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먹고살 순 없잖아?
세상은 크게 둘로 나뉜다. 짜장면과 짬뽕, 부먹과 찍먹, 그리고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좀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기준도 이거다. 동물은 철저히 현실주의자다. 그들에게 내일의 자아실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오늘의 배고픔을 해결할 사냥감이 앞에 있는지, 내 엉덩이를 물어뜯을 포식자가 뒤에 있는지가 생존의 전부다. 본능에 충실한 것, 그것이 동물의 현실주의다.
반면 인간은 참 피곤한 존재다. 배가 불러도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를 고민한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와중에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저기 가보고 싶다"는 망상을 한다. 우리는 이것을 꿈이라 부르고, 이런 인간들을 이상주의자라 칭한다.
결국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선 인간이나 동물이나 매한가지다. 다만 인간은 그 몸부림의 층위가 조금 더 복잡할 뿐이다. 동물이 배불리 먹고 싶은 생존 욕구에 집착할 때, 인간은 '더 잘 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멋져 보이고 싶은'욕구에 집착한다. 우리가 매일 SNS에 점심으로 먹은 파스타 사진을 올리고, 누군가의 '좋아요'를 기다리며 도파민을 충전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건 현대판 생존 신고이자, 내가 단순한 짐승이 아닌 '의미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려는 처절한 이상주의적 발버둥이다.
현실주의자
인간 세상도 다시 둘로 나뉜다. 내 발밑의 지뢰를 찾는 현실주의자와 저 멀리 무지개를 쫓는 이상주의자. 이 둘 사이의 간극은 안드로메다와 지구만큼이나 멀다.
먼저 현실주의자들을 보자. 이들은 세상의 엔진이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빨리 깨달은 현자들이다. 이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제일 싫어한다.
"그래서 그게 돈이 돼?"
"데이터 가져와 봐."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거야?"
이들의 냉소는 때로 차갑지만, 사실 세상을 안전하게 지탱하는 건 이들이다. 이상주의자가 "하늘을 날고 싶어!"라고 외칠 때, "그러다 추락하면 누가 책임질 건데? 일단 낙하산 설계도부터 가져와."라고 태클을 거는 사람이 바로 현실주의자다. 덕분에 우리는 추락하지 않고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이상주의자
하지만, 여기서 질문 하나. 만약 세상에 현실주의자만 가득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여전히 동굴 속에서 불을 피우며 "그래, 밖은 위험해. 동굴 안이 제일 안전해. 이게 데이터야."라며 만족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주의자는 주어진 지도 안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내지만, 지도를 새로 그리는 것은 언제나 이상주의자들의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상주의자를 보며 '철부지' 혹은 '몽상가'라 비웃는다. 하지만 역사는 그 몽상가들의 '미친 짓'이 현실이 된 기록들의 집합이다. 라이트 형제가 자전거포에서 날갯짓을 연구할 때, 사람들은 "인간은 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근거를 수천 가지나 댈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전화기에서 버튼을 다 없애자"라고 했을 때, 엔지니어들은 현실적인 공정의 한계를 토로했다.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을 몰라서 무모한 게 아니다. 현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게 아니라, 믿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
간극을 메우는 법
그렇다면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중 누가 옳은가? 답은 시시하게도 "둘 다 맞다"이다.
현실 없는 이상은 '망상'이고, 이상 없는 현실은 '정체'다. 이상주의자만 있다면 세상은 사방이 공사 중인 미완성 건물이 될 것이고, 현실주의자만 있다면 세상은 낡고 견고한 요새 속에 갇혀 서서히 썩어갈 것이다.
내가 오늘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명확하다. 지금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내 주제에 무슨 꿈이야"라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 당신에게, 아주 조금의 '이상주의적 엔진'을 선물하고 싶다.
지금 당장 월급봉투가 작고, 업무가 지루하며, SNS 속 타인의 화려한 삶에 비해 내 현실이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당신이 지금 느끼는 그 '더 잘 살고 싶다'는 갈망,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바로 당신을 인간답게 만드는 이상주의의 씨앗이다.
현실주의자들이여, 가끔은 미쳐도 좋다
현실주의자들에게 제안한다. 가끔은 엑셀 시트에서 눈을 떼고 창밖의 뜬구름을 보자. "이게 말이 돼?"라는 질문 대신 "이게 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의 그 철저한 현실 감각에 아주 약간의 이상주의 한 스푼만 섞는다면, 당신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세상을 뒤흔드는 동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이미 이 글을 읽으며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라고 무릎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좋다. 계속 꿈을 꿔라. 당신들의 그 무모함이 결국 우리 모두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세상은 현실주의자들이 유지하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은 "이건 말도 안 돼"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뚜벅뚜벅 걸어갔던 이상주의자들이었다. 당신은 오늘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안전한 동굴 속인가, 아니면 폭풍우가 몰아쳐도 무지개가 보이는 저 너머인가?
결국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건 배가 고픈 와중에도 '내일은 더 멋진 사냥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잠들 수 있는 그 오만한 희망 때문 아니겠는가.
자, 이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다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하지만 방금 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길 바란다. 당신의 현실 속에 숨어 있는 이상의 조각을 발견하는 순간, 당신의 진짜 이야기는 시작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