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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Mar 14. 2023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편 2-19

*사실 반년 전의 일인데, 글을 쓰다 보니 제법 생생한 기분이 들어 현재형 시제로 적어봅니다. 물론 어제일은 아녀서 일부 기억이 윤색된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경험하고 본 것들 말고 기분과 마음 가짐은 아직도 제법 생생한 것 같아요. 제 다른 글들을 보셨다면 이미 미국에서 생활한 지 200일이 넘은 걸 아실 테니, 현재형 시제로 혼란을 겪으시진 않겠죠? ㅎㅎ


7월에서 8월로 넘어가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됐다. 밤새 잠을 거의 못 잤다. 한창 더울 때인데, 밖은 흐리고 비도 온다. 어제 아침, 2년 동안 살던 아파트를 완전히 비워주고, 온 가족이 짐 십수 개를 들고 인천공항 근처 영종도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했다. 콜밴을 타고 왔는데, 기사님이 짐이 너무 많다고 투덜투덜하신 것만 빼면 안전하게 도착했다. 월미도와 영종도를 오가는 옛 선착장 근처에 위치한 나름 깔끔한 호텔인데, 여름휴가 시즌이라 그런지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이제 진짜 팬데믹도 끝나가나 보다.


집을 빼고 호텔에 짐을 가득 가진 채 도착하자, 방랑객 같은 느낌에 기분이 이상하다. 미국에 도착해 집에 들어가기 전까진 거점 없는 나그네 신분이나 다름이 없다. 공중에 붕 떠 있는 기분이랄까. 복덩이 아내와 토끼(?) 같은 딸을 잘 데리고 미국 펜실베이니아까지 무사히 도착해야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미션이다.


잠도 안 오는데 뭘 할까 하다가 아마존과 이케아 앱을 통해 집에 필요한 필수 생활용품과 가구 등을 대거 결제했다. 어제까지 텅 빈 한국 집에서 생활했듯, 가서도 며칠간은 텅 빈 집에서 생활해야 할 수도 있다. 최대한 빨리 도착하는 제품들을 중심으로 해서 침대나 식탁, 의자와 같은 필수 가구와 온갖 생활용품들을 결제했다. 미국의 온라인 쇼핑은 한국의 그것보다는 배송이 워낙 느려서 며칠이나 바닥 생활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다 살 것들인데 빨리 결제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우리 비행 일정은 1일 오후 늦게 출발해서 과거에 살았던 샌프란시스코에 같은 날 점심 즈음(?)에 도착해 12시간 정도 있다가 같은 날 밤 12시에 다시 펜실베이니아로 떠나는 일정이다. 아마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면 2일 아침 7시쯤? 한국 시간으로는 2일 밤 8시, 9시 정도가 될 것이다. 장장 28시간 일정이다. 물론 그중 12시간은 일부러 친구도 만날 겸 확보한 경유지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순수하게 이동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경유시간이 거의 없는 일정으로 짤 걸 그랬다. (아쉽게도 내가 가는 도시는 직항이 없다)


아침도 대충 해결하고 늦은 오전에 호텔 체크아웃을 했다. 그리고 다시 호텔에서 공항까지의 일정을 위해 콜밴을 불렀다. 이번 기사님도 짐이 많다며 불평이시다. 아니 그럼 이 많은 짐을 가지고 어떻게 공항을 가나. 콜밴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데, 기사님마다 불평이시니, 난감하다.


호텔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 마지막 한국 풍경이 창 밖으로 흘러간다. 당분간은 보지 못할 한국의 풍경이다.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는 한국의 풍경인데, 호텔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의 풍경은 우리가 원래 보던 풍경과는 많이 다르고 생경하다) 괜히 울적해지는 마음이 든다. 시원섭섭하달까.


공항에 도착했다. 밴에서 짐을 내린다. 이민가방이 세 개, 중대형 캐리어가 세 개, 기내용 캐리어가 세 개, 각자 든 가방이 세 개다. 가족 구성원도 세 명이지만, 한 명은 이제 고작 초등 4학년 생, 아내도 그 아이를 챙겨야 하니, 이 짐의 대부분은 내가 챙겨야 한다. 공항 카트를 활용해 최대한 짐을 싣고 밀고 끌고 하면서 항공사 수하물 체크인을 했다. 괜히 걱정을 또 한다. 혹시 내 짐 중에서 무게가 넘어가는 짐이 있으면 어쩌지? 짐을 풀어헤쳐 무게를 줄여야 하나? 이미 집에서부터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체중계를 오르내리며 무게를 체크했건만, 또 불필요한 걱정을 한다. 비가 와서 습기 때문에 짐이 무거워졌으면 어쩌나 하는 이런 비과학적인 걱정을 하면서.


수하물 위탁을 하는 사이, 아내는 위장에 탈이 났다. 아내는 비행 공포가 있다. 병원에서 비행시간 동안 먹을 안정제와 수면제를 처방받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많이 되나 보다. 다행히 수하물 위탁은 탈없이 끝났다. 무게 말고도 혹시 배터리와 같은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이주하는 짐이다 보니, 아무래도 전자기기용 배터리가 많은데, 과거와 달리 휴대용 전자기기의 배터리와 관련한 수하물 규정이 강화되어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굉장히 많은 전자기기의 배터리 양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는 없었다. 그 사이 아내는 안정을 찾았다.


수하물 위탁이 끝났으니 조금은 마음과 몸이 홀가분해졌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이의 멀미약을 구매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출국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은 따로 없다. 따로 송별회도 하고 인사도 했지만, 출국은 단출했다.


워낙 일찍 출국장에 들어와서, 할 일이 많지 않다. 일단 워낙 일찍 들어온지라,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내는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아 점심을 스킵한다. 아이는 짜장면을 먹었는데, 난 뭘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는데, 아이도 바짝 긴장한 모습이 간간히 비친다. 그렇다. 워낙 큰 이동에 긴장하고 있었던 터라, 나만 걱정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내도 아이도 당연히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다. 무사히 미국까지 잘 갈 수 있을지.


게이트에 도착해 아내와 나의 한국 휴대폰 서비스를 가장 저렴한 서비스로 교체했다. 인증서나 은행 업무, 관공서 등 몇 가지 업무 때문에 한국 휴대폰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번호 유지와 인증 업무를 위해 몇 천 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뜰폰으로 심카드를 개통했다. 비행기를 타기 수십 분 전에 끝냈다.


심심해하는 아이를 위해 공항 게이트와 게이트 사이를 돌아다녀 본다. 한쪽 구석에 내가 다니던 회사의 캐릭터 존이 꾸며져 있다. 프로듀서 시절 해당 캐릭터 담당피디와 사업팀 직원이 공항/면세점 라이선싱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뭐, 이젠 남의 일이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됐다. 팬데믹이 마무리되는 상황에 가까워져서인지, 비행기는 만석이란다. 미국 가는 비행기까지 만석이라니. 아이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그중 두 번은 아이는 기억도 못할 거다.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저지로 이주할 때, 한 번은 한국으로 돌아올 때였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가 아이 돌 때였다. 거의 십 년 만에 다시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살아봤지만, 이번에 가는 곳은 또 새로운 곳이다.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반반이다. 꼭 미국이어서도 아니고, 한국을 떠나서도 아니고, 십 년 가까이 지지고 볶던 삶을 뒤집으려 도전하기에 설레고 두렵다. 도전하는 삶 앞에 실패도 있고 고통도 있겠지만, 또 큰 기쁨과 행복도 있으리라 믿으면서, 오늘부터 도전 1일 차다.


Photo by Matthew Smit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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