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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으로 60억' 사장님의 자랑, 직원의 지옥

당신은 톱니바퀴입니까

by 기록습관쟁이

한여름의 열기가 스며드는 오후, 20명 직원이 웅성거리는 사무실 너머로 박 사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우리 회사? 최소 인력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데에 집중합니다. 3분기까지 60억 매출을 달성했으니, 이만하면 성공 신화 아니겠습니까?"

옆 회사 대표와의 대화에서 나온 그의 말은 마치 성공한 경영자의 자랑처럼 들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박 사장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와,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옆 회사 대표의 감탄 섞인 물음에 박 사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희는 9명입니다. 인건비 최소화가 곧 더 많은 이윤이죠."


이 대화는 순식간에 회사의 모든 직원들에게 퍼져나갔다. 그 소식을 들은 이들은 모두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신입사원 김 대리는 "우리 사장님! 대단하네요?"라며 박수를 쳤고, 경리팀 정 과장은 "그래, 이래서 우리가 월급을 제때 꼬박꼬박 받는 거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차장만은 달랐다. 그의 얼굴에는 감탄 대신 깊은 피로와 체념이 서려 있었다.

'최소 인력으로 최대 효율... 그게 결국 우리를 쥐어짜는 거였군.'

그의 머릿속에서 그 말이 맴돌았다. 마치 자신이 거대한 기계의 한낱 톱니바퀴가 되어, 멈추지 않고 돌아야 한다는 끔찍한 운명을 확인한 것 같았다.


톱니바퀴의 삶, 이 차장의 하루

이 차장의 하루는 늘 새벽 공기와 함께 시작됐다. 알람은 6시에 맞춰져 있었지만, 이미 몸이 굳어진 탓에 5시 반이면 눈이 떠지곤 했다. 사장님은 7시 50분에 출근했다. 8시 반이 공식 출근 시간이었지만, 사장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안에 사장님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본 후, 직원들은 암묵적으로 8시 정각까지 출근하는 게 규칙이 되었다. 늦게 출근한 직원은 싸늘한 눈빛을 감당해야 했다. 이 차장은 7시 50분에서 8시 사이에 항상 출근했다. 10분이라도 늦으면 어김없이 사장님에게 눈으로 '왜 이제야 오나?'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8시 정각, 2층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사장실에서 "박 차장, 이리로 좀 들어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출근 30분 전, 잠시나마 즐기려 했던 여유는 산산조각 났다. 사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은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이거 오늘 오후까지 보고서 정리해서 올려줘. 그리고 이건 내일까지, 저건 모레까지. 알지?"

이 차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끝없는 업무 리스트로 가득 차 있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 회사의 연봉은 동종업계 평균보다 약간 높은 편이었다. 바로 그 점이 직원들이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 정도 연봉이면...' 하는 안일한 생각은 매일 쏟아지는 업무량에 묻히기 십상이었다. 더욱이 연봉협상은 없었다. 사장님이 정한 초봉 그대로 몇 년을 버텨야 했다. 해마다 오르는 물가와 월급은 무관했다. 직원들이 불만을 가지기 시작할 때쯤이면, 사장님은 소문을 듣고 적절한 시기에 작은 보너스나 인센티브를 올려주곤 했다.

"이 차장, 고생이 많아. 이번에 자네 프로젝트 성공했으니까, 특별 보너스 좀 넣어줬네."

사장님의 이 한마디에 직원들의 얼굴에는 잠시나마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다시 지옥 같은 업무에 시달려야 했다.


연말에는 성과급이 지급되긴 했지만, 정해진 액수는 없었다. 오너가 그 해의 기분과 실적을 고려해 그때그때 금액을 정했다. 이는 마치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직원들은 혹시라도 눈 밖에 날까 봐 입 밖으로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하지만 업무량은 급여에 비해 훨씬 많았고, 피로도와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높은 이직률은 이 회사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특히 신입사원들은 높은 업무 강도를 버텨내지 못했다. 사장님은 신입에게도 1대 1로 업무 분장을 지시하고 결과를 보고받았다. 신입사원은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사장님과 직접 소통하며 막대한 부담을 느껴야 했다. 사장님은 "그래야 빨리 배우지"라고 했지만, 신입들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줄줄이 퇴사했다. 9명이던 인력은 몇 달 사이 7명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엇나가는 믿음, 잃어가는 삶

이 차장의 팀원들은 그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이 차장님, 저희도 좀 쉬어야죠. 주말에라도 쉬게 해 주세요."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일하다가 쓰러질 것 같아요."

그들 말 한마디 한마디는 이 차장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그 역시 그들의 고통을 이해했기에 더욱 괴로웠다. 그는 사장님께 여러 번 건의했다.

"사장님, 직원 좀 더 뽑아주시면 안 됩니까? 시간적으로 너무 쫓기며 일합니다."

그때마다 사장님은 "자네는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우린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고 대답했다. 그의 눈에선 오직 '효율성'과 '이윤'만 보였다.


한 팀원이 결국 사표를 냈다.

"이 차장님, 죄송합니다. 저는 더는 못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이 차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팀원의 눈에는 '힘들다'는 감정 외에 '우린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절망감이 서려 있었다. 그의 퇴사 후, 남은 8명의 몫은 더욱 커졌다. 사장님은 "하나 빠졌다고 회사가 멈출 순 없지. 사람은 구해볼 테니 나머지 인원으로 더 효율적으로 움직여봐."라고 말했다.


60억 매출의 그림자

이 차장은 창밖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60억 매출. 그 숫자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너무나 길고 어두웠다. 사장님은 그 숫자를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숫자 뒤에는 9명의 영혼이 갈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최소 인력'이라는 이름 아래 무한하나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들 삶은 이미 회사의 이윤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 차장은 문득 오래전 사장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직원이 몇 명이신데요?"

"저희는 20명 정도 됩니다."

"저희는 9명입니다."

당시에는 이 대화가 그저 멋진 성공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깨달았다. 20명의 삶은 20명분의 몫을 나누어 가지며 살아가는 삶이다. 하지만 9명의 삶은 20명이 해야 할 몫을 9명이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이었다.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는 회사의 효율을 위해 희생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끝없는 보고서와 서류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는 오늘 밤도 야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내일, 또다시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 차장, 이리로 좀 들어와." 이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60억 매출의 영광 뒤에는 이토록 씁쓸한 삶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의 삶은 60억 매출의 기계에 갈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일, 또다시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와,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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