급한 자금을 융통하기도 어렵다. 지금 통장의 돈이 내가 가진 경제생활의 유일한 리소스다. 갑자기 사고가 나거나 병이 생기거나 했을 때, 최소한의 비상금은 늘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검소하지 않으면 어렵다.
잠깐. 그렇다면 난 검소한 걸까? 아닌 것 같다. 검소하다기 보단 구두쇠에 더 가까운 듯하다. 검소한 것과 구두쇠는 무엇이 다를까?
잘은 모르지만, 내 느낌적인 느낌(?)으로 검소한 사람이냐 아니냐는 필요한 것을 제때 잘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검소한 사람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인다. 꼭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면밀하게 살피고, 필요한 것들만 구매한다. 때로 필요한 것의 경계가 지나치게 좁을 수는 있지만,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두쇠는 지출을 최대한 미룬다. 필요한 물건도 최대한 안 사고 버틴다. 그러다가 결국 없어서 불편함을 느끼고 그제야 사게 된다. 어차피 똑같이 지출하게 되는데도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지출을 지연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구두쇠가 아닐까 싶다.
난 소비를 지연하는 사람이다. 최대한 미룬다. 불편함을 감수한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 아마존을 폭풍 검색하다가 내가 필요한 바로 그 제품을 찾아도, 가격을 보곤 다시 검색을 시작한다. 더 저렴한 물건을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같은 기능을 가진 더 저렴한 제품을 찾는 데는 실패한다. 그래서 아마존 앱을 닫아 버린다. 더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려다가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지나가버린다. 그 사이 그 물건이 없어서 겪는 불편은 쌓인다.
검소한 사람과 구두쇠를 나누는 또 하나의 기준은 기능적으로 완벽하게 필요한 물건을 사는지, 아니면 기능적으로 부족하지만 저렴한 물건을 사는 지다. 검소한 사람은 나에게 딱 필요한 물건을 산다. 필요한 기능을 완벽히 갖추었는지 확인하고, 불필요한 추가적인 기능에 현혹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기능이 완벽하게 갖추었다면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다.
하지만 구두쇠는 그저 저렴한 것만을 찾는다. 내가 원하는 기능을 다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가격이 ‘더’ 저렴하다면 그 제품을 구매한다. 싸게 샀다고 좋아하지만, 정작 자신의 필요는 충족시키지 못한다. 혹은 내게 필요한 기능만 제공하는 제품과 같은 가격의, 잡다한 기능이 더 많은 제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내가 원래 필요로 하는 기능은 미흡하고, 잡다한 기능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결국 돈은 돈대로 쓰고 내 필요는 채워지지 않는다.
늘 반복되는 나의 소비가 그렇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샀지만, 늘 나의 진짜 필요에서는 살짝 비껴간다. 저렴한 제품을 찾는 과정에서 나의 원래 필요는 사라지고, 저렴한 가격에만 눈길이 간다. 결국 기능적으로 내 필요를 100% 채우지 못하지만 가격만 저렴한 물건을 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불편함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다가 그 불편함이 심해지면 결국 다시 비싸지만 필요한 기능을 가진 그 물건을 구매한다. 돈은 두 배로 쓰고, 불편함은 더 오래 겪는다. 소비는 생활의 필요를 채우는 행위다. 가장 효율적인 소비는 결국 필요를 완벽하게 채우는 데에 있는데, 비효율적인 소비는 불편함도 키우고 지출도 키운다.
이사를 하면 일시적인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집의 구조가 달라지고 생활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필요한 물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 살다가 타운홈으로 이사 갔으니, 더욱이 필요한 것들도 많아진다. 온라인 쇼핑을 할 일도, 직접 마트를 방문할 일도 많아진다. 거기에 차에 엔진경고등까지 들어오면서 차량 수리까지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지출을 해야 하는 일들이 확 늘어버렸다.
내 안의 구두쇠가 발동한다. 이거 오늘 당장 필요한 거 아니잖아. 이건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아. 없어도 돼. 일단 필요의 범위를 좁히고, 불편의 범위도 좁힌다. 꼭 필요한 것도 소비를 지연하고 연기한다. 이건 다음에 왔을 때 사자. 다음 달에 사면될 것 같아. 지금 돈이 있는데 왜 다음 달에 사나. 어차피 살 거면 빨리 사서 생활의 불편함을 줄여야지. 결국 산다니까? 그럼 돈은 쓴다고. 그러면 차라리 빨리 사서 불편함을 없애버려야지.
내 의식 안에서 돈의 가치가 너무 높다. 돈이 제일 비싸다. 그러니까 돈을 물건으로 바꾸지 못한다. 돈은 행복조차 사지 못할 정도로 그 가치가 낮다. 그저 숫자다. 불필요한 것들을 사면서 낭비하지 말되, 필요는 채우고 불편함은 지우자. 그게 현명한 소비다. 이렇게 오늘도 나 자신을 세뇌한다. 구두쇠가 아닌 검소한 사람이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