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와 회수권 사이

찰나의 스냅숏에 가려진 인생의 뒷면

by 기록습관쟁이

경기도 어느 한적한 식당가. 평범한 풍경 속에 갑자기 비현실적인 빛줄기 하나가 끼어든다. 오후 햇살을 날카롭게 튕겨내는 BMW 530e. 먼지 하나 없는 매끄러운 차체는 낡은 보도블록과 투박한 식당 간판 사이에서 유난히 겉돌았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린다. 늘 해맑은 미소로 안부를 묻던 단골손님이다.


동그란 눈망울에 앳된 얼굴을 한 그를 보면 베이비 페이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평소 식당 안에서 땀 흘리며 밥을 먹던 모습만 보다가, 8천만 원이 훌쩍 넘는 수입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그를 보니 현실감이 떨어진다. 갑자기 웬 외제차냐며 놀란 표정을 짓자, 그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는다.


"하하. 이번에 주식으로 수익이 좀 났습니다."


그는 건실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껍데기 안에 주식 시장이라는 정글을 묵묵히 헤쳐 온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남들 모르게 틈틈이 차트를 분석하고, 환희와 공포가 교차하는 시장 바닥에서 쓴맛 단맛 다 보며 내공을 쌓았단다. 누가 가르쳐준 길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 부딪치며 얻어낸 전리품이다. 한참 어린 동생뻘인 그가 왠지 나보다 훨씬 큰 어른처럼 보였다.


값비싼 명품으로 몸을 감싸거나 거들먹거리지 않았음에도, 그의 성취는 차 한 대를 통해 여실히 증명됐다. 참 근사했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가 아니라, 스스로 일궈낸 성과에 대한 담백한 보상. 자만심 없는 성취감은 사람에게서 이토록 건강한 생기를 뿜어내게 만든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드라마는 늘 절정의 순간에 복선을 숨겨둔다. 찬란한 광택을 뽐내던 그가 어느 날부터 발길을 뚝 끊었다. 식당 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나 했지만, 그의 베이비 페이스는 보이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문은 흉흉했다. 직장 내 갈등으로 갑작스레 사표를 던졌다고 했다.


그 찬란했던 BMW의 광택은 지금도 여전할까? 아니면 그 차를 처분하고 다시 낡은 구형 아반떼의 손잡이를 잡았을까? 혹은 퇴직금을 쏟아부어 더 큰 승부수를 던졌을까? 알 방법은 없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의 인생 그래프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타인 인생을 볼 때 한 편의 긴 영상이 아닌, 찰나의 스냅숏을 본다. 지금 당장 잘 나가는 모습만 보고 그가 과거에 걸어온 가시밭길이나, 내일 마주할지 모르는 낭떠러지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후광 효과는 이토록 강력하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라는 조명이 그 사람 인생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모두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결과론에 열광한다. 수백억 자산가에게는 성공 신화라는 이름을 붙여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가 과거에 어떤 부정한 방법을 썼는지, 혹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부자라는 사실 하나가 모든 허물을 덮는다. 반대로 빚더미에 앉아 허덕이는 영세업자에게는 "게으르다", "노력이 부족했다"며 차가운 비난을 던진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재단하는 대중의 시선 자체가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가장 잔인한 괴물이 된다.


과연 그 수백억 자산가는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을까? 누군가는 흙먼지 날리는 밑바닥에서 손톱이 빠지도록 일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금보다 더 큰 부를 누리다 몰락하는 과정에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이라는 파도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밀려온다. 지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영세업자가 5년 뒤, 10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내 기억 속에도 잊지 못할 두 개의 풍경이 날카롭게 교차한다. 중학교 시절, 우리 집은 그야말로 태평성대였다. 아버지 사업은 매일이 축제였고, 부는 당연한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감쌌다. 그 시절 내 교통수단은 오직 택시뿐이었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미터기가 어떻게 올라가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문을 열면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안락한 공간이 내 세상의 전부였다. 아버지의 성공 신화는 마침표 없는 문장처럼 영원히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차가웠다. 한 번의 판단 착오와 급격한 경기 불황은 거대한 댐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견고해 보이던 가성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택시 문손잡이 대신 빳빳한 종이 회수권을 손에 쥐었다. 쾌적한 에어컨 바람 대신 낡은 버스의 퀴퀴한 냄새와 사람들의 땀 냄새가 일상이 됐다.


더 무서운 건 변해버린 사람들 눈빛이었다. 어제까지 아버지를 형님이라 부르며 간을 빼줄 듯 굴던 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등을 돌렸다. 단순한 외면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질타와 비난이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마치 아버지가 망하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던 사람들 같았다. 사회는 이토록 비열하고 야비했다. 결과가 나쁘면 그동안 흘린 땀방울마저 무능이라는 낙인이 되어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를 여전히 훈장처럼, 혹은 저주처럼 안고 사신다. "세상은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이 훨씬 많다"며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리다.


가정을 꾸리고 마흔 줄에 접어드니 아버지 말씀이 예전과 다르게 들린다. 예전에는 고리타분한 잔소리라 치부했던 그 참담한 경험담이 이젠 내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쓰디쓴 보약이 됐다.


"도박 같은 위험에 인생을 걸지 마라. 조금 느리더라도 안전한 길을 택해라."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고, 리스크가 큰 투자보다는 원금을 지키는 방식을 택하라는 조언이다. 사실 요즘 같은 초경쟁 사회, 고물가 시대에 이런 방식은 경제학적으로 보면 지독하게 비효율적이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가장 큰 리스크는 리스크를 전혀 감수하지 않는 것"이라며 당장이라도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처럼 겁을 준다. 자산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를 보면 나 역시 조급함이 울컥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인생이라는 파도가 얼마나 높게 치솟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파도가 덮칠 때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몸소 겪어봤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안정을 택해온 이유는 겁이 많아서가 아니다. 소중한 가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던 그 참담함을 내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은 절박함이다. 그 절박함이 때로는 비효율적인 길을 걷게 하는 용기가 된다.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은 "성공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현자"라고 말했다. 반대로 실패 역시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인 경우가 많다. 지금 조금 잘 나간다고 해서 오만할 필요도, 지금 조금 부진하다고 해서 고개를 떨굴 필요도 없다.


BMW를 타고 나타났던 그 손님도, 택시에서 내려 버스에 올랐던 우리 아버지도, 지금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나도 모두 인생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떠 있는 나룻배일 뿐이다.


타인의 인생에 잣대를 들이밀기 전에 먼저 내 삶의 방향을 점검해야 한다. 인생은 현재라는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는 과정이다. 지금 이 순간의 스냅숏에 속아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시기하지 말자.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파도를 넘으며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차가 우리 식당 앞에 멈춰 설까? 혹은 어떤 손님이 힘겹게 버스에서 내려 문을 열고 들어올까? 나는 그들을 똑같은 무게의 정성으로 맞이할 생각이다. 그들이 BMW를 타고 왔든, 낡은 운동화를 신고 왔든, 우리 모두는 오늘이라는 거친 파도를 함께 넘고 있는 소중한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21년의 어느 날, 경기도에서 식당일을 하며 느꼈던 생각을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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