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이주 609일 차)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고 얼마 안 돼서, 차에 엔진 경고등이 켜졌다. 크게 두 개의 문제가 있었는데, 하나는 온도 조절기의 문제였고 다른 한 문제는 흡기 계통의 문제였다. 흡기 계통 문제는 해당 정비소에서 해결이 어렵다 해서 우선적으로 온도 조절기부터 교체를 했다. 여전히 하나의 문제를 안고 있는 상태이니, 엔진 경고등은 켜진 상태. 그대로 계속 하루에 30km씩 운행을 할 수는 없겠다 싶어 바로 근처의 더 큰 정비소에 예약을 했다.
정비 예약을 이틀 앞둔 날 오후, 아이를 픽업하러 아이의 학교에 가려고 차 시동을 걸었는데, 계기판에서 엔진 경고등이 사라졌다! 들은 이야기로는 흡기 안쪽에 쌓인 카본 때문에 밸브가 뻑뻑해져서 경고등이 켜졌다 꺼졌다 할 수 있단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 정비를 받으면 되니까 일단 잡았던 예약은 취소했다. 만약 흡기 계통에 문제가 생기면 수천 불이 깨질 수 있던 문제였기 때문에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중고차를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정비가 용이한 차량인지 고려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는 현대 기아 자동차가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가 많고, 미국에서는 토요다나 혼다의 인기가 많은 편이다. 워낙 많이 팔린 자동차라서 시중에 부품도 많고, 정비 방법도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러 가지 이유(핑계)로 독일산 준중형 승용차를 구매했고, 이런 나의 결정은 몇 가지 장점과 단점을 경험하게 한다.
역시 단점은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사실이다. 연료도 프리미엄으로 넣어야 하고, 엔진오일 교체 비용도 거의 두 배가 든다. 기름은 우리 돈으로 리터당 150원 정도 차이, 엔진오일은 80,000원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정비 소요가 있어서 견적을 받을 때도 늘 듣는 소리가 수입차라서 부품이 비싸다, 수입차라서 공임이 더 많이 든다는 소리다. 이번에 온도 조절기를 교체하는 데에만 거의 7~80만 원이 들었다. 아주 돈 먹는 하마다. 차를 산 지 이제 겨우 2년이 안 됐는데도 벌써 수리/정비 비용만 2,000불 가까이 쓴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 흡기 매니폴드 이슈는 문제가 (스스로?) 해결이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아이가 학교 봄방학이어서 내내 집에 있었다.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아내, 아이를 데리고 함께 우리 가족이 즐겨 찾는 중고서점으로 향했다. 아이가 최근에 즐겨 읽고 있는 책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아내와 함께 차가 잘 정비가 된 것 같아 다행인 것 같다며 아내는 처제가 데이트하다가 겪었던 차고장 에피소드 이야기를 했고, 나는 과거 미국에서 겪었던 다른 차 고장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침 신호 대기 중이다가 우회전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핸들이 엄청 무거워졌다. 잘 돌아가지 않는다. 핸들 조작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어떻게 된 거지? 엔진계통에서 특별히 문제를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속 운전은 위험하겠다 싶어서 갓길에 차를 세웠다. 뭐가 문제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계기판에 배터리 충전 오류 경고등이 떴다. 빨간색. 자동차 경고등은 주황색과 빨간색이 있는데, 주황색은 운행은 가능하지만 조만간 정비받을 것, 빨간색은 당장 정비소로 향할 것이라는 의미의 경고등이다. 바로 정비소로 가야 한다.
일단 아내와 아이를 안심시키고, 비상등을 켜고 가던 길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집을 나선 지 불과 1~2분밖에 안 됐었기에 아내와 아이를 집에 내려주고 그 길로 바로 정비소로 향했다.
정비소의 리셉셔니스트 앨런은 날 반갑게 맞아줬다. 간단하게 지난 정비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려주고, (흡기 계통 문제로 인한 엔진 경고등은 저절로 꺼졌다는 점) 다른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며 문제를 설명했다. 앨런은 단박에 알았다는 듯, 차키를 들고 같이 내 차로 향했다. 그리고는 보닛을 열어 뭐가 문제인지 보여줬다. 차량 엔진에서 배터리를 충전하는 장치로 연결하는 벨트가 있는데 그 벨트가 끊어졌으며 배터리 충전이 안되니, 핸들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해 주는 파워핸들(미국에서는 파워스티어링휠) 기능이 정지되어 생긴 문제라고 알려줬다. 차를 맡기고 가면 내일 오전까지 고쳐주겠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처음 엔진 경고등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정비소를 처음 찾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큰 문제일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소통의 문제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빨리 정비소를 찾아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훨씬 안정감을 준다. 정비소에서 별일 아니라는 듯 툭툭 이야기해 주는 것이 굉장히 날 안심하게 한다.
다음날 오전에 정비소의 앨런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벨트가 끊어지면서 몇몇 부품을 파손하긴 해서 수리할 부분이 조금 더 있다.’ (뭐라고?) ‘그냥 쓸 수 있는 부분도 있기는 한데, 매우 긍정적이지는 않다, 안 고치는 옵션이 있는 부분은 고작 50불 정도의 비용 차이다’
라며 견적을 알려줬다. 앨런의 친절한 설명과 자신만 믿으라는 식의 태도는 신뢰감을 주며 나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지만, 그가 말하는 가격은 그렇지 못했다. 지난번 온도조절기를 수리할 때보다 더 비싼 금액이다.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수백 불 비용이 들어가는데, 몇십 불 아끼자고 일부를 수리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어서 모두 잘 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불과 한두 시간이 지나자 차량 수리가 모두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차량을 픽업하러 가자, 앨런은 지난번 흡기 카본 문제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간편하게 내부 청소를 할 수 있는 첨가제를 소개해 주었다. 차량을 운전해 보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여러 문제들은 모두 해결이 되었다.
차를 가지고 돌아온 나는 아내에게 다음에 차를 구매할 때는 반드시 정비가 용이하거나, 혹은 잘 고장이 나지 않는 차를 사겠다는 다짐을 했다. 조금 저렴하게 물건을 사려다 보면, 결국 나중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차량이 고장 나기 직전 나누고 있던 대화에서 아내는 지인의 전 남자친구가 차량 고장 상황에서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대처를 했었는지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지인의 남자친구는 엔진 브레이크를 잠근 채, 서울에서 속초까지 운전을 했는데, 고속도로에서 결국 엔진이 무리하면서 연기가 났고, 차를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그 남자는 보험이나 견인차 등 전문가를 통한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고 자기가 보닛을 열어 보며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아내와 지인은 그 모습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마치고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나에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이 상황을 잘못 대처하면 불과 1분 전에 난무하던 그 비난의 화살이 날 향한다! 이 상황에서 ‘괜찮을 거야, 괜찮아’ 이 딴 게 가장 위험하다. 가장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했던 건, 아내와 아이의 안전이었다. 앞선 대화가 나를 침착한 척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