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 사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을까?
어느 날, 친구에게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너도 들었어? 그 배우, 실제로 성격 엄청 못됐대."
처음엔 웃어넘겼다. 연예인 루머야 늘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며칠 후, 다른 친구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러다 뉴스 댓글에서, SNS에서, 심지어 유튜브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다. 한두 번 들었을 때는 무시했지만, 계속해서 같은 말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정말인가?"
사람들은 가십을 좋아한다. 특히 남의 단점을 이야기할 때는 더 흥미를 느낀다. 그러다 보니 아무 근거 없는 말도 한 사람, 두 사람이 반복하면 금세 널리 퍼진다. 문제는, 이 반복이 단순한 '소문'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진실성 착각 효과>라고 부른다. 처음엔 의심하던 정보도 계속해서 노출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한 것은 믿을 만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 현상을 가장 교묘하게 활용하는 곳이 바로 정치와 언론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특정 정치인을 향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쏟아진다.
"그 후보는 부패했다."
"그 사람은 예전에 큰 비리를 저질렀다더라."
처음엔 '설마?' 싶던 사람도, 같은 말을 뉴스에서 보고, 유튜브에서 보고, 주변에서 듣다 보면 점점 믿게 된다. 반박 기사가 나와도 이미 늦었다. 사람들은 "그럴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의심을 품고, 그 의심은 곧 확신으로 변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소문은 불확실성과 중요성이 결합될 때 가장 빠르게 퍼진다"고 했다. 정치라는 세계만큼 불확실하고 중요한 분야가 또 있을까? 대중은 자신의 판단을 돕기 위해 정보를 찾고, 언론과 정치인은 그 정보를 통제하려 한다. '반복'이 진실이 되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를 통해서도 수없이 증명됐다.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도 충분히 반복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로 믿는다."
히틀러 정권은 유대인을 악마화하는 선전을 반복했고, 결국 독일 사회는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이런 일이 꼭 정치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 치약을 쓰면 99.9%의 세균이 제거됩니다!"
"이 샴푸를 쓰면 탈모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TV와 인터넷에서 수없이 보던 광고 문구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균 99.9% 제거라는 실험 조건은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환경과 다를 수 있다. 샴푸로 탈모를 '예방'할 수 있는지도 과학적으로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트에 가면 본능적으로 광고에서 본 브랜드를 고른다. 반복된 메시지가 우리의 뇌를 세뇌한 결과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제품 광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지 광고'에도 쉽게 설득된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를 계속 내보낸다고 하자. 어느 순간 우리는 그 기업이 실제로 환경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지 검증하지도 않고, 그냥 '착한 기업'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알고 보니 환경 파괴 논란이 있었더라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광고에서 반복된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아 있다.
기업은 제품을 팔고, 정치는 표를 얻으며, 언론은 여론을 움직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반복된 거짓은 점점 진실이 되어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심리적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정보를 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반복을 의심하는 태도다.
어떤 이야기가 너무 자주 들린다면,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이게 정말 사실이라서 자주 나오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걸까?"
또한,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뉴스와 SNS에서 정보를 접할 때는 단순히 '많이 들었다'는 이유로 믿지 말고,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살펴봐야 한다.
'누가 처음 이 말을 했는가?', '신뢰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반대되는 정보는 없는가?'
이처럼 의심하고 검증하는 태도를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조작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정보를 접한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처음엔 거짓이었지만, 반복되면서 '진실'처럼 변해간다.
"그 배우는 성격이 나쁘다."
"그 정치인은 부패했다."
"이 제품은 정말 효과가 있다."
우리가 믿는 것들은 과연 진짜 사실일까?
아니면 단순히 많이 들었을 뿐일까?
다음번에 어떤 소문을 들었을 때,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자.
반복되는 거짓말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진실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