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에게 배우는, 미치지 않고 일하는 법
총구 앞에서도 예의를 차리는 남자가 있다. 피 튀기는 혈투 끝에 앉아 헐떡이면서도, 눈앞에 놓인 토스트 한 조각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남자.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군>의 '임상'이다.
배우 차승원이 연기한 이 전직 요원은 기묘하다. 2:8 가르마에 촌스러운 잠바, 걸음걸이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 삐거덕거린다. 동네 경로당에서나 마주칠 법한 무해한 아저씨처럼 보이다가도, 업무(?)가 시작되면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산탄총을 갈긴다.
이 기괴한 킬러에게서 뜻밖에도 우리네 삶의, 아니 현대 직장인의 이상향을 봤다. 잔혹한 킬러를 동경하다니 미친 소리 같겠지만, 들어봐 주시기 바란다. 그의 태도에는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프로의 품격과 완벽한 워라밸이 숨겨져 있으니까.
임상은 적에게도 깍듯하게 존댓말을 쓴다. 상대를 존중해서가 아니다. 그는 말한다.
"존댓말을 쓰면 말이죠,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그래야 실수를 안 합니다."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이건 킬러의 철학이 아니라, 매일 전쟁터로 출근하는 현대인의 처세술이다.
우리는 회사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속으로 책상을 엎고 사직서를 던진다. 부당한 지시, 무례한 클라이언트,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 앞에서 우리 내면은 끓어오른다. 하지만 우린 미소 짓는다. 그리고 세상 공손한 말투로 "네, 알겠습니다. 수정해서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임상의 말처럼, 그 존댓말은 상대를 위한 게 아니다. 나를 위한 것이다. 끓어오르는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한, 내 안 야수를 잠재우기 위한 안전장치다. 감정을 배제하고 기능으로서만 존재해야 할 때, 우린 존댓말이라는 갑옷을 입는다.
임상은 알고 있었던 거다. 프로는 감정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태도로 일한다는 걸. 화가 머리끝까지 나도,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존댓말이라는 루틴을 통해 자신을 시스템 모드로 전환하는 기술. 그게 그를 최고의 청소부로 만들었다.
보통 누아르 영화 속 킬러들은 고통을 모른다. 총을 맞아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며칠 밤을 새워도 쌩쌩하다. 하지만 임상은 다르다. 격렬한 액션 씬이 끝나면 그는 앓는 소리부터 낸다.
"아이고야, 나도 이제 진짜 늙었네. 뼈가 잘 안 붙어."
그의 투덜거림은 짠하다. 하지만 그 솔직함이 그를 더욱 프로페셔널하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쇠락을 인정한다. 예전 같지 않은 몸, 느려진 회복 속도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 한계를 노련함과 도구, 그리고 철저한 준비로 메꾼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신입 시절의 패기와 체력은 영원하지 않다. 밤새 야근하고도 다음 날 아침에 거뜬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젠 영양제를 한 움큼 털어 넣어야 하루를 버틸 수 있고, 회식 다음 날엔 온종일 숙취에 시달린다.
하지만 늙고 지쳤다고 해서 일을 못 하는 건 아니다. 임상이 삐걱거리는 무릎을 이끌고도 타깃을 정확히 제거하듯, 우리에겐 세월이 만들어준 짬(연륜)이 있다. 체력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경험으로 판을 읽고 요령 있게 문제를 해결한다.
"힘들어 죽겠다"라고 징징거리면서도, 막상 일이 닥치면 기가 막히게 처리해 내는 임상의 모습. 마치 믹스커피를 휘저으며 "아이고 허리야"를 연발하다가도, 모니터 앞에 앉으면 눈빛이 바뀌는 우리네 부장님, 과장님들의 자화상 같다. 약함을 알기에 더 치열하게 준비하는 그 자세가 나는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폭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토스트 씬을 꼽겠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끝난 직후, 그는 상대에게 뜬금없이 말한다.
"근데 토스트는 진짜 세상 맛있었습니다."
이 대사는 임상이라는 캐릭터의 정점이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죽이던 손으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얼굴을 하고 빵 맛을 칭찬한다.
이 기가 막힌 온/오프(On/Off) 전환 능력이라니.
