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의 시대는 갔다, 바야흐로 '내돈내빌'의 세상

by 기록습관쟁이

언제부턴가 내 통장은 환승 정류장으로 전락했다. 월급이라는 귀한 손님이 잠시 짐을 풀기도 전에, 구독이라는 징수원들이 줄을 지어 통행료를 뜯어간다. 과거에는 물건을 사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내돈내산의 시대였으나, 이제는 매달 돈을 내고 잠시 권한만 빌려 쓰는 내돈내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의 디지털 책상을 살펴보자. 글을 쓰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365를 켜고, 촬영한 사진을 보정하기 위해 이보토(Evoto)를 실행하며, 그럴듯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미리캔버스에 접속한다. 모든 건 내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이번 달 결제를 멈추는 순간, 이 툴들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기능을 멈춘다. 나의 업무 환경조차 월세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 소프트웨어는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니 이해해 보자.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서 들려온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다. 모 유명 수입차 브랜드에서 1열 열선 시트 기능을 구독 서비스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지금은 철회했지만). 이미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차 값을 지불했는데, 한겨울 내 엉덩이를 따뜻하게 데우려면 매달 만 원 남짓한 돈을 또 내야 한다니.

이건 마치 식당에서 전주비빔밥을 시켰는데, 사장님이 "손님, 고추장은 구독제입니다. 월 2,000원을 내시면 비빌 수 있는 권한을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드웨어는 이미 내 차에 장착되어 있는데 소프트웨어로 자물쇠를 걸어두고 통행료를 요구하는 이 방식은, 소비자에게 "내 물건을 내가 온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묘한 박탈감을 안겨준다.

머지않은 미래의 카푸어는 할부금을 못 갚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구독료를 연체해서 한여름에 에어컨이 잠기고,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시트 위에서 오들오들 떨며 운전하는 사람이 진정한 카푸어가 되는, 웃지 못할 디스토피아가 그려진다.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소유가 아닌, '접속'의 시대가 올 것이라 예언했다. 그의 통찰은 섬뜩하리만치 정확했다. 우리는 이제 CD를 사지 않고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속하며, DVD를 소장하는 대신 OTT플랫폼을 유영한다.

이 구독의 축복은 처음엔 달콤했다. 단돈 만 원이면 전 세계의 콘텐츠를 내 손안에 쥘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달콤함은 곧 피로감으로 변질되었다. 넷플릭스에 없는 건 디즈니 플러스에 있고, 거기 없는 건 티빙에 있다.

나 역시 한때는 넷플릭스의 성실한 납세자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뭘 볼까?'를 고민하며 예고편만 훑어보다 잠드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깨닫고 과감히 해지 버튼을 눌렀다.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함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나름의 소소한 저항이었다.

반면 유튜브 프리미엄은 끝내 놓지 못했다. 광고 없는 쾌적함과 백그라운드 재생이라는 마약 같은 편의성, 유튜브 뮤직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통신사 요금제와 결합해 할인을 받는 타협을 선택했다. 기업이 쳐놓은 그물망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최대한 영리하게 움직이는 게 현대 소비자의 생존법 아니겠는가!


구독 경제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교묘한 무기는 바로 첫 달 무료다. 기업들은 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귀차니즘의 노예라는 것을.

"일단 한 달만 써보고 해지해야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카드를 등록하지만, 그 서비스는 한 달 동안 내 일생의 공기처럼 스며든다. 업무 효율을 높여주는 마이크로소프트 365나 이보토 같은 툴들은 더욱 치명적이다. 내 손에 익어버린 이 도구들 없이는 당장 내일의 업무가 불가능해지는 시점, 즉 내가 디지털 인질이 되는 순간 기업은 승리한다.

약속된 한 달 뒤 날아오는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자에 우리는 무릎을 치지만, 이미 돈은 떠났다. 해지 절차는 또 어찌나 복잡한지. 마치 고대 유적의 미로를 탐험하듯 해지 버튼을 찾아 헤매야 하고, 찾았다 싶으면 "정말 떠나시겠어요? 질척거려서 미안하지만 할인 쿠폰 줄게"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팝업창을 서너 번은 물리쳐야 겨우 자유의 몸이 된다. 이별한 전 연인도 이렇게 구질구질하진 않을 것이다.


투덜대면서도 내가 미리캔버스의 유료 템플릿을 결제하고, 유튜브 프리미엄을 유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압도적인 편리함경험의 가치 때문이다.

초기 비용 없이 최신 기능을 즉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내 취향을 분석해 떠먹여 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는 바쁜 현대인에게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수백만 원짜리 프로그램을 일시불로 사는 부담(소유 경제) 대신, 커피 몇 잔 값으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내는 경험(구독 경제)을 선택하는 건 어찌 보면 합리적인 경제 활동이기도 하다.

결국 구독 경제는 우리 소유 욕구경험 욕구로 치환하며,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틈새의 니즈를 영리하게 파고들었다.


가끔은 모든 구독을 끊고 아날로그 전사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이미 디지털의 단맛과 효율성을 맛본 나에게 그건 무소유의 실천이 아니라 고행에 가까울 것이다. 당장 내일 이보토 없이 사진 수백 장을 보정해야 한다면 나는 울면서 다시 카드를 꺼낼 것이 뻔하니까.

중요한 건 구독의 다이어트다. 내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서비스들 중에서, 내 삶의 질을 확실히 높여주는 것과 관성적으로 결제되는 것을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과감히 끊었지만 업무 효율을 위한 툴에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처럼 말이다.

엉덩이를 데우는 데 월세를 내는 것은 여전히 억울하지만, 내 커리어와 영혼을 살찌우는 도구에 내는 비용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위안 삼아 본다.

대한민국은, 아니 전 세계는 지금 구독 중이다. 내일은 또 어떤 기상천외한 서비스가 나와 "이것도 빌려 써보지 않을래?"라며 내 지갑을 두드릴지, 두려우면서도 사뭇 궁금해지는 밤이다. 나는 오늘도 스마트한 소비자와 호구 사이, 그 어딘가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결제 완료 문자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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