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실패, 그리고 성실함으로 일어선 아버지
늘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안정된 직장을 찾아서 일하거라."
어릴 땐 그 말이 정답인 줄 알았다. 공부에 소질이 없던 나였지만,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마음 한구석에 새겼다. 하지만 그 말은 늘 귀에서 맴돌다 한쪽으로 흘러나가곤 했다. '안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의 어깨는 너무 가벼웠다. 그러나 20대를 지나 30대에 접어들며 나는 깨달았다. 안정이란 것이 주는 안도감과 그 소중함을.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하셨던 '안정'이란 단어가 삶의 중요한 한 축임을.
아버지는 두 번의 사업 실패를 경험하셨다. 첫 번째는 금속제품 가공업이었다. 당시엔 가전제품보다도 주방용품이 성행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아버지도 그 흐름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유행을 좇아 시작한 사업은 탄탄한 준비 없이 버텨내기 힘들었다.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시장 전망, 허술한 유통망 관리, 그리고 예상치 못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가 아버지의 사업을 휘청이게 했다. 결국 2년을 버티지 못하고 가게 문을 닫았다. 두 번째는 당구장 자영업이었다. 마찬가지로 당구가 유행하던 시기에 꽤 큰 규모의 당구장을 창업하셨다. 하지만 이마저도 판로를 넓히지 못해 자리를 잡지 못했고, 경제 불황으로 당구 스포츠는 갈 곳을 잃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초조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아버지는 결코 성실함을 잃지 않으셨다.
사업 실패 후 아버지는 대기업의 2차 협력사에 취직하셨다. 일흔이 가까운 지금도 아버지는 늘 정시에 출근하신다. 성실함만이 사람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믿으시는 분이다.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안정'의 가치를 이해했다. 그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안정만을 좇아 살다가, 나는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마흔을 넘어서면서 나는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 안정된 직장과 도전적인 삶. 아버지는 늘 '안정'을 강조하셨지만, 나는 '도전'이란 단어에 자꾸만 시선이 갔다. 어릴 때부터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내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시간이 유일한 취미였다. 하지만 '글쓰기'는 안정된 직업이 아니었다. 직장 동료들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돌아온 말은 이랬다.
"요즘 누가 글 써서 먹고살아?"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글쓰기만으로 안정된 삶을 꾸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안정은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그 안정은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버지의 실패 경험은 내게 '준비 없는 도전은 위험하다'는 교훈을 주었지만, 동시에 실패는 끝이 아니라는 사실도 일깨워주었다. 두 번의 실패에도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 성실히 일하셨다. 그 모습은 나에게 '도전'의 본질을 가르쳐 주었다. 도전은 성공 여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의지에 있다는 것을.
나는 결심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글을 쓰기로.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노트북을 켰다. 주말이면 카페에 앉아 글을 썼다. 처음엔 몇 줄을 쓰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배운 성실함이 나를 붙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한 인터넷 매체에 내 글이 실렸다. 댓글로 남겨진 독자들의 공감과 응원의 말들은 나를 다시 글쓰기 앞으로 불러들였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성취감이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아버지, 저 글 계속 쓰려고요."
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으셨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끝까지 해봐라. 단, 준비는 철저히 하고."
그날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강조하셨던 '안정'은 꿈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준비되지 않은 도전을 경계하라는 메시지였다. 나를 위한 삶을 살되, 무모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지금 나는 두 가지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 안정된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꿈을 향해 글을 쓰는 나. 때로는 지치고 불안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실패는 끝이 아니며, 도전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아버지가 보여주신 성실함과 실패를 이겨낸 용기는 내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잃어버린 채 타인의 기대를 좇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오늘만큼은 자신에게 솔직해지길 바란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실패와 나의 도전은 다른 길을 걸었지만, 본질은 같았다. 나를 잃지 않는 삶. 이제 나는 안다. 아버지의 말이 단순한 충고가 아닌 삶의 지혜였음을. 그리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나는 나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소신을 따라, 안정과 도전 사이에서 나를 지켜내며.
나를 위한 삶. 그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도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