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다 가르쳐주지 않는 말의 기술
"말을 잘하고 싶으면 책을 읽어라."
오래된 조언이다. 그러나 책을 아무리 읽어도 막상 입을 열면 말이 막히는 사람, 반대로 책 한 줄 안 읽어도 청산유수처럼 말하는 사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말을 잘하게 만드는 건 독서가 아니라 삶의 경험 아닐까?
책이 만들어주는 '생각의 엔진'
독서는 분명 말을 잘하기 위한 든든한 기반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어휘력이 풍부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풀어내는 힘이 있다. 책은 단어의 바다이자, 사고의 지도다. 그래서 뛰어난 언변가들 중 다수가 독서광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빌 게이츠는 1년에 약 50권의 책을 읽는다. 그는 매년 두 차례 'Think Week'를 가지며 세상과 단절한 채 독서에 몰두하며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그는 한 해의 전략과 삶의 방향을 정리한다. 책 속에서 얻은 지식과 통찰은 그의 사고를 깊게 하고, 이를 언어로 풀어낼 때 설득력 있는 말을 가능하게 한다.
많은 작가, 경영자, 연설가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독서는 생각 근육을 키워준다." 이 말처럼 독서는 언변의 기초 체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지식 폭이 넓어질수록 말의 뼈대가 단단해지고, 논리의 깊이가 쌓일수록 언어는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다.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사고의 방향을 정비하는 엔진이고, 대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연료다.
그러나 말은 결국 '현장 예술'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책 한 권 읽지 않아도 말을 놀랍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현장에서 많이 봤다. 십 수년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엔, 책 대신 경험으로 배운 언변가들이 많았다. 그들은 책상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대화의 기술을 익혔다. 프로젝트 현장에서 고객을 설득하고, 예기치 못한 문제를 설명하며,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그들 말은 단련되었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 현장 경험이 만들어낸 통찰
책에서 읽은 지식은 머리에 남지만, 현장에서 부딪힌 경험은 몸에 새겨진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며 쌓인 노련함은 말에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들 언어에는 실전에서 길러진 현실감이 묻어난다.
둘째, 뛰어난 공감 능력과 말 센스
말을 잘한다는 건 유려한 어휘 구사가 아니라, 상대 마음을 읽는 일이다. 상대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감지하는 능력이 바로 언변의 감각이다. 말 센스는 이론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다.
셋째, 끊임없는 실전 훈련과 순발력
말을 많이 하는 환경에 몸담으면 반응 속도가 달라진다. 발표, 보고, 회의, 협상 같은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대처해야 하다 보니 몸이 먼저 반응하고, 손짓과 표정, 목소리 톤 같은 비언어적 요소까지 자연스럽게 조율된다. 이건 책이 알려줄 수 없는 감각이다.
이렇듯 현장에서 갈고닦은 말은 이론이 아닌 본능이다. 그들의 대화는 계산되지 않았지만 설득력 있고, 준비되지 않았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
말은 결국 '현장 예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이유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책을 권하고 싶다. 경험이 아무리 풍부해도,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험은 깊이를 만들어주지만, 넓이를 만들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책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세계로 나를 데려간다. 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의 시선과 사고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언어의 결을 다듬을 수 있다. 직접 겪지 않아도 간접 경험으로 삶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말을 잘한다는 건 단순히 말을 예쁘게 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설득해야 하고, 때로는 위로해야 한다. 지식이 쌓여야 논리가 생기고, 감정이 쌓여야 공감이 생긴다. 이 두 가지는 결코 대립되지 않는다. 책이 사고의 깊이를 키운다면, 경험은 언어의 온도를 만든다. 진정한 언변은 그 두 가지가 만나야 완성된다.
결국 말은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책으로만 배운 말은 정교하지만 건조하고, 경험으로만 배운 말은 따뜻하지만 때론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둘을 모두 붙잡으려 한다.
하루의 끝, 책을 펼쳐 사고의 근육을 단련하고, 다음 날 현장에서 부딪히며 감각의 근육을 키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반복하다 보면, 말은 조금씩 달라진다. 지식이 스며들고, 경험이 묻어나는 언어가 된다.
결국 말은, 나라는 사람의 총합이다.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봤는지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말이 자동으로 늘지는 않지만, 책을 읽지 않는다면 말에 깊이가 사라진다.
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그 말이 당신의 삶을 닮아 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부딪치며 다듬으면 된다.
책으로 사고를 넓히고, 경험으로 언어를 완성하자
그 둘이 만나면, 당신의 말은 지식의 힘과 사람의 온기를 동시게 품게 될 것이다. 말은 지식을 닮고, 지식은 결국 사람을 닮는다. 그게 내가 독서를 계속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