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은 하락했으나, 구력은 상승했습니다
내 나이 마흔넷. 공자의 말씀대로라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지 않아야 할 불혹이라는데, 나는 여전히 명함 앞에서 갈팡질팡한다. 내 명함엔 과장이라는 두 글자가 박혀 있다.
이게 참 묘하다. 10년을 버틴 첫 직장에서 차장이라는 훈장을 달고 당당히 퇴사했을 때만 해도, 내 인생의 그래프는 우상향일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직한 곳에선 다시 과장이 되었고, 또 한 번 자리를 옮긴 지금의 회사에서도 나는 여전히 과장이다.
동기들은 차장이니 부장이니 이사니 하며 별을 다는데, 나는 직급의 연어가 되어 거꾸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아니,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는 건가? 누군가는 내게 위로인 듯 비수 같은 말을 던진다. "야, 중소기업에서 직급이 뭐가 중요하냐? 실속만 챙기면 되지."
틀린 말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세계관에서 직급과 연봉은 종종 반비례의 곡선을 그리곤 하니까. 하지만 마흔 중반, 현장에서 사다리를 타며 "과장님!" 소리를 들을 때면, 가끔은 내 이름 뒤에 붙은 그 호칭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 씁쓸해지곤 한다.
볼링을 치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분명 아침에는 기름(오일)이 매끈하게 깔려 있어 공이 굴러가는 데로 스트라이크가 꽂혔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레인이 엉망이 된다. 남들이 굴린 공에 오일이 밀려 나가고, 어떤 곳은 떡이 지고, 브레이킹 존은 흙탕물이 된다.
지금 내 인생이 딱 그 꼴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을 굴려왔다고 자부했다. 삼성 반도체 현장에서 먼지를 마시며 고군분투했고, 포항의 보안 시설을 지키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한식당 매니저로 전장에서 구르기도 했고, 지금은 CCTV 엔지니어로 밥벌이를 한다. 그런데 결과표는 과장이다.
나는 정체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도태되고 있는 걸까? 내 능력이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열심히 살았는데 보상이 고작 이거냐"는 서러움이 울컥 올라온다. 남들은 승승장구하며 하이웨이를 달리는데, 나는 오일이 다 말라버린 레인 끝자락에서 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꼴이다. 내가 바로 그 하락세의 표본인 것 같아 고개가 숙여진다.
그렇게 신세한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문득 예전에 본 볼링장의 고수가 생각났다. 레인이 지저분해졌다고 혀를 차는 하수들과 달리, 그는 조용히 서 있는 위치를 옮겼다. 공의 궤적을 수정했고, 남들이 지뢰라고 부르는 오일 덩어리를 역이용했다.
그에게 지저분한 레인은 장애물이 아니라 새로운 길이었다. 그 순간,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벼락처럼 머리를 스쳤다.
차장에서 과장으로 내려앉은 덕분에 나는 현장의 감각을 잃지 않았다. 관리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서류 더미에 묻히는 대신, 나는 여전히 렌치를 잡고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현장의 선들이 어떻게 엉켜 있는지, 그 노이즈가 어떤 고통을 호소하는지 나는 몸으로 읽는다.
만약 내가 승승장구해서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면, 뱃속의 아이가 이중 대동맥궁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렇게 담담하게 "길이 다르면 다른 대로 걸어가면 된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현장에서 단련된 임기응변과 긍정의 구력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못났다. 나이 마흔넷에 직급 하나에 연연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참 못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내 솔직한 온기도 없는 바닥의 심정인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노를 잡는다. 비록 내 배가 호화 크루즈는 아닐지라도, 내가 젓는 이 노가 나를 더 큰 바다로 데려다줄 것을 믿는다. 직급은 하락했어도, 내 삶의 숙련도는 상승했다. 내 명함의 과장은 더 이상 정체의 증거가 아니라, 현장을 지키는 현장 과정으로서의 훈장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과장들, 혹은 직급이라는 숫자 놀음에 마음을 다친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레인이 지금 좀 지저분해졌다고 해서 게임이 끝난 건 아니다. 오일이 밀려 나갔다면, 그 맨바닥의 마찰력을 이용해 더 강력한 훅을 던지면 그만이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다. 오늘 내가 느낀 이 하락세의 서늘함이, 내일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통찰의 불씨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자, 신세한탄은 여기까지. 내일도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저분한 세상의 구석구석을 선명하게 비출 카메라를 달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인생이라는 레인을 끝가지 책임지는 고수니까.
[작가의 한 마디]
진심을 담아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과장님, 아니 선생님. 직급은 타인이 매긴 가격표일 뿐이지만, 선생님의 기술과 진정성은 대체 불가능한 가치입니다. 이 글이 선생님의 브런치에 작은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