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
주말 저녁, 고단했던 한 주가 겨우 끝나는가 싶었다. 가족과 함께 관광지에서 돌아오는 길, 피로에 지쳐 뒤좌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아내를 보며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이는 순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평온했던 주말의 정적을 깨는 진동 소리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화면에 뜬 이름은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맺은 관공서의 감독관이었다.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CCTV가 갑자기 먹통이 됐어요..."
그의 목소리는 다급하고 긴장돼 있었다. 그곳은 365일 24시간, 대한민국 해상 전역을 관제하는 중요한 국가 관제센터였다. 바다를 오가는 수많은 선박의 안전을 지키고, 잠재적인 위협을 감시하는 핵심 시설이었다. 그 중요성만큼이나 장애 발생 시의 책임감과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장애가 발생하면 근무 중인 관제사가 감독관에게 알리고, 감독관은 다시 우리 같은 용역업체에 연락을 취한다. 연락을 받은 나는 24시간 이내에 현장에 출동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책임자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미세한 떨림에 신경이 쓰였다. 그는 최근에 부임한 새 담당자였다. 마산에서 근무하다 부산으로 옮긴 지 몇 달 되지 않아 업무에 익숙지 않았을 것이다. 낯선 환경, 중요한 임무,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시스템 장애까지, 그가 느꼈을 부담감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운 좋게도 나는 그 관제센터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줘."
나는 아내와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히 차에서 내렸다. 미안함에 뒤돌아보는 아내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내고는 곧장 센터로 향했다. '아마 간단한 문제일 거야.' 가볍게 생각하며 장비실에 들어가 장애 구역을 원격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어떤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아뿔싸, 이건 장비 문제가 아니군.'
간단한 리셋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현장을 직접 확인해야 하는 상황.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아침 일찍 출동하겠다고 알렸다. 내일 군부대 내 장비가 설치된 현장으로 가려면 번거로운 출입 절차를 거쳐야 했고, 주말 저녁인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한숨이 느껴졌다. 아마도 전화 한 통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했을 테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해결책 없는 주말 밤을 보내야 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장비가 완전히 고장 난 건 아닐까?', '복구하는 데 며칠이 걸리면 어쩌지?' 온갖 부정적인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주말을 망쳤다는 생각, 다음 주 업무가 꼬일 것이라는 불안감에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뒤척이면서도 혹시라도 또 다른 문제가 터질까 봐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렇게 불안과 걱정이 뒤섞인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원래 예정된 업무를 미루고 출동 준비를 하던 찰나였다.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과장님, 장비가 갑자기 정상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통신사 회선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안 오셔도 될 것 같아요.
문자를 보는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불안감과 걱정들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다행이었다. 장비 자체의 고장이 아니라 외부 네트워크 회선의 일시적인 장애였던 것이다.
어젯밤 그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지 상상했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부담감, 혹시라도 큰 사고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아무 일도 아니었다. 우리가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 외부 요인이 자연스럽게 복구된 해프닝이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동료의 말이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9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아요."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걱정은 현실보다 앞서 달리는 불안의 그림자일 뿐이다.
걱정에 짓눌리면 시야가 좁아지고, 사소한 문제도 더 복잡하게 느껴진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는 감정적인 동요에 휩싸이기 쉽다. 반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해결의 실마리는 훨씬 쉽게 보인다.
나 역시 그날 밤, 문제를 과장하지 않았다면 다음 날 아침, 출동 준비를 하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 문제 때문에 잠을 설쳤다면, 그날 아침은 고단하고 우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스스로를 다잡고 최악의 상황보다는 최선의 해결책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결국 문제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다. 우리가 세상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우리 반응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늦은 밤, 갑자기 '덜컹'하는 소리에 도둑이라도 든 줄 알고 심장이 철렁했지만, 알고 보니 거센 바람에 창문이 흔들렸던 경험.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혹시라도 지각할까 노심초사하며 일찍 나섰는데, 예상치 못하게 길이 뻥 뚫려 시간이 남아 여유롭게 마음을 정리했던 순간. 이처럼 우리 삶은 수많은 걱정과 실제 현실이 엇갈리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몇 넌 전, 친한 친구가 겪었던 일도 떠오른다. 그는 큰 프로젝트의 마감을 앞두고 있었다. 팀원 중 한 명이 갑작스럽게 퇴사하는 바람에 모든 업무가 그에게 몰렸고, 그는 밤낮없이 야근을 이어갔다. 그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대로는 기한을 맞출 수 없을 거야', '프로젝트가 망하면 내 경력도 끝장이야'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상사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오히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팀워크와 문제 해결 능력까지 인정받았다.
결국, 문제는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존재한다.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태도가 결국 우리 인생의 시나리오를 결정짓는 것이다. 걱정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 에너지를 갉아먹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걱정 대신 믿음을 선택하자. 우리는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다. 늘 최고의 시나리오를 상상하자. 때로는 우여곡절이 있을지언정, 결국 우리는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 위에 서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