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흑역사에 배운 글쓰기 철학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 시작은 언제나 요란하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참 진부하다. 하품이 나온다. 서점 가판대에 널린 흔한 자기 계발서 표지에서나 볼 법한 소리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그 말. 당연한 말을 뭐 그리 거창하게 포장하나 싶어 콧방귀를 뀌곤 했다. 하지만 인생을 좀 살아보니, 그리고 현장에서 CCTV 케이블 좀 깔아보니 알겠다. 진부한 말이 수백 년을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게 정답이라서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하지만 내 존재감은 노트북 하드디스크 깊은 곳, 새 폴더 속에 꽁꽁 숨어 있다. 스마트폰 메모장 어플 구석, 비밀번호도 걸려있지 않은 그곳에 내 글들이 납작 엎드려 있다.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안달 난 글자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녀석들은 밖으로 나올 준비가 안 됐다. 아니, 냉정하게 말하면 내가 준비가 안 됐다.
먹고살기 바빴다. 핑계라고? 맞다. 하지만 꽤 그럴싸한 핑계다. 나는 대한민국 정보통신업의 역군이자, CCTV가 돌아가는 현장의 파수꾼이다. 전국 팔도를 유랑하며 카메라를 달고, 선을 깔고, 네트워크를 잡는다. 낮에는 사다리를 타고 밤에는 모텔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쓴 글들은 하나같이 용감했다. 앞뒤 재지 않고 질러버린 문장들.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비문들. 감정에 취해 새벽 2시에 쓴 연애편지 같은 글들. 초고는 언제나 엉망진창이었다. 쓸 때는 신이 났다. 마치 내가 헤밍웨이라도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이성이 돌아온 상태에서 다시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모니터를 부수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원래 저지르는 놈이었다. 준비는 부족해도 용기 하나만큼은 타고난 놈.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 필름을 돌려보면 그 증거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나의 이 엉망진창인 초고 스타일은, 어쩌면 나의 연애사에서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용감한 자가 미녀를 얻는다." 이 말 또한 남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위험한 명언이다. 중학교 2학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 여섯 명이 모였다. 주제는 하나,
"누가 먼저 여자를 꼬셔오나 내기하자."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는 내기다. 우리는 길거리 헌팅이라는, 당시 우리 나이또래에선 꽤나 전위적인 도전에 나섰다. 처음 본 이성에게 다짜고짜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가고, 흔쾌히 승낙을 받아내는 것. 늑대의 본능이라기보다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들의 객기였다.
친구 놈들은 나를 보며 낄낄거렸다. "야, 쟤는 절대 못 해. 얼굴 빨개져서 말도 못 걸걸?" 맞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았다. 남 앞에 나서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고, 발표라도 시키면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리는, 전형적인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명석을 깔아주니 눈이 뒤집혔다. 승부욕이었을까, 아니면 사춘기 호르몬의 농간이었을까. 친구들의 비웃음이 내 등 뒤를 떠밀었다. 나는 보란 듯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저기 교복을 입은 여학생 무리가 보였다. 친구들이 뒤에서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저기요."
말을 걸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횡설수설했을 것이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친구들 중 가장 내성적이었던 내가, 가장 당당하게 여자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친구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때 깨달았다. 생각하고 재고 따지면 못 한다. 일단 저지르는 것, 그 무식한 용기가 때로는 기적을 만든다는 것을.
하지만 그 뒤는 어땠을까? 그 여자아이들과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용기로 시작은 했으나, 관계를 이어갈 대화의 기술, 매너, 그리고 지갑 사정 등 준비가 전무했으니까.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흐지부지했다. 용기는 문을 열어주었지만, 그 방 안에 머물게 하지는 못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저지르는 놈이었다. 남자가 득실거리는 공대. 우리는 굶주린 하이에나 떼 같았다. 어느 날, 전설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패션디자인과와의 과팅. 공대와 패디과라니. 기름과 물의 만남, 혹은 야수와 미녀의 만남이었다.
워낙 인원이 많았다. 우리는 아예 대학가 술집을 통째로 빌리다시피 했다. 이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입장할 때 나눠준 번호표가 우리의 신분증이었다. "3번 남입니다." "7번녀예요." 흡사 경매장 같기도 하고,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 같기도 했던 그날 밤. 내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녀는 빛이 났다.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을 만큼.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 사람이다.'
하지만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까칠해 보이는 인상의 복학생 형. 그는 여유가 있었다. 갓 입학해 어리바리한 우리와는 달리, 농익은 멘트와 노련함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그녀 주변을 맴돌며 영토를 표시하고 있었다.
승산이 없어 보였다. 나는 가진 게 없었다. 화려한 말발도, 세련된 패션 감각도(공대생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을 것이다), 노련함도 없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그날처럼, 다시 한번 알 수 없는 스위치가 켜졌다.
