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는 실력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거품이 빠지는 시간이다
"와, 미쳤다! 이거 실화야?"
고막을 때리던 그 짜릿한 탄성은 딱 3개월짜리였다. 나를 하늘 높이 띄어 올리던 그 뜨거운 입김들이, 차가운 비수가 되어 등 뒤에 꽂히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일약 스타였고, 지금은 투명 인간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못한 실패한 유망주일지도 모르겠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공간의 주인공은 나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쏟아지던 "에이스 왔다!"는 환호성, 내 동작 하나하나에 쏠리던 경이로운 시선들. 나는 그 달콤한 마약에 취해 있었다.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믿기 힘든 성과들, 남들이 1년을 굴려야 얻는 감각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재능 있다고 말했고, 나는 정말 내가 특별한 줄 알았다. 그 오만이 내 눈을 가린 탓일까. 정점은 너무나 짧았고, 추락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갑자기 몸의 나사가 풀린 것처럼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다. 내가 무너진 순간, 마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목격하는 일은 실력이 줄어든 것보다 더 비참했다. 어제까지 내 어깨를 두드리던 손들이 오늘은 팔짱을 낀 채 나의 부진을 냉소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역시, 초심자의 행운이었네."
그 한마디가 뼈를 때렸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무대에 홀로 남겨진 기분. 나는 지금 지독한 슬럼프와, 그보다 더 지독한 인간관계의 냉혹함 한가운데 서 있다.
이 지독한 슬럼프는 비단 운동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일터에서도, 사람 사이 관계에서도 똑같이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를 떠올려 본다. 아이디어가 샘솟고, 상사의 칭찬이 쏟아지고, 동료들이 나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대우해 줄 때. 우리는 그 초심자의 행운 같은 시기에 도취된다. 내가 이 회사의 구세주가 될 것 같고, 내 손끝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다. 하지만 업무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지고, 실수가 연발되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당황한다.
"김 대리, 요즘 왜 이래? 처음엔 잘하더니."
그 말 한마디에 멘털은 바스러진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은 앞서는데, 손발이 따라주지 않을 때의 그 비참함. 동료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찰나의 눈빛을 마주하는 건, 실적 그래프가 곤두박질치는 걸 보는 것보다 더 괴롭다.
연애나 대인관계는 또 어떤가. 썸을 탈 때, 혹은 연애 초반에는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사람이다. 상대의 웃음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나의 농담 하나에 자지러지는 상대를 보며 희열을 느낀다. 나는 그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배려심 깊고, 매력적인 스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함이라는 먼지가 내려앉으면, 우리는 삐그덕 대기 시작한다. 나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상대의 반응은 예전처럼 뜨겁지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까르르 웃던 그녀는 이제 시큰둥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본다. 밸런스가 깨진 것이다. 관계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우리는 불안해진다. 더 잘 보이려고 무리수를 두거나, 아니면 아예 입을 다물어버린다. 환호가 사라진 연애는 운동 슬럼프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운동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우리는 타인의 인정이라는 마약에 너무 쉽게 중독된다. 그래서 그 약기운이 떨어졌을 때 찾아오는 금단현상을 견디지 못한다. 내가 무너진 건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에 내 중심을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남들이 박수 쳐주면 중심이 잡히고, 남들이 외면하면 중심을 잃는, 그런 나약한 밸런스였던 것이다.
요즘 나는 다시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간대를 피해, 아무도 없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 운동장을 찾고 싶다. 텅 빈 공간, 울리는 건 오직 나의 거친 숨소리와 기구들이 부딪히는 파열음뿐인 그 적막 속으로 도망치고 싶다.
이것은 회피일까? 아니, 나는 이것을 직면이라고 부르고 싶다.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들은 수만 관중의 함성 속에서도, 혹은 야유 속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의 루틴을 수행한다. 그들은 어떻게 그 무한 경쟁과 살얼음판 같은 긴장을 버텨내는 것일까. 단순한 재능의 차이일까?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이 그들을 괴물로 만든 것일까?
나는 그 답을 고독을 씹어 삼키는 능력에서 찾고 싶다.
우리가 환호성에 취해 있을 때, 그들은 지루함을 견뎠을 것이다. 우리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기술을 연마할 때, 그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기본기를 수만 번 반복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운동은 쇼가 아니라 수행이었을 테니까. 그들은 타인의 박수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근육이 찢어지고 다시 붙는 그 고통스러운 침묵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재능은 우리를 출발선에서 100미터 앞서게 해 주지만, 결승선까지 가게 해주는 건 결국 멘털이다. 그리고 그 멘털은, 남들이 없을 때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결정된다.
슬럼프는 어쩌면 신이 내린 강제 휴식 시간 아닐까. "너 지금 너무 남들 눈만 신경 쓰고 있어. 이제 네 안을 좀 들여다봐."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코치의 조언이나 동료의 위로가 아니다. 철저한 외로움이다.
다시 혼자 운동을 시작한다면, 나는 예전처럼 환호성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폼이 좀 엉성하면 어떤가. 점수가 형편없으면 또 어떤가. 아무도 보지 않는데. 그저 내 몸이 움직이는 감각, 근육의 떨림,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만 집중하고 싶다.
잘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하려고 한다. 보여주려 하지 않고, 그냥 느끼려고 한다.
외로운 고독과 싸우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는 건, 결국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벌거벗은 나와 마주하겠다는 선언이다. 뼈를 깎는 노력이니, 피 나는 경쟁이니 하는 거창한 말은 잠시 접어두자. 그저 오늘 하루,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묵묵히 나만의 횟수를 채우는 것. 그것만이 무너진 밸런스를 다시 세우는 유일한 길임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차가운 냉대가 나를 찌를 때, 나는 비로소 뜨거워질 준비가 되었다. 화려한 스타가 아니라, 묵묵한 구도자가 되어 다시 그 자리에 설 것이다.
환호성은 없다. 하지만 내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뛸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