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불태우지 않아도 괜찮아

인생은 시즌 게임이다

by 기록습관쟁이

"오늘도 최선을 다해야지!"


이 말은 얼마나 멋지고 빛나는가. 하지만 이 말은 동시에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돌덩이이기도 하다. 마치 매일매일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온몸을 불태워야만 한다고 속삭인다. 과연 그게 매일 가능할까? 매일이 눈부신 최선의 날일 수 있을까?


야구를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의문이 들곤 한다. "어, 저 투수 왜 갑자기 교체했지? 아직 던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오늘은 이기려는 의지가 없어 보이지? 벌써부터 지친 것 같잖아." 팽팽해야 할 경기에서 갑자기 힘을 빼는 듯한 모습. 그때마다 마치 우리 인생이 그 안에 숨어 있는 것 같다.


프로야구팀은 정규시즌 동안 무려 144경기를 치른다. 3월 말, 풋풋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부터 낙엽이 지고 쌀쌀한 가을 공기가 느껴지는 10월 초까지. 이 기나긴 여정 속에서 하루하루가 전쟁이고, 한 시즌이 곧 인생이다. 모든 경기에서 모든 힘을 쏟아붓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단거리 선수처럼 매일 폭발적인 스피드를 낼 수도 없고, 마라톤 선수처럼 지치지 않는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진짜 프로는 언제 힘을 줘야 하고,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춤을 추듯 경기 흐름을 읽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것이다.


경기를 보다 보면, 이따금 이런 장면이 나온다. 초반부터 점수를 대량 실점하고, 선수들의 표정은 이미 지쳐 있다. 감독은 에이스 투수 대신 고참 불펜을 마운드에 올린다. 팬들은 소리친다. "감독님, 오늘 경기 포기하신 건가요?"


하지만 그건 결코 포기가 아니다. 눈앞 한 경기를 잃더라도 시즌 전체를 완주하기 위한 전략이다. 감독의 본질은 '당장의 승리'보다 '시즌의 완주', 나아가 '시즌 우승'을 보는 것이다. 오늘 하나를 내어주고, 내일 더 큰 승리를 가져오는 계산. 이는 냉정하고도 위대한 지혜다. (물론 계획대로 흐름이 이어지진 않더라. 안타깝지만)


한화 이글스의 과거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훈련과 과감한 선수 운용으로 유명했지만, 동시에 투수 혹사 논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젊은 선수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에이스를 벤치에 앉히기도 했지만, 승리를 위해 불펜 투수들을 연투시키는 등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팬들은 당장의 승리를 향한 집념에 환호했지만, 동시에 선수들의 미래를 걱정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의 철학은 "매 경기 다 이기려 하지 마라. 중요한 경기에서 이기면 된다."는 말에 담겨 있었지만, 그 방식을 두고는 여전히 많은 논쟁이 존재한다.


"지금 이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건 프로답지 않다!"


물론, 그 선택은 팬들 분노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명장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당장의 비난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결과는 시간이 말해준다. 야구든 인생이든, 때로는 한 발 물러서는 것이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는 가장 현명한 길이 된다. 넘어진 순간이 있어도 괜찮다. 그건 결승선을 향해 가는 길의 한 순간일 뿐이니까.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매일을 '불태우며' 살면, 언젠가는 타버린 재만 남는다. 오늘만 산다는 멘탈로는 내일을 버텨낼 힘조차 남지 않는다. 하루를 빛내기 위해, 인생 전체의 남은 시즌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진짜 중요한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 위해, 오늘은 일부러 아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긴 시즌을 완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볼까.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는 초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익 없는 회사라는 오명을 안고 살았다. 투자자들은 하루빨리 이윤을 내라며 조바심을 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고객을 위한 장기 가치를 만든다'는 그의 뚝심은 눈앞의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시즌 전체를 바라본 명장의 시선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마존은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거인이 되었다. 빠른 승리보다, 느린 완성이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극심한 가난 속에서, 그녀는 낡은 카페에 앉아 자신의 꿈을 썼다. 단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하는 데만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을 쏟았고, 그 사이 수많은 거절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 긴 무명 시절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 끈기가 결국 전 세계를 사로잡는 마법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당장의 성공에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시즌을 묵묵히 이어갔던 진정한 승리자다.


세계 최고의 마라톤 선수들도 중요한 경기 전에는 작은 대회를 쉬고, 훈련량을 전략적으로 조절한다. 결승선에서 최고의 기량을 펼치기 위해, 눈앞의 기록 욕심을 버리고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항상 최선을 다하자"는 말은 아름답지만, 진짜 프로는 때론 최선을 미뤄둘 줄 아는 지혜를 가졌다.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긴 여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오늘, 당신은 당신 인생의 감독이다. 하루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인가, 아니면 시즌의 우승을 위해 체력을 분산하고 전략적으로 힘을 아낄 것인가? 정답은 당신 마음속에 있다.


실패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라. 지금 기운이 빠졌다고 자책하지 마라. 시즌은 아직 한참 남았고, 당신이라는 명장은 아직 마지막 카드를 남겨두고 있으니까.


오늘을 불태우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면 지금은 힘을 비축해야 할 가장 중요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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