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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나가기 싫어하는 딸에게

2025년 12월 첫째 주

by jcobwhy

12월 2일

반려견 디디가 아파서 급히 동물병원에 갔어. 지난 일요일부터 구토를 하고 설사를 했지. 오늘은 설사에서 혈변이 살짝 비쳐서 급히 예약을 하고 동물병원으로 향했어. 넌 마침 폭설로 학교가 휴교라 집에 있었지. 그래서 아빠와 함께 디디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어.


아빠는 아직 미국의 모든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의사와의 대화 등에 걱정이 많은 편이야. 서로 소통이 잘 되지 않으면, 잘못된 치료를 받을 수도 있고, 미국에선 한두 번의 잘못된 대답 때문에 큰 금액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거든. 그래서 수의사를 방문할 때도 걱정이 많은데, 그래도 늘 주체적으로 피하지 않고 소통하되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전하게 이해하고 소통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편이야.


그래도 네게 같이 들어달라고 부탁하기는 했어. 실수를 줄이려면 그게 더 효과적일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고 말았어. 받은 약 중에서 제법 중요한 항생제가 빠진 거지. 약을 네 개를 받았는데, 그중에 하나는 당연히 항생제로 받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정기적으로 받는 구충제가 끼여 있어서 착각한 거야. 약 이름이나 이런 건 워낙 복잡하니까 놓쳤어. 사실 우리가 잘못한 건 없어. 병원 쪽 실수지. 우리 둘 다 들었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해. 그래도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가 힘드니까 우리가 한 번 더 챙기고 해야지.


이번에 디디 병원 가고 이런 일을 지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이제 네가 틴에이저가 되니까, 너도 한 사람 몫을 하는구나. 전에 어렸을 적 너는 디디만큼 챙겨야 하는 존재였는데. 이젠 어엿하게 아빠 도와서 약도 챙기고 하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생각이 들었지. 잘 자라고 있단 생각이 들어서 늘 고맙고, 사랑해.


12월 4일

추운 겨울이 시작되고 눈도 오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온다고 하네. 특히 오늘 저녁 이후로는 많이 춥다고 해.


한국에서야 아파트에 살았으니 중앙난방이 뜨끈뜨끈해서 겨울에도 생활하는 데에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지. 그래도 작년에 이사 오고 나서는 그나마 따뜻한 밤을 보내고 있어. 비록 네 방은 따뜻한 공기가 잘 나오지 않아서 엄마아빠 방에서 잠을 자고는 있지만, 지난번 살던 아파트보단 훨씬 따뜻하잖아. 지난번 아파트에선 크리스마스 연휴에 보일러 고장 나서 벌벌 떨었던 것 기억나니? 꼬박 24시간을 추운 안방에서 조그만 라디에이터 하나랑 전기장판으로 미국의 첫겨울이 떠오르네. 참 별일이 다 있었다. 그렇지?


어른이 되면 이제 스스로 집을 보고 계약을 해야 할 거야. 꼼꼼하게 시설들을 확인하고 계약을 해야 할 텐데,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단열이나 수도, 온수, 보일러 같은 것도 무척 중요해. 특히 단열이 매우 중요해. 단열이 잘되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지. 창호가 두껍고 잘 관리가 되어있는지 확인하고 특히 흰색으로 꼼꼼하게 시공된 이중창 설치가 된 집으로 고르렴.


올 겨울도 우리 가족 따뜻하게 보내자.


12월 6일

오늘은 네가 무척 바쁜 날이었어. 아침엔 엄마와 함께 지역에서 열리는 만화 컨벤션에 다녀왔고, 오후에선 학교에서 진행하는 배구 세션에 다녀왔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마도 네다섯 살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때부터 넌 토요일에 무얼 하는 걸 참 싫어했었어. 평일엔 어린이집에 가고 일요일엔 교회에 가는데, 왜 토요일까지 문화센터에 가야 하냐며 말이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넌 참 주관이 뚜렷했던 것 같아.


이번에 가는 컨벤션은 네가 무척이나 고대하던 행사였어. 부스를 어떻게 여는지 문의를 하고 싶다고 할 정도였지. 하지만 배구 연습 세션은 정확하게 반대였어. 아빠는 미국에 사는 만큼 네가 구기 팀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욕심이 있지만, 너는 시작하기 전까지는 스포츠엔 비교적 흥미를 가지지 않았거든. 이번엔 네가 하이큐와 같은 배구 만화를 보기도 하고, 김연경이 나오는 예능을 보기도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오늘 상황은 매우 안 좋았어. 아침에 컨벤션에서 오랫동안 걷고 돌아다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네가 많이 지쳤어. 그리고는 배구 연습 세션까지 가려니 얼마나 힘들겠어? 역시나 가기 싫은 티를 많이 내더라고. 하지만 첫날 안 가고 나면 더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너를 잘 알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너를 데리고 세션에 갔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널 데리러 갔을 때 엄청 눈치를 봤는데, 다행히 걱정과는 달리 잘하고 온 것 같아. 연습할 수 있도록 배구공을 사달라거나, 팀에 조인하는 절차가 언제 있었냐는 등의 질문을 하는 걸로 봐서는 배구하는 거에 꽤나 흥미를 가지게 된 것 같았어. 아빠 입장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지.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너의 삶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에 아빠는 너무 기뻐. 이런 경험의 축적이 네 인생의 한계를 확장할 수 있다고 믿거든. 조금 싫어도 잘 따라와 주는 우리 딸,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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