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은 또 기록을 경신했고, 마음은 초과 흑자를 달성했다
연휴가 시작되면 우리 집 가계부는 잠시 이성을 잃는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 집은 노동의 경제학에선 일찌감치 해방됐지만, 그 빈자리를 분배의 경제학이 무섭게 치고 들어온다. 자녀들을 다 모아봐야 고작 여섯 명. 조촐하다면 조촐한 인원이 모여 앉아,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안녕을 현금과 선물과 음식으로 교환한다.
과거의 명절이 빳빳한 천 원짜리 몇 장에 아이들 어깨가 으쓱해지던 저물가 시대였다면, 지금은 바야흐로 고액권의 시대다. 조카들이 줄을 서고, 노란색 신사임당이 봉투 속으로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내 마음속 경제 지표는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린다. 나는 평범한 월급쟁이다. 한 달간 성실히 일해 번 숫자들이 단 하루 만에 타인의 기쁨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은 묘하게 복잡하다.
어제는 대형마트에서 카트가 터져나갈 만큼 선물 세트를 실어왔다. 양가 부모님부터 아랫집 이웃, 아이의 관장님까지. 평소 전하지 못한 고마움을 쇼핑카트에 빼곡히 담았다. 힘들게 번 돈이 빛의 속도로 증발하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은 상향 곡선을 그린다. 경제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 행복한 손실이야말로 명절이 가진 기묘한 마법이다.
부모님 댁 식탁은 언제나 초과 공급 상태다. 자식들이 온다는 소식에 부모님은 며칠 전부터 시장을 종횡무진하신다. 식탁 위에는 거의 국가 귀빈 환영 만찬 수준의 음식이 차려진다.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은 오십 첩 반상의 위용 앞에 "그만 먹으라"는 뇌의 명령은 무력해진다.
명절 연휴 동안 내 몸은 디록디록 살이 오르며 풍만함의 극치를 달린다. 일종의 행복한 일탈이자, 일상의 고단함을 칼로리로 치환하는 과정이다. 왁자지껄한 거실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넌지시 한마디를 던지신다.
"그래, 명절이 이래야 제맛이지. 손주들이 뛰어다녀야 집안에 웃음이 맴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거야. 요즘 저출산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참 씁쓸하더구나."
그 말씀 속에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생애의 가치가 담겨 있다. 자산 증식보다 중요한 건 온기의 증식이라는 거. 아버지의 일침은 명절의 진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정의해 준다.
이번 명절에는 유독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아내의 친구가 마흔셋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발표했다. 노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밤잠을 설쳤다던 그녀는, 현재 임신 33주 차인 우리 아내의 소식을 듣고 큰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또 다른 이에게 희망의 지표가 되는 것, 이 또한 명절이라는 장이 주는 선물이다.
사실 나와 동생은 아직 부모님만큼 풍족하지 못하다.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부모님이 더 여유로우실 때가 많아, 명절마다 고생하시는 모습을 뵈면 마음 한 구석이 묵직해진다. 나와 동생은 슬쩍 눈빛을 교환했다. 언젠가 우리가 더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둬, 부모님의 건강과 행복을 온전히 책임지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자는 무언의 약속. 지금은 비록 부모님의 내리사랑이라는 적자를 보고 있지만, 머지않아 우리가 부모님께 돈쭐을 내드리는 날을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장거리 운전에 몸은 녹초가 되고, 통장 잔고는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이 모든 소란과 해프닝이 결국 즐거움이라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명절은 결국, 텅 빈 지갑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텅 빈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다. 통장 잔고는 줄었지만, 가족의 웃음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 채웠으니 이번 분기 내 마음의 경제는 초과 흑자를 기록한 셈이다. 정신없고 시끄럽지만, 그래서 더 살맛 나는 시간.
그래, 이게 바로 명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