그는 일(살인)의 잔상을 일상으로 가져오지 않는다. 일이 끝나면 그 즉시 '킬러 임상'에서 토스트를 좋아하는 아저씨로 로그아웃한다. 현장 비극이나 죄책감, 피로가 그의 미각을 방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가. 퇴근 카드를 찍고 나와서도 머릿속은 온통 회사 일이다. 아까 들었던 싫은 소리를 곱씹고, 내일 해야 할 업무를 걱정하느라 저녁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침대에 누워서도 스마트폰으로 업무 메일을 확인한다. 몸은 집에 왔지만, 정신은 여전히 사무실 책상 앞에 묶여 있다.
임상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일이 아무리 고되고, 끔찍하고, 지저분했더라도, 그게 내 토스트의 맛을 해치게 둬선 안 된다고. 일은 일이고, 빵은 빵이다. 지옥 같은 하루를 보냈더라도, 퇴근길에 사 먹는 붕어빵 하나, 집에 돌아와 마시는 맥주 한 캔 행복은 온전히 내 것이어야 한다.
공과 사의 완벽한 분리. 그가 보여준 광기에 가까운 쿨함은, 일과 삶이 뒤엉켜 질척거리는 현대인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임상의 매력은 그 어눌함에 있다. 촌스러운 패션, 존댓말, 엄살, 그리고 사람 좋은 웃음. 그는 세상 무해한 사람인 척 위장한다. 남들이 자기를 얕잡아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헐렁함을 방패 삼아 상대의 경계심을 허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는 품속에 감춰둔 송곳을 꺼낸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날카롭게.
빡빡한 세상이다. 모두가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고, 조금만 틈을 보이면 물어뜯으려 달려든다. 이런 세상에서 임상의 생존법은 유효하다. 평소에는 좀 모자란 듯, 욕심 없는 듯,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허허실실 웃으며 사는 거. 굳이 날을 세워 적을 만들지 않는 거.
그러나 내 안에 단단한 송곳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한다. 내 전문성, 내 신념, 혹은 내 가족 같은 소중한 것을 건드리는 순간 언제든 꺼내 들 수 있는 실력. 평소엔 헐렁해 보이지만, 일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무서운 사람.
"어우, 전 잘 몰라요~" 하고 뒤로 빼다가, 막상 키보드를 잡으면 미친 속도로 코딩을 짜내는 개발자처럼. 회식 자리에선 티슈로 오리를 접고 있지만, 현장에 나가면 눈빛이 변하는 엔지니어처럼.
나는 그런 반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겉으로는 세상 물정 모르는 동네 형 같지만, 속에는 시퍼런 칼날을 품고 있는 임상처럼 말이다.
드라마 속 임상은 결국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할지도 모른다(그의 직업을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대사들은 묘하게도 내 지친 퇴근길을 위로한다.
오늘 하루, 당신 전쟁터는 어땠는가.
말이 통하지 않는 빌런들 때문에 속이 문드러졌는가? 내 맘 같지 않은 성과 때문에 뼈마디가 쑤시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만 존댓말이라는 갑옷을 벗고, 투덜거리는 늙은 호랑이의 가면도 내려놓자. 그리고 임상처럼 말해보자.
"아이고, 삭신이야. 그래도 오늘 저녁 김치찌개는 진짜 세상 맛있네."
일은 끝났다. 이제 당신만의 토스트를 즐길 시간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골치 아픈 업무도, 당신이 빵을 씹으며 느낄 그 사소하고 위대한 행복을 방해할 자격은 없다.
피 묻은 손을 씻고, 바삭한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무는 임상처럼.
우리 모두에겐 확실한 '로그아웃'이 필요하다.
차승원 배우의 임상은 징그럽게 무섭지만, 징그럽게 닮고 싶은 구석이 있습니다. 프로란 무엇일까요? 어쩌면 '하기 싫어 죽겠는데 끝까지 해내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도 밥맛은 잃지 않는 것' 아닐까요?
지난 한 주 고생한 여러분의 저녁이, 임상의 토스트처럼 꿀맛이길 바랍니다.
이틀 뒤면 설날입니다.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