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편 - 에필로그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온 지도 벌써 8개월이 되어간다. 미국 이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미국에 오고 나서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은 대부분 주부남편아빠의 미국정착일기에 적었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해피 엔딩으로 그 이야기를 마칠 것 같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렇지 않다. 삶은 이어진다.
지난 몇 개월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기쁜 일도 속상한 일도, 그리고 마음을 어렵게 하는 일도 계속됐다. 지금은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도 같지만, 여전히 오늘도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들이 존재한다. 사십 넘어 박사 과정을 도전하는 아내의 여정도 장애물의 연속이고, 고작 사십에 직업을 은퇴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내게도 장애물 투성이다. 정작 딸아이는 잘 적응하고 살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처음에는 아이도 적응에 애를 먹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아내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1차 목표일 것이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더 다양한 연구 주제들을 접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학업에서 뒤처지지 않는 것도 애를 쓰고 있다. 다양한 방향의 목표를 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내 1차적인 목표는 무엇보다 아내의 대학원 생활과 아이의 학교 생활의 뒷바라지를 잘하는 것이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칠 시점에 맞춰 새로운 도전도 해 보려고 한다.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그리고 미국에 오면서 시작한 유튜브와 블로그, 브런치 등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수익화를 이루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미국에 오는 목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10년 전 미국을 떠날 때의 목표이기도 했다. 2013년 10월, 가정의 문제로 한국에 들어가면서 꼭 다시 미국으로 다시 나가리라 다짐했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기도 했고, 다시 나아졌을 때에는 나태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도전을 마음먹었고, 1년 반 만에 미국에 왔다. 7~8년간 어떻게 해도 뚫리지 않던 길이 그렇게 쉽게(어떻게 보면 어렵게) 열렸다.
앞으로 내 인생의 앞길도 그러할 것이다. 다양한 목표를 가질 것이고, 그 목표를 위해 매진하겠지. 하지만 그 길이 쉽게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사이 포기하는 계획과 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는 또 이룰 것이고, 그 뒤에도 또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 영화처럼 해피 엔딩이라 하더라도 그 인생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계속된다.
내가 이 글을 처음 쓸 때, 제목을 ‘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편’이라 지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함께 있었다. 첫째로는 그것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것이 부끄럽지 않았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는 그것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 편견이 있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내가 이루지 않고 무임승차한 듯한 이 미국행이 왠지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깨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내 따라 미국 가는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고 싶었다.
미국 유명 대학교의 박사 과정에 붙어 그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능력으로 된 것이다. 그런 아내가 자랑스럽고, 그 사람의 남편이 나인 것이 자랑스럽다. 아내 덕에 우리 가족은 미국에 오게 되었고, 또 다른 삶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편승해서 앞으로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멈추지 않고 도전하고 또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다. 미국은 아내 덕에 오게 되었지만, 무엇이 될지 모르는 다음 스테이지는 내 덕에 넘어가고 싶기도 하다.
대충 세어보니, 내 인생에서 이번의 미국행이 스테이지 6 정도 되는 것 같아 보인다. 나이가 아직 40인데, 여섯 번째 스테이지니, 내 인생의 스테이지가 몇 번까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또 다음 스테이지를 꿈꾸며 도전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Photo by Andrea De Santi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