나는 들이댔다. 복학생 형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녀에게 직진했다. 번호표 떼고, 계급장 떼고, 오로지 진심과 깡다구 하나로. 술잔이 오가고, 눈빛이 오갔다. 까칠한 복학생 형이 인상을 쓰며 견제구를 날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했다. 투박하지만 솔직하게.
결국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한 건 나였다. 그날 밤의 승자는 복학생도, 말 잘하는 녀석도 아닌, 부끄러움 많고 내성적인 나였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벌였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귀신에 홀렸던 걸까? 아니면 내 안에 숨겨진 카사노바의 DNA가 잠시 깨어났던 걸까?
하지만 이 역시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순간의 용기로 그녀의 마음을 얻었지만, 그 마음을 지키고 가꾸는 성숙함인 준비가 부족했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사랑은 유통기한이 짧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엔지니어다. 성인이 되고, 가장이 되어 현장에서 일해보니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 시작하는 것과 완성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CCTV 카메라를 설치한다고 치자. 사다리를 타고 높은 곳에 올라가 드릴로 벽을 뚫고, 굵은 케이블을 씩씩하게 끌어오는 건 용기다. 힘 좀 쓰고, 땀 좀 흘리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초보자도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중학교 시절의 헌팅과 같다. 일단 저질러 놓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기술은 마감에서 나온다. 어지럽게 널린 배선들을 케이블 타이로 꼼꼼하게 묶고, 비가 와도 물이 새지 않도록 방수 처리를 하고, 카메라 각도를 1도 단위로 미세하게 조정하고, 네트워크 설정을 완벽하게 잡는 것. 이 지루하고 꼼꼼한 준비과정이 없으면 공사는 망한다.
선을 대충 깔아놓고 철수하면? 며칠 뒤에 반드시 전화가 온다. "팀장님, 화면이 안 나오는데요?" "팀장님, 비 오니까 카메라가 죽었어요." A/S 전화가 빗발친다. 그건 프로가 아니다. 현장에서도 선을 깔아놓는 것(용기)보다, 꼬인 선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것(준비)이 훨씬 고되다. 하지만 그 고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하나의 현장이 완성된다.
글쓰기도 똑같다. 빈 화면의 커서가 깜빡일 때, 대부분의 사람은 공포를 느낀다. 첫 문장을 쓰지 못해 몇 시간이고 머리를 쥐어뜯는다. 하지만 나는? 일단 쓴다. 중학교 때 길거리에서 말을 걸듯, 대학 때 패디과 그녀에게 돌진하듯, 일단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타닥타닥 쳐내려 간다. 이것은 나의 오랜 흑역사가 준 선물이다. 시작하는 용기.
내 하드디스크에 쌓인 수많은 초고들. 그것들은 내 용기의 전리품이다. "일단 쓰고 보자!" "나중에 고치면 되지!" 그렇게 질러놓은 글들이 산더미다. 쓸 때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글들을 그대로 세상에 내놓는 건, 중학교 시절 떡볶이 국물 묻은 입으로 고백하던 짓과 똑같다. 독자라는 미녀는 냉정하다. 준비되지 않은 글, 정제되지 않은 문장, 논리가 널뛰는 스토리를 참아줄 인내심 따윈 없다. 용감하게 쓴 초고를 방치하면, 그건 독자에게 불량품을 파는 것과 같다. A/S 요청은 악플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퇴고한다.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쓴다. 단어 하나를 바꾸기 위해 국어사전을 뒤적이고, 문장의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 소리 내어 읽어본다. 현장에서 케이블 타이를 조이듯, 문장을 조인다. 어젯밤에 쓴 감성 충만한 문장이 아침에 보니 오글거려 쓰레기통에 처박기도 한다. 이 과정은 지루하다. 고통스럽다. 때로는 내 재능 없음을 확인하는 것 같아 괴롭다.
하지만 이 지루한 과정이야말로 진짜 준비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 위해 꽃단장을 하는 시간이다. 거친 문맥을 다듬어 매끄러운 피부로 만들고, 빈약한 논리에 근육을 붙여 탄탄한 몸매를 만드는 과정이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이제 이 말을 다시 곱씹어 본다. 이 말은 수동적으로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다. 기회가 올 때까지 방구석에서 칼만 갈고 있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한다는 것은 결국 저지르고 수습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용감한 자는 문을 두드리지만, 준비된 자만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이 된다. 헌팅의 용기로 초고를 쓰고, 연애의 정석으로 퇴고를 한다. 그 두 가지가 합쳐질 때, 비로소 내 글은 원고가 된다.
혹시 망설이고 있는가? 일단 저질러라. 헌팅하듯 첫 문장을 던져라. 수습과 퇴고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고.
자, 이제 준비는 끝났다. 기회야 와라. 이번엔 문만 열어주는 게 아니라, 아주 눌러앉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아, 그전에 퇴고 한 번만 더 하고...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