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하나쯤 열심히 해봤던 사람들
일은 그래도 좀 성의가 통하는 녀석이다. 열심히 하면, 아니 적어도 일하는 척이라도 하면, 대충 결과가 따라온다. 야근 좀 하고, PPT에 그라데이션 넣고, 메일에 “감사합니다. :)”를 찍어주면 누가 봐도 열일 중인 척은 가능하다. 말하자면, 노오력의 모양새만 갖춰도 점수를 딸 수 있는 세계. 물론 그게 진짜 실력은 아닐 수 있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의 인정은 따라온다.
근데 볼링? 그놈은 안 통한다. 성의고 뭐고, 진심이고 뭐고. 자세 잡고 한 시간 연습한 다음 들어가면? 첫 프레임부터 던지자마자 핀은 우두커니 서 있다. 마치 나를 조용히 조롱하듯. 나는 던지고 나서 절을 한다.
“아우 씨...”
볼링은 이상하다. 힘이 넘치면 넘친다고 안 맞고, 살살 던지면 또 너무 살살이라고 뭐라 한다. 이놈도 싫고 저놈도 싫은, 아주 성가신 연애 상대 같다. 내가 뭘 어떻게 해도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는, 도통 기준이 뭔지 모르겠는 타입.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예전엔 몇 시간을 던지고도 멀쩡했는데 요즘은 두 게임만 치면 손가락이 내게 말을 건다.
“우리, 그만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헤어질 생각이 없다. 계속 잡고 늘어진다. 희한한 관계다.
노력한다고 느는 것도 아니다. 유튜브 보고, 자세 바꾸고, 영상 찍어서 혼자 분석도 해본다. 심지어 밤에 누워서 상상 연습도 해봤다. “이번에 공 이렇게 꺾어서 저 라인 타면 스트라이크 각이야.” 머릿속에선 이미 프로다. 근데 현실은 다르다. 스코어는 그날그날 컨디션 따라 로또다. 200 나오다가 160 나오고, 한 게임은 스트라이크 퍼레이드였다가 다음 게임은 오픈 퍼레이드. 마치 나의 멘탈 상태를 점수로 실시간 중계해주는 기분이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싶은 순간이 있다. 아주 자주. 근데 또 한 번 찰떡같이 맞으면, 스트라이크 소리 찰지게 울리면, 다시 생각이 바뀐다.
“역시 난 볼링이 체질이야.”
감동받는다. 자기애가 폭발한다. 그러다 다시 깨진다. 무한 반복이다. 롤러코스터도 이 정도면 감정노동이다.
요즘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있다.
“혹시... 난 재능이 없나?”
“나이 탓이 아니고 그냥 못 하는 건가?”
생각이 자꾸 이상한 데로 튄다. “내가 저 때 볼링을 안 배웠으면 지금쯤 그 시간에 토익이라도 하나 더 따지 않았을까?” 같은 망상이 머리를 스친다. 물론 토익도 안 했을 테지만.
그럴 때마다 다짐한다. 진짜로. 진심으로. 이번엔 구질 고치고, 리듬 다듬고, 라인 바꾸고, 손목 각도 조정하고, 정말 프로처럼 준비해 보자고. 그리고 결과는? 안 된다.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에도 나는 또 볼링장에 갈 거다. 다 던져놓고선,
“오늘 감이 안 좋네”
하고 괜히 핑계를 댈 거다. 날씨 탓, 공 탓, 기름 상태 탓. 그리고 집에 와선 또 유튜브 영상 뒤져보며 연구할 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쉽게 스트라이크를 치는 건지. 프레임 하나하나를 멈춰가며 분석한다. 그러고는 혼잣말한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나?”
그렇다. 볼링은 참,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잘난 줄 알았던 나를 조용히 가라앉히고, 욕심이 앞선 마음을 천천히 비워낸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자세를 기억하고, 팔이 자연스레 스윙을 만들어내고, 볼이 원하는 라인을 그리며 날아간다.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생각한다.
“이래서 계속하게 되나 봐.”
그래서 어쩌면 볼링은 ‘늘지 않아도 계속하게 되는 운동’ 인지도 모르겠다. 결과로 보상받지 않아도, 과정이 묘하게 중독적이다. 그날의 스트라이크 한 방이면 또 한 주가 기다려진다.
여러분도 혹시, 스코어는 안 오르는데 왜 자꾸 가고 있는 사람?
우리 같은 종족이에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다음 프레임도 파이팅입니다.