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03 (sep 11th 2023)
이번 주는 죽음의 주다.
일단 아내의 스케줄이 장난이 아니다. 반년 가까이 준비해 오던 컨퍼런스에 제출할 논문의 마감이 있는 주다. 금주 목요일까지는 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댈러스에서 다른 컨퍼런스에 참석한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논문을 써야 할 판이다. 밤낮이 없이 논문 작성에 심혈을 기울이느라, 거의 정신을 놓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아이의 생일이 내일이다. 이젠 사춘기가 가까워 와서 그런지 영 심드렁하긴 하다. 표현이 그렇기만 할 수도 있다. 작던 크던 아이의 생일 파티도 해 주어야 한다. 그런 와중에 그 다음 날엔 아이 학교의 오픈 하우스가 있는 날이다. 지난 해엔 약간 학부모 설명회처럼 진행했는데, 올해는 아이와 학교에 함께 와서 교실도 둘러보고, 선생님도 잠깐 만나고 여러 활동이 있는 시설들을 보는 그런 오픈 하우스로 진행한다고 한다. 작년에도 아내 없이 혼자 와서 설명회를 들었지만, 올해는 아이와 함께 가서 선생님도 만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야 할텐데, 긴장이 많이 되었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왜 모든 일은 한꺼번에 오는가. 이것들만으로도 정말 정신이 없었을 거다. 그래도 저 수많은 일들이 다 처리되고 나면 아내는 학교에서 성과를 내는 한 싸이클을 마칠 수 있다. 아이의 생일과 학교의 오픈 하우스는 학부모로서 학기 초에 지나가야 할 가장 큰 관문 중에 하나니까 아이의 5학년 생활의 큰 산을 하나 넘는 거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균열이 생겼다. 아내는 지난 주부터 약간의 후두 통증과 함께 기침을 조금씩 했다. 하지만 특별히 열이 나지는 않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싸했는지 갑자기 작년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코비드-19 검사 키트로 자가 진단을 했고, 코비드 양성 반응이 나왔다.
다시 코비드 감염이었다!
작년 봄 미국행을 결정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가족이 코비드에 감염됐다. 딸아이가 고열로 고생을 하면서 시작한 투병은 하루 이틀 지나 내가 감염됐고, 일주일을 버티던 아내도 함께 감염되고 말았었다. 당시 오미크론 유행으로 전 국민의 1/3이 감염되던 시기라 주위에 코비드 감염이 워낙 많기는 했었기에 시국에 비해 큰 두려움이 있진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하루 이틀 정도의 고열만 겪은 뒤 잘 회복했고, 나와 아내만 극심한 인후통을 겪었었다.
그때로부터 거의 1년 4~5개월이 지났고, 그 사이 정말 거짓말처럼 코비드 팬데믹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 한국은 아직도 마스크를 많이 쓰고 다니는 것 같아 보이던데, 미국에선 정말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아무도 코비드와 팬데믹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부 약국과 병원에만 팬데믹 시절 붙여 놓았던 마스크 권장 포스터만이 그런 시절이 존재했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코비드라니. 약간 혼란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난번 감염 때는 한국이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에서 걸렸다. 한국에서는 확진 판정을 질병 관리청에서 받고 의무 격리 기간도 있었는데, 여기는 그렇게 하나? 뭐 하나 행동지침이나 이런 것이 없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단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는 느낌이다. 아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아내는 키트로 검사해서 양성이 나오자마자 CVS에 있는 케어센터를 예약해서 방문했다. 그런데 심드렁한 케어센터 의사의 모습 때문에 당황했다. 키트 검사해서 양성 나왔는데 왜 왔냐는 식이다. 센터에서 다시 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거니와, 받더라도 치료약을 받거나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해열제 먹는게 다라는 것.
사람들도 많이 무관심한 듯했다. 아내는 아무래도 개강 후 학교에서 수업과 조모임 간에 다른 사람들에게서 감염된 것 같았는데, 다들 너무 대수롭지 않아 했다. 아내가 화상 미팅을 통해 코비드 감염 사실을 알렸더니 한 학생이 자신은 지난주에 걸렸다가 나았다고 해맑게 이야기하더라는 것. 그 친구 지난 주에 마스크도 안쓰고 수업, 조별모임 나와서 크게 떠들던 친구라는데, 너 때문에 걸렸다 이놈아!
지난번 감염때 보다 더 고통스럽진 않았지만, 어쨌든 여러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일단 수요일 가기로 했던 댈러스 컨퍼런스는 취소했다. 장시간 비행과 3일에 걸친 컨퍼런스 일정이 무리가 될 것은 자명했기 때문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안전과 건강이 중요하니까 할 수 없다.
하지만 논문은 꼭 마치고 싶어했다. 학계에서 가장 큰 컨퍼런스기도 하고, 아무래도 첫 논문이다보니 평가를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건강상으로 체력적으로 무리였다. 결국 아내의 담당교수님은 아내에게 조금 더 보완해서 다음 컨퍼런스에 제출할 것을 권유했고,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논문 마무리와 제출을 포기했다.
학기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 가족이 긴장한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지난번엔 한 명의 감염이 온 가족으로 번졌기에 더 조심했다. 접촉을 최소화하고 마스크도 꼭꼭 썼다. 식사도 꼬박꼬박 챙겨서 방에 넣어줬다. 나름 철저하게 잘 했는지, 아내 외에는 아무도 감염되지 않았다.
들어보니 최근 코비드 감염이 다시 유행한다고 한다. 미국 정부에서도 코비드 진단 키트를 무료로 제공한다고 한다. 독감 예방 주사를 맞을 때 새로 개발된 코비드 예방 주사도 접종을 시작한다고 한다. 십여년 전 신종플루 유행 때처럼 점차 일반 플루처럼 대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미국에 이주하고 난 뒤에 감염병을 걸리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미국에서 코비드 유행때 아시안에 대한 차별이 극심하다는 뉴스를 많이 봐서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다행히 그런 부분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두주가 채 되지 않아 아내는 잘 회복했다. 감사한 일이다.
환절기, 건강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Photo by Daniel Schlud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